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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대구+경북 여행

(경북 청도) 인연 따라 찾아간 운문사 초파일 풍경

 

인연 따라 찾아간 운문사 초파일 풍경

 

 

 

 언제 : 2017년 5월 2일 화요일

어디 : 경북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길 264번지

 

 

마음에 두고 언젠가 찾아가리라던 곳이 경북 청도군 호거산 운문사이다.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가 아니라

전국을 돌아다니며 들리는 소문 따라 퍽 아름다운 사찰이며, 우리나라 최대의 처진 소나무가 있다는 것이 인연 전부이다.

 

내일이 석가 탄신일이라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경남 밀양 영남루 야경을 담으러 가던 길에 뜬금없는 어떤 인연이 내게 찾아와 그토록 가고 싶었던 운문사로 안내한다.

 

마치

누이 집을 찾아가듯.

 

 

운문호

 

청도 운문사를 가는 길에 운문호를 맞게 되었는데 수몰지역인을 위한 망향정이 푸른 운문호를 내려다 보고 있다.

 

망향정

 

 

산세 좋은 영남 알프스를 따라 운문산과 가지산 봉우리들을 바라보며 구불구불 운문호를 따라가다 보면

붉은 송림 우거진 천년 고찰 운문사에 닿는다.

  

 

 

운문사 가는 길

 

 

운문사 초입에서 내일이 석가탄신일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운문사 돌담길

 

 

 

운문사(雲門寺)

 

운문사는 신라 진흥왕 21년 (서기 560년) 초창퇴어 대작갑사라 하였는데, 제 1차 중수는 진평왕 때 원광국사가,

제 2차는 신라말에 보양국사가 하였다.

고려 태조 20년(서기937)에 많은 전지를 내리고 운문선사라 사액하면서 운문사라 불리어 오고 있다.

 

고려시대 숙종 때(1105) 원응국사락 제 3차 중수를 하였으며 고려 고종 때(서기1250) 일연선사가 주지로 주석하였다.

그 후 조선시대에 들어와 여러 차례에 중수가 있었고,

1958년에 비구니 전문한원을 개설한 이래 한국의 대표적인 승가대학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다음과 같은 문화재들이 있다.

보물 제193호 석등 - 보물 제208호 청동호 - 보물 제316호 원응국사비 - 보물 제317호 석가여래좌상

- 보물 제318호 사천왕석주 - 보물 제678호 삼층석탑 - 보물 제835호 비로전

천연기념물 제180호 처진소나무 

 

 

 

 

 

 

 

운문사에서 일주문도 보지 못했고, 천왕문과 사천왕상도 보지 못하고 호거산 운문사 현판이 달린 문을 통과하니

그곳이 범종루이네.

 

 

 

범종루를 들어서니 경내에는 연등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사진 중앙 - 원응국사비 - 보물 제316호

 

고려 중기의 승려인 원응국사 학일(學一)의 운문사 중창과 그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비이다.

고려 인종 22년(1144) 학일왕사가 93세로 입적하자 인종은 국사로 책봉하고 원응이라는 시호를 내려 비를 세우게 했다.

이 비는 높이 2.3m, 폭 0.9m로 비석머리와 받침돌은 없어졌고 현재는 3편으로 절단되어 있는 비편을 연결하여

하나의 비신으로 구성하였다.

 

해서체로 쓰여진 비의 앞면에는 그의 행적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그의 문도들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비문의 작성자는 윤언이이며 글시는 고려중기의 명필, 탄연스님이 썼다.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공간이라 출입금지

 

 

 

 

 

무엇을 소원하며 연등을 달았을까?

 

 

작업전

 

 

 

작압전 내부에 모셔진 불상과 사천왕상

 

 

운문사 석조 석가여래좌상 - 보물 제317호

 

이 불상은 살상투가 뚜렷하며, 네모진 상체와 하체에 법의가 수직으로 무겁게 내려져 있다. 연꽃무늬가 새겨진

6각 불상 받침 대좌의 특이한 형태는 다소 딱딱한 느낌을 보여준다.

손 모양은 항마촉지인으로서 다소 어색한 감이 있고 결가부좌 한 양 발 사이에는 부채꼴의 주름이 잡혀 있다.

이 불상은 부피감이 없고 상 자체가 나약하고 위축된 점, 조각에서 형식화가 많이 진전된 점으로 보아

신라말에서 고려초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운문사 사천왕 석주 - 보물 제318호

 

이 사천왕 돌기둥은 현재 작압전에 모셔진 석조여래좌상 좌. 우에 배치되어 있으나, 원래는 이 곳에 세워진 탑신 4면이나

안의 벽면에 모셔졌던 것으로 여겨진다. 삼고저를 든 증장천왕, 탑을 든 다문천왕, 불꽃을 든 광목천왕, 칼을 든 지국천왕 등은

천의자락이 휘날리는 갑옷을 입고 마귀를 밟고 선 자세이다.

4개의 사천왕상 돌기둥은 신체는 장대하지만 양감이 줄어든 가냘픈 체구, 부드러운 인상, 갑옷의 굵은 띠주를 줌으로

미루어 보아 형식미가 진전되었던 신라 말 후삼국 시대인 900년경을 전후한 시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대웅보전

 

운문사 동 . 서 삼층석탑 - 보물 제678호

 

이 탑은 높이 5.4m인 쌍탑으로 9세기 통일신라시대 3층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 주고 있다.

상층기단에는 앉아 있는 팔부중상이 세련되게 조각되어 있으며 한 돌로 된 탑신에는 모서리 기둥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탑신부의 지붕돌은 각 층급 받침이 5단씩이며 추녀 밑은 수평을 이루어 경쾌하고 날씬한 조형미를 보여 준다.

전체적으로 이 탑은 하부가 약해 보여 다소 무거운 느낌을 준다.

 

상륜부에는 노반 . 복발. 위로 향해 새겨진 꽃이 남아 있으며 기단 일부는 새로운 돌로 보수하였다.

하층기단은 지대석과 중석을 한데 붙여서 짰고 중석에는 각 면의 모서리 기둥과 안기둥 2주씩이 있다.

옛 대웅보전 앞에 쌍 삼층석탑이 있다.

 

 

 

 

 

 

 

 

 

 

 

 

 

 

 

 

새로 지은 대웅보전

 

 

 

전면에서 대웅보전 불상이 기둥에 가려 측면에서 다시 담는다.

 

 

 

운문사에는 대웅보전이 두 군데 있다.

 

스님께 여쭤보니

위의 대웅보전은 새로 지은 대웅보전이고, 삼층석탑이 있는 대웅보전은 원래의 대웅보전인데

문화재로 관리되어 명칭을 바꿀 수 없어 두 군데 대웅보전 현판이 있다네. 

그래서

유추하건데 천왕문이 없고 사천왕상도 없는 이유는 작업전에 사천왕 석상이 있어 그러한 줄 아네.

 

 

대웅보전 앞에서 본 만세루와 연등

 

만세루 내부

 

 

 

 

 

처진소나무 - 천연기념물 제180호

 

소나무의 한 품종인 처진소나무로서 우리나라에서 최대 규모이다. 가지가 밑으로 늘어지는 점이 보통 소나무와 다른데

자연적으로 이 나무처럼 둥글게 자라는 나무는 매우 드물다. 나무모양이 아름답고 전형적인 처진소나무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생물학적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

 

어떤 소승이 소나무 가지를 꺾어서 심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운문사에서는 매년 봄에 막걸리를 물에 타서 뿌리 가장자리에

주고 있다. 높이는 약 6m, 둘레가 3.5m, 나무의 나이는 500여년 정도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