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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인천 여행

(강화) 천둥 번개와 세찬 비바람에 찾아간 석모도 보문사(普門寺)

 

천둥 번개와 세찬 비바람에 찾아간 석모도 보문사(普門寺)

 

 

 

 

언제 : 2017년 5월 13일 토요일

어디 : 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면 보문사

 

 

 강화도 외포리에 도착하니 서쪽 하늘이 시꺼멓게 구름이 몰려든다.

어떤 이는

이런 날을 가는 날이 장날이라 하겠지만, 나에게는 아주 멋진 날이라는 느낌이다.

 

집을 떠나 낯선 길을 걷는다는 일

날마다 겹입히는 일상을 벗어나 누덕누덕 덧칠해져 냄새나는 것들을 털어버리고 빈 마음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집을 나설 때부터

세찬 비바람에 내 안의 부질없는 것들 날려버리고 씻어버리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나선 길이었다.

 

비를 맞으며

걸었던 적이 언제였던가!

 

 

 

배를 타고 건너는 사이 빗방울이 떨어진다.

 

 

 

삼산대교

강화도는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으로 그 섬 속의 섬이 석모도다.

그런데

사진과 같이 다리를 건설하고 있어 배를 타고 갈매기와 즐기는 낭만도 머잖아 사라지게 된다.

 

한가지가 좋으면 다른 한 가지는 좋지 않은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민머루 해변에서 거센 바람과 폭우로 오래 머물지 못하고

보문사로 가는데 거센 비바람이 낮이 밤인 듯하고 섬이 가라앉을까 하는 공포심이 일었다.

 

 

 

보문사를 보고 나와 늦은 점심을 하려고 했으나

도무지

더는 갈 수 없어 보문사 앞 식당에서 매코롬한 낙지볶음에 막걸리를 한 병 마시며 한 시간여를 기다리니

언제 세찬 비바람이 일었냐는 듯 그친다.

 

 

 

낙가산 보문사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까지 동문은 아니지만 아주 친하게 지내던 학창시절 친구 3명이 어울려

전국을 쏘다니던 때가 있었다.

 

그때 석모도 보문사와 인연을 맺고

그 후 인천으로 이사하여 마음이 불편하거나 혼란스러울 때 자주 찾는 나의 좋은 벗이 된 보문사인데,

이젠 입장료도 면제가 되는 나이가 되었네.

 

 

 

폭우가 내린 뒤라서 인적이 없다.

 

 

 

적송의 붉은 빛이 비에 젖어 더욱 선명하다.

 

 

 

조금 전까지 비가 억수로 내려 텅 비었을 보문사 극락보전 앞에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많은 사람이 보이더니

금방 사라져 버린다.

 

 

보문사(普門寺)
불교조계종 직영사찰로 우리 나라 3대 관음영지 중 한 곳이며,

창건 당시 서역의 고승이 천인대에 불상을 모시고 날아왔다는 설이 있다.

 

 

 

솔 사이로 바라본 서해에 조그만 섬 두개가 보인다.

 

 

 

 

 

 

 

보문사 범종루와 윤장대

 

 

 

마애관음보살좌상이 있는 눈썹바위

어쩌면 저렇게 큰 바위가 흘러 내리다가 눈썹처럼 터울이 져 비바람을 피할 수 있게 된 곳에 마애불을 모셨는지

참으로 세상 이치는 신비스럽다.

 

올라가서 참배를 드리고 싶었는데, 무릎이 좋지 않고 계단이 비로 미끄러워 올라가지 않았다.

 

 

석모도는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지리지」 5집에 경복궁 박석(薄石)의 채석지로 기록된 경복궁 근정전 박석의 주산지이다.

 

석모도의 지질은 선캠브리아대의 경기변성암복합체로,

 장봉편암 및 화강편마암이 기저를 이루고 이를 관입한 쥐라기 및 백악기의 화성암류로 구성돼 있다.

 

석모도는 조선시대 국용 박석의 채석지로 멀리 경복궁과 관련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경복궁·근정전 영역은 공간의 상징적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 앞마당인 전정에만 박석을 포장해 다른 공간과 차별성을 뒀다.

 

 박석이란 거칠게 표면을 다듬질한 얇은 판상형의 바닥 석재를 말하며, 경복궁 내에서도 근정전 영역 및 어도에 한정했다.

박석은 우천 시 배수, 난반사의 원리를 통한 눈부심 및 미끄럼 방지 기능을 했다.

다양한 기능을 한 박석의 산지가 당시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석모도라는 사실이 이채롭다.

 

 

내 블로그  2013-1-24 에서 가져옴

 

마애관음보살좌상

마애관음좌상은 1928년 배선주 주지 스님이 보문사가 관음 성지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금강산 표훈사(表訓寺)의 이화응(李華應)스님과 새긴 것으로, 크기는 높이 920cm, 너비 330cm에 달하는 거상(巨像)이다.
크기를 척수로 환산하면

높이 32척에 너비가 11척이 되는데, 이것은 곧 관음보살의 32응신(應身)과 11면(面)을 상징하는 것이다.

 

관세음보살님은 눈썹바위 아래의 바위 면에 새겨 있어

눈썹바위가 마치 지붕처럼 돌출되어 있어 비바람으로부터 관음부처님을 가려 주고 있는 형태이다.

 

 

관음좌상의 모습

네모진 얼굴에 커다란 보관을 쓰고 두 손을 모아 정성스레 정병(淨甁)을 받쳐 들고 연화대좌 위에 앉아 계시며,

얼굴에 비해 다소 크게 느껴지는 코, 입, 귀는 투박하기는 하지만 서민적이라 보는 사람의 마음도 푸근해지며 정감이 간다.

 

또 부처님 얼굴에 빠짐없이 있기 마련인 백호(白毫)도 이마 사이에 솟아 있으며, 가슴에는 `만(卍)'자가 새겨져 있다.
불의(佛衣)는 양쪽 어깨를 모두 감싸도록 입는 통견(通肩)이 무릎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다.

 

 

 

연화대좌 왼편에는 `조불화응선사(造佛華應禪師)'가

그 반대편에는

`화엄회상필부사왕중(華嚴會上八部四王衆)·

나무화엄회상욕색제천중(南無華嚴會上欲色諸天衆)·

화엄회상호법선신중(華嚴會上護法善神衆)' 글씨가 세 줄로 새겨져 있다.

 

 

 

보문사는 우리나라 3대 해상관음 기도 도량인데

눈썹바위 마애불도 유명하지만, 석실에서의 기도 또한 기도발이 좋단다.

 

 

보문사 석실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7호

 

신라 선덕여왕 4년(635)에 회정대사가 처음 건립하고 조선 순조 12년(1812)에 다시 고쳐 지은 석굴사원이다.

 

천연동굴을 이용하여 입구에 3개의 무지개 모양을 한 홍예문을 만들고, 동굴 안에 불상들을 모셔 놓은 감실(龕室)을 설치하여

석가모니불을 비롯한 미륵 . 보살과 나한상을 모셨다.

이들 석불에는 신라 선덕여왕 때 어떤 어부가 고기잡이 그물에 걸린 돌덩이를 꿈에서 본 대로 모셨더니 부처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보문사 향나무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7호

 

보문사 석실 앞 큰 바위틈에서 자라고 있는 이 향나무는 밑동 지름이 2.1m이며, 높이 12m, 부이의 둘레가 3.2m 정도이다.

나무의 생긴 모습이 마치 용트림을 하고 있는 듯 기이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1.7m 높이에서 원 줄기는 동서 양쪽으로 갈라졌는데 동쪽 것은 둘레가 1.3m이고, 서쪽 것은 둘레가 1.5m이다.

6.25 동란 중에 나무가 죽은 듯 같이 보이다가 3년 후에 다시 소생하였다고 한다.

 

 

 

 

 

 

보문사 맷돌

인천광역시 민속문화재 제1호

 

신라 선덕여왕 때(635) 건립한 보문사에는 나한상을 모신 보문동천으로 유명하다.

한 때는 보문사 승려와 수도사들이 300명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이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 때 사용했던 맷돌이다.

 

맷돌의 크기는 지름 69cm, 두께 20cm로 일반용 맷돌보다 두 배 정도 큰 화강암 맷돌이다.

 

 

 

와불전에서 본 삼성각

 

 

와불전에서 본 보문사 전경

 

 

 

 

 

 

 

 

 

 

 

 

 

이제 보문사를 떠나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세찬 비바람이 그친 시간이라 따뜻한 차 한 잔 마시고 돌아가면 좋겠더구만.

 

 

 

보문사를 나서는데 한 무리의 학생들이 들어온다.

조용했던 보문사가 웃음으로 시끄럽겠지.

 

 

 

삼산대교

지금까지 석모도 보문사를 다녀가면서도 보문사 산 너머를 돌아보지 못해 오늘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석모도 구석구석을

돌아보았다.

 

큰 저수지가 두 군데나 있는 너른 들이 있었고, 바닷가에 서니 북한과 가까워서인지 서늘한 느낌도 받았다.

그러나

올가을 황금 물결 넘실대는 날 다시 걸어보리라.

 

 

 

 

오전에 외포리를 출발 석모도를 향할 때 배에서 지나가는 비를 만났고,

민머루 해변에서는 눈을 뜰 수 없도록 모래바람이 불더니 보문사 가는 길에는 앞을 볼 수 없도록 세찬 비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지금 석모도를 떠나는 시간에는 언제 세찬 비바람이 불었냐는 듯 햇볕이 좋고 하늘 푸르다.

 

이게 사는 것이다.

살면서 늘상 웃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론 뜻하지 않게 힘든 시기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슬기롭게 기다리면 곧 지나가고 만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구속받거나 구속당하지 않는 자유롭고 향기로운 영혼의 낭만이 넘실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