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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전남 여행

(전남 구례) 새해 둘째 날 지리산 천은사(泉隱寺)

 

새해 둘째 날 지리산 천은사(泉隱寺)

 

 

 

언제 : 2016년 1월 2일 토요일

어디 : 전라남도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 70번지

 

새해 둘째 날

지난밤 막내동서가 아직 1,000m 이상의 높은 산은 올라본 적이 없다는 얘기에 막내동서를 위해 산행을 하기로 했다.

오늘 목표는 지리산 노고단으로 정하고

구례에서 성삼재를 오르다가 손아래 처남이 시암재 휴게소에서는 호떡과 어묵을 먹어야 한다며 멈춘다.

시암재 휴게소에서 속을 채우고 성삼재에 도착하니 아뿔싸!

노고단이 새해맞이 일출 명소로 알려져 주차장이 만차라 꾸불꾸불 도로 옆에 세워야 한다는데

  달궁 방향과 시암재 방향의 길옆 공간을 찾아봐도 커브 길이라 마땅히 주차할 공간이 없어

노고단 산행을 포기하고 천은사에 들렀다.  

 

 

 

구례에서 성삼재로 오르는데

천은사 입구에서 입장료 1,600원씩 내야 한단다. 천은사는 들르지 않고 노고단을 오르기 위해 성삼재까지

오르는 도로를 이용할 뿐인데, 왜 도로를 막고 입장료를 징수하는 것일까?

 

지리산 '천은사'가 지리산 노고단 성삼재를 찾는 탐방객들에게 공원문화유산 입장료를 받거나 통행을 방해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이 2심 법원에서도 인정됐기에 부당하게 입장료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판결이 나왔는데

벌건 대낮에

국민이 한 사람당 1,600원씩 강탈을 당하는데도 국립공원 측에서는 왜 법적 조처를 하지 않는 것일까?

 

 

 

시암재 휴게소

제법 유명한지 호떡과 어묵이 아주 잘 팔린다. 

 

 

 

시암재 휴게소에 전시된 약초로 담은 술

 

 

 

 

 

 

 

멀리 만복대와 묘봉치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성삼재

성삼재 주차장은 이미 만차가 되어 꾸불꾸불한 도로 한편에 주차를 하여 매우 위험하였다.

성삼재의 높이는 1,102m

 

 

 

천은사 입구에 있는 천은저수지

 

 

지리산 천은사 일주문

일주문은 속세와 불계의 경계 역할을 하며,

 특히 지리산 천은사 현판은 명필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1705~1777)가 쓴 현판이다. 

 

 

천은사는 신라 때 창건된 고찰이다.

신라 중기인 828년(신라 흥덕왕 3년)에 인도의 승려 덕운(德雲)이 중국을 통해 신라에 들어 왔다가

창건했다는 설이 전해 왔으나, 875년에 도선이 창건하고 후에 덕운이 고쳐 지은 사실이 와전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름은 감로사(甘露寺)였다.

 

고려 시대에는 절이 번성하여 충렬왕 때는 '남방제일선원(南方第一禪院)'으로 지정되었다.

 이후 임진왜란 등을 겪으며 소실되었고, 광해군 2년인 1610년에 개창되었다. 조선 숙종 때인 1679년에 단유(袒裕)가 2년에 걸쳐

절을 크게 중수하여 지금과 같은 모습이 갖춰졌고, 이름도 천은사로 개칭되었다.

 

 

 

 

 

 

 

 

천은사 전경

 

 

 

수홍루

계곡 위에 놓인 다리를 보통 피안교라 부르는데,

피안이란 온갖 번뇌에 휩싸여 생사윤회하는 고해의 이쪽 언덕 건너편에 있는 저 언덕을 뜻하므로,

 따라서 피안교란 열반의 저 언덕에 도달하기 위해 건너는 다리를 뜻한다.

 

 

 

수홍루를 지나니 내 안을 깨끗히 씻으라는듯 달콤한 샘물이 철철 넘친다.

 

 

 

천왕문

 천왕문은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을 모셔놓은 전각으로 수행의 중간단계를 의미하며

속세의 잡귀가 불세계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곳이다.

 

 

 

천왕문을 들어서니 널찍한 마당이 있고 범종루가 높다란 계단 위에 있다.

 

 

 

범종루

 

 

 

락보전

대웅전 대신 극락보전이 사찰의 주된 전각으로

중생들의 왕생극락을 인도하시는 아미타부처님과 그 협시보살들을 모신 법당.

 

 

극락보전 아미타후불 탱화 - 보물 제924호

영조 52년(1776)에 신암(信菴)을 비롯한 승려화가 14명이 그린 이 그림은 제작연대와 그림의 제목 뿐 아니라

각 등장 인물들의 명칭이 적혀있어 아미타불화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희운당

 

 

 

설선당

주지실과 종무소 그리고 스님들의 요사채로 쓰고 있다.

 

 

보제루

대중의 법요식(法要式) 집회소로 사용하는 건물로, 극락보전 앞에서 바라본 전경

 

 

 

스님의 걸음걸이가 힘차다.

 

 

 

회승당

요사채로 사용하고 있다.

 

 

방장선원

천은사를 흐르는 계류가 본당과 선원을 가로지르고 있고 그 위에 운수교가 놓여 있는데,

이곳은 스님들의 참선수행처라 일반인들은 일체 출입할 수 없다.

 

 

 

 

 

 

 

팔상전 - 응진전

팔상전은 석가모니부처님의 생애인 여덟장면을 탱화나 존상으로 모신 곳

 

 

 

관음전

사찰에 따라서는 원통전, 대비전, 보타전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종석대와 노고단 방향

 

 

 

구례에서 성삼재 오르는 고갯길 중간 즈음에 있는 천은사는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은근히 정이 가고 포근한 느낌이 드는 절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일주문 현판이다.

현판의 글씨체는 구불구불 흐르는 물줄기 같기도 하고 지리산 속에 부는 바람 같기도 하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와 함께 무지개다리 위에 날씬한 2층 누각이 수홍루인데

저만치 뒤에서 수홍루 무지개다리 사이로 천은 저수지를 바라보면 저절로 감탄사가 나오는 절경을 볼 수있다.

 햇빛에 반사된 저수지와 지리산 깊은 계곡 사이 장송들이 서로 의지하고 보듬으며 천 년을 살아

우리에게 삶이 이런 것이라고 보여 주며, 바람에 소나무 흔들리는 소리가 너무 청아해

 속세의 고해를 헤치고 피안의 해탈세계에 있음을 알게 한다.

 

 

 

천은사 설화와 전설

절이름이 바뀐 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단유선사가 절을 중수할 무렵 절의 샘가에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나 사람들을 무서움에 떨게 하였으므로

이에 한 스님이 용기를 내어 잡아 죽였으나 그 이후로는 샘에서 물이 솟지 않았다.
그래서 ‘샘이 숨었다’는 뜻으로 천은사라는 이름이 붙였다고 한다.

 

그런데 절 이름을 바꾸고 가람을 크게 중창은 했지만 절에는 여러차례 화재가 발생하는 등의 불상사가 끊임없이 일어났다.
마을사람들은 입을 모아 절의 수기(水氣)를 지켜주던 이무기가 죽은 탓이라 하였다.

얼마 뒤 조선의 4대 명필가의 한 사람인 원교 이광사(李匡師, 1705~1777)가 절에 들렀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자 이광사는 마치 물이 흘러 떨어질 듯 한 필체[水體]로 ‘지리산 천은사’라는 글씨를 써 주면서 이 글씨를 현판으로

일주문에 걸면 다시는 화재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사

람들은 의아해 하면서도 그대로 따랐더니 신기하게도 이후로는 화재가 일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