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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대구+경북 여행

(대구) 대구 근대화 거리- 청라언덕, 계산성당, 이상화, 서상돈 고택

 

대구 근대화 거리

청라언덕,제일교회, 3.1만세운동계단, 계산성당, 이상화, 서상돈 고택

 

 

 

 

계산 성당을 나와 3.1만세운동 계단길을 오르는데

군데군데 대구의 옛 사진들이 전시되어 유익한 정보들을 접할 수 있었다.

 

청라언덕은

어렸을 적 초등학생 때 불렀던 동무생각(박태준 작곡 이은상 작사)에 나오는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나오는 청라언덕이 바로 이곳이다. 

 

 

 

계산 성당에서 본 제일교회

 

 

 

3.1만세운동길

청라언덕을 오르는 길로 1919년 3.1 만세운동 당시 만세운동을 준비하던 학생들이 일본군의 감시를 피해

지나다녔던 길로,

다른 이름으로는 90계단길이라고도 한다.

 

 

3.1만세운동길 오르는 계단 옆에는 대구의 옛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청라언덕

 

 

 

동무생각 詩碑

 

 

 

 

 

 

 

 

 

 

 

고압산소 치료기(Hyperbaric Chamber)

고압산소치료기는

가압장치 안에서 환자에게 산소를 흡입시키는 의료장비로, 일산화탄소의 급성 중독 치료 등에 많이 이용된다.

이 고압산소치료기는 1970년대 초 미국 북장로교 Van Cleve 선교사가 가져온 설계도를 바탕으로

대구 한성메디칼(구 한성공업사) 고 최운한 대표가 국내 최초로 제작한 장비이다.

1972년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응급실에 설치된 후 2012년까지 약 40년간 사용되었다.

이 장비를 모델로 비로서 전국에 고압산소치료기가 확산되었으며, 1970~1980년대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사경을 헤매었던

수많은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청라언덕은 대구 기독교 발상지

 

 

 

 

 

 

 

 

 

 

 

 

 

 

청라언덕에서 내려다 본 계산성당과 대구 시내

 

 

 

 

 

 

청라언덕을 내려와 본 대구 제일교회

 

 

 

 

청라언덕 제일 교회까지 둘러보고 다시 계산 성당으로 내려오니 사방은 어두워진다.

 

고층빌딩과 아파트에 둘러싸여 초라할 만큼 이상화 고택과 서상돈 고택이 골목길을 돌아 마주 보며 있는데,

이미 개방시간이 지나

인적없는 두 고택을 들여다보고 아쉬운 발걸음을 옮긴다.

 

 

이상화 고택

 

이상화 고택은 1999년부터 고택을 보존하자는 시민운동을 시작으로

군인공제회에서 인근 주상복합아파트를 건립하면서 고택을 매입해 지난 2005년 10월 27일 대구시에 기부하여,
대구시는 그동안 고택을 보수하고 고택보존시민운동본부에서 모금한 재원으로 고택 내 전시물 설치를 하였습니다.

이상화 고택은 암울한 시대를 살면서 일제에 저항한 민족시인 이상화의 정신을 기리고,

후손에게 선생의 드높은 우국정신과 문학적 업적을 계승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 출생 ∼ 사망 : 1901. 5. 9 ∼ 1943 (대구 출생)
  • 호 : 무량(無量), 상화(尙火), 상화(想華), 백아(白啞)
  • 주요활동
    • (백조)동인
    • 프랑스 유학준비를 위하여 1922년 동경외국어전문학교인 '아테네 프랑세' 입교
    • 1927년 의열단 이종암 사건으로 구금
    • 3.1운동 대구학생운동 선봉, 개벽지를 중심으로 시,소설,평론등을 발표
    • 시집 : 늪의우화, 나의침실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등
  • 이상화 시비 : 달성공원내 소재

 

 

 

 

 

 

고층건물과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는 이상화 고택의 맞은편에 서상돈 고택이 있다.

 

서상돈 고택

 

서상돈은 조선 고종 때의 민족운동가 입니다.
1898년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의 간부로 활동하면서 러시아의 내정간섭을 규탄하고 민권보장 및 참정권획득 운동을 전개하였고
1907년 대구의 광문사의 부사장으로 재직 중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할 것을 제의하고 국채보상취지서를 작성 발표하는 등

국권회복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그의 고택은 2008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복원되어,

이상화고택과 함께 중요한 거점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 출생 ∼ 사망 : 1851 ∼ 1913
  • 주요활동
    • 1859년(철종 10) 대구 정착
    • 1898년 독립협회, 만민공동회 간부로 활동
    • 1907년 금연으로 국채 1300만환을 보상할 것을 제의<국채보상취지서>발표
    • 전국적으로 국채보상운동 전개하였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실패하였으나
      모인 자금은 그 뒤 민립대학 설립운동에 쓰임
    • 1999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국채보상운동 기념관 : 국채보상공원내 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