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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부산+경남 여행

(부산) 동짓날 찾은 선찰대본산 금정총림 범어사(禪刹大本山 金井叢林 梵魚寺)

 

동짓날 찾은

선찰대본산 금정총림 범어사(禪刹大本山 金井叢林 梵魚寺)

 

 

 

언제 : 2015년 12월 22일 화요일

어디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 금정산 범어사

 

 

어느새 올해도 동짓날이 되었으나

 정작 자신을 위한 어제의 돌이킴과 오늘의 자리 그리고 내일을 살펴보지도 못한 체 2015년도 기울고 있다.

 

일기예보에 내일(12/23)은 전국에 비가 내릴 예정이라지만,

올해를 정리하는 마지막 여행길은 부산 금정산 범어사와 해운대 야경 그리고 우리나라 3대 사찰이며 삼보사찰(三寶寺刹) 인

양산 통도사에 들러 통도사 암자 순례를 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내일을 바라보려고

2박 3일 여정에 올랐다.

 

 

 

선찰대본산

해인사, 통도사와 함께 영남의 3대 사찰로 불리며, 특히 선불교의 전통이 강해서 선찰대본산이라 불린다.

 

구한말, 성월스님이 범어사 주지로 있을 때

범어사를 선찰대본산으로 명명하고 당대의 최고 고승 경허스님을 범어사 조실로 초빙했다.
선찰대본산은 마음의 근원을 궁구하는 수행도량의 뜻으로 참선을 통해서 마음 속에 일어나는 갖가지 잡념과 망상을 쉬게 하고,
자신의 내면세계의 참다운 불성을 깨닫도록 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범어사 등나무 군락지 : 천연기념물 제176호

범어사 가람 한 편에 위치한 등나무군락에는 약 6,500여 그루의 등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면서 자생하고 있다.

이처럼 넓은 지역에 걸쳐 엄청난 수의 등나무들이 자생하는 군락은 전국적으로 그 유례가 드물다.

특히, 5월경에는 등나무마다 꽃들이 만개해서 화려한 선경(仙景)을 연출한다.

 

예로부터 이 계곡을 꽃을 피울 때 그 경치가 아름다워 등운곡(藤雲谷)이라고 했다. 등나무 외에도 280여 종의 나무들과

희귀식물들이 식생해서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소중한 자연유산이다.

 

 

 

부산은 따뜻한 남쪽 지방이라 동백꽃이 만개한 것인가?

아니면

겨울이라 핀 것인가?

 

 

총림(叢林)

총림(叢林)은 빈댜바나(산스크리트어: Vindhyavana)의 의역으로 음역하여 빈다바나라고도 하며, 많은 승려와 속인들이

화합하여 함께 배우기 위해 모인 것이 마치 나무가 우거진 숲과 같다고 하여 총림이라 한다.

현재는 승려들의 참선수행 전문도량인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승가대학, 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律院)을

모두 갖춘 사찰을 지칭하는 말이며, 총림의 최고지도자를 방장(방장)이라 부른다.

 

 

 

당간지주(幢竿支柱)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5호

옛날에는 사찰의 입구에 도량의 경계를 표시하는 깃발이 있었다. 당(幢)이라고 불리는 이깃발은 나무, 철 등으로 만들어진

기둥을 뜻하는 당간(幢竿)에 달렸으며 당간은 한 쌍의 돌기둥 즉, 당간지주(幢竿支柱)에 의해 고정되었다.

고려 말기 또는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범어사 안내도

 

 

범어사(梵魚寺)

부산 금정산에 위치한 범어사는 신라 제30대 문무왕 18년(678년)에 의상대사가 화엄십찰 가운데 하나로 창건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동래현 북쪽 20리에 있는 금정산 산마루에는 금빛을 띤 우물이 항상 가득차 있으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 속에 금빛 나는 물고기가 오색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놀았다고 하여 '금샘'이라고 하였다.
하늘에서 내려온 금빛고기와 황금우물 그리고 산 이름을 따서
금정산 범어사라고 절 이름을 지었다.

 

 

 

조계문(曺溪門) : 보물 제1461호

가람 진입로에 순차적으로 세원 삼문(三門) 중의 첫째 문으로 산문(山門)이라고도 하며,

기둥이 일렬로 나란히 서서 지붕을 받치므로 일주문(一柱門)이라고도 한다.

조계문은 다른 사찰의 일주문들과 달리 자연암반 위에 돌기둥 4개를 세워서 3칸을 형성했다. 한국 사찰에서는 그 유례가

없을 뿐 아니라 자연과 조화된 빼어난 조형미를 자랑한다.

광해군 6년(1614) 묘전화상이 창건한 후 숙조 44년(1718)에 돌기둥으로 교체해서 지금에 이른다.

 

 

 

 

1902년 8월 14일 범어사 조계문(일주문)

 

 

 

천왕문(天王門)

 

 

 

천왕문에서 바라본 일주문

 

 

 

불이문(不二門)

다른 절들은 요사체나 수행공간을 제외하곤 돌담이 보이지 않는데, 이곳은왕문에서 보제루까지 돌담이 있어

조금은 삭막하게 보이기도 하다.

 

 

 

불이문에서 바라본 천왕문

 

 

 

보제루(普濟樓)

 

 

 

보제루 밑을 통과하면 게단 너머로 대웅전이 보인다.

 

 

 

범어사 대웅전(梵魚寺大雄殿) : 보물 제434호

좌 : 지장전 - 중앙 : 대웅전 - 우 : 관음전

 

△ 

 

대웅전 내부

 

 

동짓날이 되면 신도들은 부처님 앞에 팥죽을 공양물로 올리고,

한 해의 잘못과 무명을 참회하며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특히 꼭 버려야 할 탐·진·치 삼독을 버려 무명에서 해탈 한 후,

한 해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경건한 마음을 되새긴다.

 

 

비로전 - 미륵전 - 금어선원입구

금어선원은 대웅전 중심공간에서 오른쪽 비로전과 미륵전 뒤편의 아늑한 뜨락에 자리잡고 있다.

 

 

 

 

 

 

 

대웅전에서 내려다 본 풍경

전면의 건물은 입구에서 보면 보제루 현판인데, 대웅전에서 보면 금강계단이네.

 

 

 

범어사 삼층석탑(梵魚寺三層石塔) : 보물 제250호

 

 

 

 풍경소리가 땡그렁~ 바람을 헤치고 나에게 말한다.

기다리고 있었네, 어서 오시게!!!

 

 

 

종루

 

 

 

팔상.독선.나한전(捌相 獨聖 羅漢殿)

 

 

 

나한전 큰 바위 아래 약수

 

 

 

12월도 22일 동짓날,

범어사에는 붉은 감이 삭막한 가지에 남아 속절없이 떨어질 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쩌면

오지 않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범어사 은행나무

수령 : 580년 - 수고 : 25m - 나무둘레 : 6.6m

이 은행나무는 임진왜란 후 노승 묘전(妙全)스님께서 옮겨 심은 것으로 수령이 약 580년 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나무의 은행이 열지 않아 3백 년 전에 절에서 맞은편에 은행 수나무 한 그루를 심어줘 그 후부터 한 해

약 30여 가마의 은행을 따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설법전 앞 은행나무를 보고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대나무가 줄지었고,

 

 

 

금어선원 담 너머엔 동백꽃이 만개했다.

 

 

 

팔상. 독성. 나한전 앞 바위에서 본 범어사 지붕들

 

 

 

 

 

 

 

범어사 돌바다(Sea of Rocks)

범어사 등나무 군락지에서 범어천을 따라 올라가면 금강암을 지나 금정산성 북문으로 가는 길까지 지천으로 널려있는

엄청난 바위 천지를 만날 수 있다. 돌바다(암괴류)의 폭이 70m정도 되고 산사면 방향으로 길이 2,500m 족히

넘어 보이는 바위들이 많이 쌓여 이루어진 것이다. 돌바다는 주로 바위가 물리적 화학작용에 의해 절리(바위에 갈라진 틈)를

따라 물이 스며들면 얼고 녹고 하는 과정을 통하여 깨어지고 오랜 시간에 걸쳐 중력에 의해 주저앉으면서 만들어진다.

돌바다 밑으로 물이 흘러 대성암 각해선림 구들장 아래로 숨어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선의 경지에 불심을 듣는다 해서

{금정 8경}중 하나인 「대성은수(大聖隱水)」라 하였다.

 

 

 

 

 

 

이 돌길은 약 15년 전 금정산성 북문에서부터 내가 걸어와 범어사를 찾았던 길이다.

 

 

 

 

 

 

 

스님의 걸음

 

 

 

잘 계시게, 범어사여!

 

 

 

한때 눈물을 흘려야 했던 적이 있었다.

어떤 이유로 아내와 아이들이 인천에서 살게 되고, 나는 지인을 통해 일할 수 있는 부산으로 내려왔다.

지인은 중량물 이전하는 일을 하였는데,

모라동 여관에서 장기숙박하며 지인의 일을 도와주다가 휴일이면 버스 타고 금강공원이라는 곳에 내려 금정산성을 걸으며

아픔과 그리움을 식히다가 북문으로 내려와 이곳 범어사를 보았는데,

돌이켜 보니 15년은 지난 일이다.

 

7개월을 지내는 동안 금정산성은 나의 피난처였고, 너른 바다를 내려다보며 꿈을 다지다가 그 복(福)도 다했는지,

뜻하지 않은 사고로 더는 일을 못 하고 처자식이 있는 인천으로 올라와 정붙여 여태 살아

오늘 이곳에 왔다.

 

 

 

세월은 야속이 15년이 흘렀다.

이제 내 나이 육십 중반, 아직 살 날은 많지만, 아팠던 지난날을 돌이켜 보며 다시는 그런 아픔이 없어야 함에도

바람 잘 날 없이 시끄러운 것이 삶인가 보다.

 

내가 언제 다시 범어사에 올 수 있을까만, 아픈 날을 돌이켜 보는 귀한 시간이었고, 동짓날은 불교 축제일인지

많은 사람으로 붐볐고 범어사 달력을 선물 받아 2박 3일 동안 관심을 두어야 했다.

 

 

이젠

35년 전 나의 신혼여행은 부산 - 충무 - 여수를 다녔는데, 우리의 첫날밤 묵었던 해운대를 찾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