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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충남 여행

(충남 서산) 천수만 간월암 가는 길

 

 

천수만 간월암 가는 길

 

 

 

 

보름 후면 부처님 오신 날인데,

실로 오랜만에

서산 천수만 간월도 간월암 가는 길에 본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본다.

 

간월암은 이성계와 조선을 창건한 무학대사와 깊은 인연이 있는 절이다.

 

 

 

현대건설에서 막은 서산 간척지

 

 

 

보리가 익어가고 있다.

 

 

 

예전엔 없던 너른 유채꽃과 미국 서부 개척 당시 역마차를 연상하게 하는 캠핑장이 있다.

 

 

 

역마차 캠핑장

 

 

 

 

 

 

 

간월도 가는 길

 

 

 

 

 

 

 

간월도에서 본 창리 포구

 

 

 

간월도에서 본 버드랜드(Bird-Land)

 

 

 

간월도에서 본 서산 부석사가 있는 도비산

맑은 날 도비산에 올라 천수만을 바라보면 장관이다.

 

 

간월포구

 

 

 

 

 

간월포구에서 간월암 가는 길

 

 

 

 

간월암의 유래

 

간월암은과거 피안도(피안도) 피안사(피안사)로 불리며

밀물 시 물위에 떠 있는 연꽃 또는 배와 비슷하다 하여 연화대(연화대) 또는 낙가산(낙가산) 원통대(원통대) 라고

부르기도 했다.

 

고려 말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수도하던 중 달을 보고 홀연히 도를 깨우쳤다하여 암자 이름을 간월암(간월암)이라 하고,

섬 이름도 간월도라 하였다.

이 후 조선의 억불정책으로 간월암이 폐사 되었던 것을 1941년 만공선사가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만공선사는 이곳에서 조국해방을 위한 천일기도를 드리고 바로 그 후에 광복을 맞이했다고 전한다.

 

간월암은 밀물과 썰물 때 섬과 육지로 변화되는 보기 드문 자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특히 주변의 섬들과 어우러진 낙조와 함께

바다위로 달이 떠올랐을 때의 경관이 빼어나다.

 

 

 

간월암 전시된

달과 바다와 간월암

 

 

 

 

 

 

 

간월암에서 홍성 방향

 

 

 

 

 

 

 

5월 14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정오가 지나자 파도는 점차 거세지고

 

 

간월암은 이런 바위 위에 세워진 암자

 

 

 

 

 

파도

뒤로 길게 뻗은 곳은 안면도

 

 

 

이미 지고 흙이 되었을 동백꽃이 나를 보기 위해 여태 기다리고 있었다.

 

 

 

간월도 기념탑

 

 

 

 

 

 

 

 

 

 

 

 

 

 

 

 

무학대사가 어머니 태중에 계실 때

부친이 보시던 일이 잘못되어 국채가 생겨 빚을 깊을 길 없어 피신하다 사령이 부인을 대신 호송하여 서산 현감으로 가던 중

갑자기 산기를 느껴 쉴 곳을 찾게 되었으나 때는 엄동설한이라 산천엔 적설인데

오직 한 곳이 기이하게 눈이 없어

마침내 이곳에 몸을 풀고 아이를 옷가지로 덮어두고 현감에 이르니

원이 부인의 몸이 몹시 피로해 함을 이상히 여겨 그 연유를 물어 알고 인간의 도리가 어찌 이럴 수 있으랴 하며

사령을 아이 있는 곳에 보내니

큰 학이 두 날개로 깔고 덮어 아이를 보호하고 있는 지라 돌아와 이 사실을 이야기 하니 원이 크게 상서한 일이라 하며

부인을 보고 아이 이름을 무학(무학)이라고 지어주었으며 이십세에 출가 한 스님은 이곳 간월암에 토굴을 지어 열심히 수도하던 차

달을 보고 도를 깨치시니 나옹스님이 더 배울 것이 없다 하시며

법호를 무학(무학)으로 지어주었으며,

고려의 국운도 저물어 갈 무렵 스님께서는 함경도 고원 백연암에서 이성계에게 500일 기도를 올리게 하였으니 기도 마치는 달에

이성계의 서까래 세개를 짊어진 이상한 꿈을 해몽하시고 이미 이태조가 될 것을 짐작하시어, 스님께서는

한양터를 잡으시고 창여문(창여문)이란 이름으로 경복궁을 28간 으로 지으시니 이미 28대의 왕운을 짐작한 것 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간월도 황도 등을 사폐지로 정하여 스님께 드렸으며 그 후 조선왕조의 배불정책으로 암자가 완전 폐사 된것을

1941년 만공선사께서 중창을 하시고

이곳에서 조국광복 1000일 기도를 마치면 광복을 맞으리라 예언을 하신 뒤 광복기도를 마친 다음날 해방을 맞이 하셨으니

조선의 건국과 해방을 함께한 의미있는 기도도량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며, 성철스님 등 많은 수도인들이

이곳 간월암에서 득력을 하였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