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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인천 여행

(인천 강화) 우리나라 최고(最古) 사찰 전등사의 만추(晩秋)

 

우리나라 최고(最古) 사찰 전등사의  만추(晩秋)

 

 

 

 

언제 : 2016년 11월 9일 수요일

어디 :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전등사

 

 

"통일은 대박"이라며 곧 통일이라도 될 것처럼

나이드신 이산가족의 마음과 국민의 마음을 홀린 연설문이 공무원도 아닌 한낮 샤머니즘적인 여성에 의해 작성 되었

 그것을 대통령은 의기양양 전 세계를 향해 외쳤다.

 

샤머니즘에 빠져 국정농단과 헌법 유린의 박근혜 - 최순실 게이트는

세계의 웃음거리 - 조롱거리가 되었고 시간마다 치사하리만치 자잘한 것 까지 양파처럼 새로운 비리들이 터지는 

요즘 

대한국민은 사기를 당했다는 허탈한 마음과 울분으로 삶의 의욕을 잃어버렸다.

 

[헬스조선]최근 뉴스로 인해 울분이 치밀어 올라 답답함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사진=강동경희대병원 제공

 

[헬스조선]

최근 뉴스로 인해 울분이 치밀어 올라 답답함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사진=강동경희대병원 제공

 

 

강화도 전등사에 가서 

삼량성을 한바퀴 돌며 강화 너를 들과 서해 바다와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는 마니산을 바라보며

답답한 마음을 풀어 놓고 싶어 전등사로 갔다.

 

 

 

전등사 가는 길 

 

 

 

 삼랑성 동문

삼랑성은 사적 제130호이며,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고 알려지며 일명 정족산성이라고도 한다.

 

성안에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사찰인 전등사가 있으며 고려시대에는 가궐, 조선 시대에는 사고와 선원 보각이 있었다.

현종 1년(1660년)에 마니산에 사고(史庫)를 옮겨 세우고 실록(實錄)을 감추어 보관한 일로 유명하다.

1866년 병인양요

이 성을 침략한 프랑스 군을 양헌수 장군의 병사들이 물리쳐

이속에 보관된 《조선왕조실록》과 왕실 족보인 《선원보》를 지켰다.

 

 

 

 

 

 

 

요즘 샤머니즘적인 일들로 온나라가 뒤집어지고 온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었는데,  

일부러 보는 것이 아닌데 이런 것이 보인다.

 

 

 

삼랑성

 

 

 

삼랑성 남문 종해루

 

 

 

삼량성

 

 

 

암자

 

 

 

  초지대교

경기도 김포와 인천광역시 강화도를 연결한다.

 

 

 

장화리 저수지

멀리 희미하게 인천 계양산과 천마산이 조망된다.

 

 

 

전등사 전경

그 뒤로 멀리 문수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만추의 전등사

전등사는 381년, 고구려 소수림왕 11년에 아도(阿道)가 창건한 절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절이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해진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인 372년이었다.

그리고 375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사찰인 성문사와 이불란사가 고구려에 세워졌다. 그러나 이 두 절은 지금 남아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381년에 세워진 전등사가 한국 불교 전래 초기에 세워진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사찰임을 알 수 있다.


 

 

삼랑성에서 본 마니산

 

 

 

삼랑성 서문 인근에 있는 옹성

 

 

 

삼랑성과 마니산

 

 

 

만추

 

 

 

산을 내려와 가궐터에서 본 전등사 

 

 

 

가는 가을이 아쉬운지 많은 사람이 전등사를 찾는다.

 

 

 

전등사 앞 마당 보호수

 

 

 

전등사의 만추

 

 

 

장독대와 만

전혀 생각하지 못한 장면으로 뜻밖에 아주 멋진 장면을 담았다.

 

 

 

전등사 대웅전 뒤 단풍나무에 불이 붙었다.

 

 

 

오메~ 단풍 들었네!

 

 

 

 

전등사 대웅전 안 기둥

기둥에는 많은 글씨가 씌여있는데, 조선말 병인양요(1866) 때 프랑스군과 싸우던 조선병사들이 쓴 글이라고 한다.

전쟁을 하는 군인들의 심정과 그들의 영혼을 부처님께 의지하던 간절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병인양요 배경

 

1866년 1월초 대원군은 쇄국양이 정책의 하나로

천주교 금압령을 내리고, 9명의 프랑스 신부와 많은 조선인 천주교도를 처형했다.

이때 탄압을 피하여 탈출했던 3명의 프랑스 신부 가운데 리델이 7월 청나라의 톈진[天津]으로 탈출해

프랑스의 극동 함대 사령관 로즈에게 천주교 탄압 사실을 알렸다.

 

이 사건은 1846, 1847년 2차례 조선을 침략했다가 실패했던 프랑스에게 좋은 구실이 되었는데,

로즈는 강화해협을 중심으로 서울까지의 뱃길을 탐사할 목적으로 3척의 군함을 이끌고 1866년 8월10~22일에

제1차 원정을 단행했다. 프랑스 군함은 서울의 양화진·서강까지 올라와 수로탐사를 한 뒤 물러갔다.

 

이에 조선 정부는 황해도와 한강 연안의 포대를 강화하고 의용군을 모집하는 등 프랑스의 침략에 대한

해안 방어대책을 강화했고, 같은 해 9월 15일 로즈는 전함 3척, 포함 4척, 병사 1,000여 명으로 조선을 침략해왔다.

조선 정부는 순무영을 설치하고,

이경하·이용희·양헌수를 각각 대장·중군·천총에 임명하여 강화를 수복했다.

 

9월 20일 문수산성에서 다시 패한 조선군은 우세한 프랑스군의 화력을 이겨내고 강화도를 수복하는 데에는

기습작전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10월 1일 밤 양헌수가 549명의 군사를 이끌고 강화해협을 몰래 건너

정족산성에 들어가 잠복하여 10월 3일 정족산성을 공격해오는 프랑스군을 물리쳤다.

 

프랑스군은 전사 6명을 포함하여 60~70명의 사상자가 났으나, 조선군은 전사 1명, 부상자 4명뿐이었다.

조선군의 정족산성 승리는 프랑스군을 물러나게 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군은 1개월이 넘는 원정에 따른

병사들의 피로, 정족산성의 패배에 따른 사기 저하 등으로 10월 5일 강화도에서 철수했는데,

이때 대량의 서적·무기·금은괴 등을 약탈해갔다.

 

조불전쟁은 우리나라가 서구 열강과 싸운 최초의 전쟁이었고 우리가 승리한 전쟁이다.

 

 

 

 

 

 

 

무설전

전등사를 방문할 때마다 머무는 내부에는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무설전 내부

 

 

 △

무설전에 전시된 그림

 

 

 

 

 

단풍에 둘러싸인 범종루

 

 

 

절집에 핀 국화를 담았다.

 

 

 

절집은 해가 일찍 진다.

서늘한 기운이 돌아 전등사내 전통 찻집으로 든다.

 

 

전등사 경내 전통찻집 죽림다원의 만추

 

 

 

전통찻집 죽림다원

 

 

 

쌍화탕

왠지 감기 기운이 들고 온몸이 서늘하여 따끈따끈한 쌍화탕을 주문했다.

 

 

 

국화꽃과 단풍잎 가지가 탁자에 놓여 만추의 찻집 분위기가 향기롭다.

 

 

 

천정에 달린 갓등을 쌍화탕 찻잔에 담았다.

 

 

 

빈 잔

ㅎㅎㅎ 뜨겁고 쌉쌀한 쌍화차를 다 비우니 속이 보이네

그대의 아린 설움을 나의 빈잔에 채워주오.

 

 

 

전등사는 어느새 어둠이 내린다.

하루종일 목적도 없이 이리저리 쏘다니던 나그네가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이젠 집으로 돌아가야지......

 

 

돌아가는 길

가는 길이 잘못되었다고 확신될 때는 주저없이 뒤돌아 나오는 것이 현명하다.

 

대한민국호의 선장이 항로를 잘못 보고 틀린 항해를 했다면 자기의 실수를 감추고 그 항로로 계속 항해 한다

대한민국호는 결국 파선되고 말 것이다.

과감하게 잘못 되었음을 고백하고 잘못된 항로를 벗어나는 용기가 필요하다.

대한민국호는 미래가 있다.

 

지금

대한민국호의 가장 큰 문제는 선장이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참모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여행객의 안전을 위해 존재하는 선장이 아니라 선장을 위해 여행객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