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패망의 아픈 역사가 깃든 고려동(高麗洞)
언제 : 2017년 5월 3일 수요일
어디 : 경남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 고려동듀적지
얼마 전
제법 이름을 날리는 작가 지인이 경남 함안 고려동을 다녀오려는데 동행하자고 하여 나선 길이 이번 여행길이다.
나름
전국을 떠돌며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이름난 곳을 찾아다닌 지 제법 오래이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니 교통이 불편한 곳은
머뭇거리게 되는 곳 중의 하나가 함안의 고려동이었는데,
드디어
뜻이 있으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현실이 되었다.
△
고려동 전경
▽
△
고려진사 모은 선생 경모비
▽
고려동학(高麗洞壑) 표지석
고려 말기에 모은 선생이 벼슬을 버리고 처음 이곳에 와서 둔적은거(遯跡隱居 : 행적을 숨기고 세상을 피해 숨어서 지냄) 하였음.
(직접 찍지 못하고 책자의 사진을 찍었더니 흐리네)
△
고려교
▽
△
고려동 담장
▽
△
고려동 담장
▽
고려동을 말하려면 먼저 두문동 72현에 대해 알아야 한다.
두문동(杜門洞)은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광덕산 서쪽 기슭에 있던 옛 지명으로 고려가 멸망하자 과거 고려의 신하 72명이 살던 곳으로,
두문불출한다하여 두문동이라고 불리었다.
간의대부 차원부가 죽은 후
대부분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성사제 등의 13명은 회유에 굴복하지 않고 가시덤불을 쌓고 불을 질러 죽었다.
이들 중 맹호성, 조의생, 임선미를 두문삼절(杜門三絶)이라 부른다.
모은(茅隱) 이오(李午)
공양왕 때 성균관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국운이 이미 쇠진함을 보고는 벼슬하지 않고 고려가 멸망하자
여러 현인들과 송도 교외의 두문동으로 들어가서 망복수의의 결의를 표명하고는
남쪽으로 내려와 함안에 터를 정해 은거하였다.
망복수의(罔僕守義) : 망국의 신하로서 의리를 지켜 새 왕조의 신복이 도지 않으려는 절조를 말한다.
집안에서 일을 하시던 분에게 동행한 작가의 작품을 드리며
고려동을 찾아온 이유를 말씀 드렸더니 직접 집안을 다니며 고려동에 대한 설명을 해 주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작업을 하시다가 나오시는 후손
효산정(曉山亭)
효산 이수형이 후학을 양성하며 장수(藏修) 하던 곳
흥선대원군과 그의 맏아들 이재면과 효산 이수형이 주고 받은 편지(백운래홍첩) 13매가 있음
고려동 종가로 가는 길
계모당(繼模堂)
선조의 훌륭한 유업을 이어 받는다는 뜻으로 종가의 사랑채
△
자미정(紫薇亭)
모은 선생이 은거소요(隱居逍遙)하던 곳
▽
자미정 뒤에 있는 연못
△
고려구기의 종택(高麗舊基 宗宅)
모은 선생이 좋은 터를 골라 주춧돌을 올린 고려구기의 종택
중간에 여러 번 중수는 했지만, 지금까지 옛 주초 위에 옛 규모 그대로 보수해 오고 있다.
▽
▽
▽
고려동은 역사를 전공하신 분은 알겠지만,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곳은 아니다.
또한
조선조 역사가 우리 세대와 맞물려 있어 고려의 역사를 조명하거나 미화시킬 수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나 역시 작가인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되었으니.
우리를 안내하신 고려동 후손께서 말씀하시길 얼마 전 누구나 아는 아주 유명한 소설가 이OO선생이 이곳을 다녀가셨다며
작가인 지인에게 슬며시 압력을 넣는다.
그것은
앞으로 고려동에 대한 소설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이다.
율간정(栗澗亭)
모은선생의 둘째 손자 율간선생의 유적으로 선생이 벼슬에서 물러나 학문을 닦으면서 마음을 가다듬던 곳
모계정사(茅溪精舍)
모계공 이명배께서 학문을 연마하던 곳
고려전(高麗田)
모은 선생이 손수 가장(稼檣)하시던 농토로 3천여 평.
△
자미단
모은 선생의 유적으로, 선생이 처음 이곳에 와서 은거하실 때 숲속에서 자미화(목백일홍)가 난발한 것을 보고
이곳에 복거(卜居)했는데, 이 자미화는 선생의 후손들과 성쇠를 같이한다고 전한다.
▽
고려동(高麗洞)유적지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580번지 내 위치한 고려동유적지는
고려 후기 성균관 진사 이오(李午)선생이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이곳에 거처를 정한 이후 대대로 그 후손들이 살아온 곳이다.
이오는 이곳에 담장을 쌓고 고려유민의 거주지임을 뜻하는 고려동학 이라는 비석을 세워 논과 밭을 일구어 자급자족했다.
그는 아들에게 조선왕조에 벼슬하지 말 것과
자기가 죽은 뒤라도 자신의 신주(神主)를 이곳에 떠나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도록 유언했다.
그의 유언을 받든 후손들은 19대 600여년에 이르는 동안 이곳을 떠나지 않았고,
이에 고려동(高麗洞)이라는 이름으로 오늘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현재 마을 안에는
고려동학비, 고려동담장, 고려종택, 자미단, 고려전답 9만9000㎡ 자미정, 율간정, 복정, 등이 있으며
1983년 8월2일 경남도 기념물 제56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牛馬처럼 걷는 부산+경남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남 진주) 남강에 어우러진 촉석루 야경 (0) | 2017.08.07 |
---|---|
(경남 함안) 절벽 위의 악양루(岳陽樓)와 처녀 뱃사공 노래비 (0) | 2017.06.20 |
(경남 함안) 사적 제515호 - 함안 말이산 아라가야의 고분군 (0) | 2017.06.10 |
(경남 밀양) 표충비각(表忠碑閣) - 땀 흘리는 사명대사 비석 (0) | 2017.06.02 |
(경남 밀양) 김종직 선생 생가와 조의제문(弔義帝文) (0) | 2017.05.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