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백 장군 유적지와 황산벌
언제 : 2017년 2월 12일 일요일
어디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충곡로 311-54
힘없는 나라는 망하여 사라지는 것이 역사이다.
그러나
후세는 사라진 역사의 흔적들을 찾아다니며 왜 망할 수밖에 없었는지 확인하며 교훈을 얻는다.
가족까지 죽이고 황산벌 전투에 나섰던 계백 장군은 휘하 5천 군사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나 결국 패하고
시체마저 제대로 묻히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백제의 풍납토성과 공산성 그리고 사비성의 사라진 흔적들을 보다가
2016년 10월부터 지금까지 벌어지고 있는 분열과 증오는 곧 북한의 오판으로 언제든지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마땅히 위정자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데,
자신의 안위를 위해 국민을 분열시키고, 나라를 혼란으로 이끄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에서
백제의 패망이 결코 흘러간 역사만이 아님을 안다.
황산벌전투
660년 7월의 무더위 속에서 백제와 신라가 황산벌에서 벌인 전투이다.
660년 신라와 당은 군사동맹을 맺어 사비도성을 공격할 계획을 세우고 백제를 침략하였다.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의 5만 대군은
탄현을 넘어 황산벌(지금의 연산면 신양리 일원)로 진군하였다. 의자왕은 계백에게 5,000명의 결사대를 주어 이를 막게 하였다.
계백은 가족을 죽인 뒤 비장한 각오로 출전. 황선벌에 먼저 도착하여 3곳에 진영을 설치했다.
계백의 결사대는 3갈래로 나누어 진격하는 신라군을 맞아 4번을 싸워 4번 모두 이기는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백제군은 수적 열세를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패배하였으며, 계백장군은 장렬히 전사하였다.
황산벌 일대에는 지리적 요충지에 황령산성, 산직리산성, 신흥리산성, 청동리산성, 와성리산성, 황산성 등이 분포하고 있다.
산직리산성 아래에는 신라군과 싸워 승리했다고 하는 승적(勝敵)골이란 지명이 지금도 남아 있다.
인근 부적면에는 백제의 유민들이 계백장군의 시신을 가매장 했다하여 가장(假葬)골로 불리는 곳도 있다. 현재 이곳에는
계백장군묘와 함께 백제군사박물관이 세워져 있다. 황산벌 전투로 백제는 비운의 종말을 맞이했으나,
계백장군과 5천 결시대는 충절과 호국의 표상으로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
▽
백제군사박물관
지하1층 지상2층 규모로 3개의 전시실과 기획전시실, 4D영상관, 호국전시관, 야외체험장으로 구성되었다.
군사박물관은 총 5가지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안악 3호분 행렬도(安岳 3號墳 行列圖)
황해남도 안악군 오국리(옛 지명 : 황해도 안악군 용군면 유설리)에 위치한서기 357년의 "동수묘(동수묘)"로 불리는
고구려시대 벽화고분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것은 길이 10m에 이르는 회랑의 "ㄱ형" 벽면을 가득 채운 웅장한 대행렬도이며, 안악 3호분의 벽화 중 당시 고구려의
군사체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소가 끄는수레를 탄 주인공을 중심으로 250여 명의 무장한 무사 등을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어 다향한 무기를 파악할 수 있다.
말을 탄 기병, 방패를 들고 있는 보병, 활을 들고 있는 궁수, 도끼를 어깨에 메고 있는 부월수(斧鉞手), 각종의 악기를 들고 있는
군악대 등 군부대 내의 무장 체계를 생생히 보여 주고 있다.
삼국시대에서부터 통일신라에 이르기까지 삼국의 하나인 백제는 멸망에 이르기까지 주변 나라인 고구려. 신라와 끊임없는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당시 고구려의 행렬도를 통해 고구려와 대등하게 전쟁을 치른 백제의 군사력을
시각적으로 유추 할 수 있을 것이다.
제 1 전시실
그 시대의 군사 세력 및 영역변화 등 백제의 전쟁역사를 구성했다.
풍납토성 - 백제 초기 토성
서울 강동구
△
공산성 - 공주
부소산성 - 부여
▽
제 2 전시실
백제의 장군 계백과 관련된 영상과 오태학 화백이 그린 기록화 전시를 통해 호국과 충절 그리고 실내체험학습
제 3 전시실
금강 유역의 넓고 기름진 땅에 자리한 논산평야는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살아가기 좋은 곳이다.
언월도(偃月刀)
조선
길이 193cm - 너비 10cm
칼날의 모양이 초승달 같다고 하여 이름 붙인 긴 칼이다.
용을 조각하고 날 양면에 별자리와 "용광사우두지허(龍光射牛斗之墟)"라는 명문을 입사하여 장식하였다.
언월도는 무게(3근 14량)가 무거워 실제 전투에서는 거ㅢ 사용하지 않고 무예 시법이나 훈련에만 사용하였다.
금동〔청동〕대탑(金銅〔靑銅〕大塔) - 모조품
국보 제213호
고려 : 높이 155cm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개태사지
연산면 천호산 기슭에 자리잡은 개태사(開泰寺)는 고려 태조가 후삼국의 통일 기념하여 건립하였다.
"천호(天護)"라는 산 이름과 "개태(開泰)"라는 절이름에서 나타나듯 부처와 천지신명의 가호를 받아 통일을 이루고 태평성대가
이어지길 기원하는 바람으로 조성한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호국사찰이다.
개태사지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는 이 탑은 금속으로 제작된 탑으로는 가장 규모가 크다. 금속으로 조성되는 탑은 개인의
신앙생활이나 사리공양을 위해 소규모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 데 비해, 이 탑은 크기와 장식에 있어서 독특하다.
현재 단층의 기단부와 5층의 탑신부 그리고 상륜부만이 남아있지만, 본래는 7층이었을 가능성이 크벼, 처음 청동으로 제작하여
도금하였던 것이 벗겨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도금과 세부장식이 화려하며, 목조건축과 금속공예 등의 연구자료로써 가치가 높아 국보 제213호로 지정.
현재 삼성 리움박물관에 소장중이다.
백제군사박물관을 나와 황산벌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위치한 산으로 올라간다.
황산루
2009년에 건립된 황산루에서는 백제군사박물관 전경과 푸르른 탑정호가 조망된다.
나는 1972년도 여산 제2하사관학교를 수료하여 단기하사로 전역을 하였는데,
내가 훈련 받던 곳이 계백 장군 유적지와 아주 가깝다는 것을 알았고, 황산벌 계백 장군은 교가에도 나오는데,
황산벌이 아주 너른 평야일 거란 생각과 실제 황산벌은 달랐다.
논산평야로 나가기 전인 낮은 산들 사이의 연산면에서 개태사에 이르는 곳이라면 아주 틀리진 않을 것이다.
△
황산벌
계백 장군 묘로 추정되는 묘로 올라가는 입구
▽
돌계단을 올라서면 장송들이 어우러져 있다.
장송들 사이로 멀리 장군의 묘가 마치 그의 황산벌 전투에 나가기 전 가족을 정리하였 듯
묘는 장군의 기개를 닮았고 주변은 정리가 잘 되었다.
기호지방 보통의 묘에 비해 봉분이 크고 주위가 아주 수려하였다.
조금 전에 보았던 후백제 견훤왕릉과 비교하자면 견훤왕릉의 봉분이 크고 우람하지만, 주변은 계백장군의 묘가
참 좋았다.
백제 계백 장군 묘
△
장군의 묘 후면에서 바라 본 전경으로 묘자리가 참 좋았다.
장군의 묘 저만치 아래 평지에는 그의 사당이 있다.
▽
충장사(忠壯祠)
이곳은 백제 말 위기에 처한 조국의 운명을 구하기 위해 5천 결사대와 함께 황산벌에서 신라군과 싸우다 전사한
충절의 표상인 백제 충신 계백장군(階伯將軍)의 위패와 영정을 모시는 사당입니다.
삼문삼도(三門三道) : 출입구와 사당에 이르는 길은 각각 세 개의 문과 길로 되어있는데 이를 "삼문삼도"라고 한다.
궁궐이나 종묘 사원 등의 건축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양식이다.
위패 : 사당에서 제향하는 분의 이름을 적은 패로서
충장사에 모신 계백장군 위퍠에는 "백제충신계백장군(百濟忠臣階伯將軍)이라고 적혀 있다.
영정 : 충장사에는 계백장군의 모습을 담은 영정이 안치되어 있다.
문화제청에 등록된 계백장군의 유일한 표준영정이다.
백제군사박물관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활쏘기 체험장과 좌측 산 위에는 황산루가 보인다.
계백 장군 상
백제군사박물관 맞은 편에는 계백 장군 동상이 있다.
요즘 드물게 오늘 날씨는 참 좋다.
푸른 하늘
푸른 탑정호와 너른 논산평야가 내려다보이는 곳 나즈막한 야산에 계백 장군 유적지가 있다.
계백 장군과 오천 결사대 그리고 화랑 관창은 국민학교 3~4학년 때 처음 알았던 듯하다.
그 후
경주지역은 학창시절 수학여행과 이러저러한 이유로 많이 여행했으나, 정작 서럽게 패망한 백제에 대해서는 학창시절부터
비중을 두지 않았기에 기억에서 잊혀 갔다.
나이 들어갈수록
서럽게 사라져버린 왕국 백제의 자취를 찾아 풍납토성 - 공산성 - 사비성을 자주 걸음 하게 되었고,
더 나이 들기 전에
논산지역을 여행하면서 계백 장군 유적지를 볼 수 있음이 나에겐 아주 의미 있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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