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의 소금강 금산과 보리암
명승 제39호
어디 :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상주리
국내에서 가장 가고 싶은 여행지의 하나가 남해 금산과 보리암이었는데,
겨우 시간을 내어 천리길 여행을 떠났는데
이틀후면 장마가 온다며 하늘이 수시로 햇볕을 보이다 구름을 일으키곤 하여 마음만 급하게
남해의 금산과 보리암을 다녀왔습니다.
장마가 오지 않는다면 금산 38경과 남해 12경에서 으뜸인 금산 일출도 보고, 차분하게 아름다운 남해의 풍경에 젖어
틉틉한 막걸리도 마셨을 터인데......
보리암
683년 원효대사가 이곳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한 뒤로
1660년 조선 제18대 현종이 왕실의 원당으로 삼았던 곳이다.
금산(錦山 705m)
상주 은모래비치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남해금산은 강화도 보문사, 낙산사 홍련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기도처로 잘 알려진 보리암이 있어 남해를 찾는 관광객에게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남해금산은 산 전체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아름다운 남해바다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는 곳으로,
특히 쌍홍문을 비롯해 38경 모두 눈부신 비경에 계절마다 독특한 색을 가진 비단같은 산이며,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가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보광산(지금의 금산)에서 기도를 드리다 자신이 왕이 되면 산 전체를 비단으로 감싸주겠다고 한 산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산의 이름을 금산(錦山)으로 바꿨다는 조선 건국에 얽힌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복곡 제2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약 10여 분 걸으면 앞에 아주 흥미로운 바위가 보인다.
그 바위가 대장봉과 형리암이다.
대장봉과 형리암
마치 형리가 대장에게 인사를 하는듯한 형상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이곳에서 보리암으로 가는 길과 금산 정상으로 가는 두 갈래 길이 있는데 보리암으로 간다.
보리암 전경
보리암 전경
사실 보리암은 여수 돌산 향일암처럼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세워진 암자다.
아래쪽으로 약 200m 내려가면 태조 이성계가 기도하신 곳이 있는데 너무 덥고 힘들어 가보지 못했다.
짓궂은 막내아우
보리암전 3층석탑(菩提庵前三層石塔)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4호
이 탑은 금산 정상의 절벽에 위치하고 있으며 비보(裨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보리암과 인접해 있기 때문에
보리암 전 삼층석탑으로 불리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683년(신라 신문왕 3)에 원효대사가 금산에 처음으로 절을 세운 것을
기념하기 위해 가락국의 수로왕비인 허태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파사석(婆娑石)으로 탑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에 의하면 허태후가 가져온 부처의 사리를 이곳에 안치하기 위해 탑을 세웠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 탑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고, 양식 또한 고려초기의 것이기 때문에 전하는 이야기와는 사실상 멀다.
이 탑의 형식은 커다란 돌 하나로 된 단층 받침(基壇)을 세우고 면석(面石)에는 모서리기둥을 새겼으며,
그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각 층 몸체의 사면에는 모서리기둥을 새겼다. 지붕돌의 처마에는
4단의 받침이 있으며 약간의 경사를 두면서 자연스럽게 처리되었다. 꼭대기 부분(上輪部)에는
구슬 모양의 보주(寶珠)가 남아 있다.
** 비보(裨補) : 풍수지리상 나쁜 기운의 지역에 탑. 장승 등을 세워 나쁜 기운을 억누르고, 약한 기운을 보충하는 일.
해수관음보살상
삼층석탑 위에 나침반을 올려 놓으면 과학적으로 풀 수 없는 자기 바늘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자기 난리를 일으킨다.
음성굴(音聲窟 - 금산 제13경)
높이 2m, 길이 5m의 이 굴은 돌로 바닥을 두드리면 장구소리가 난다하여 음성굴이라 하며, 그 소리가
사람들을 노래 부르게 하고 춤을 추게하는 신비한 힘이 있다고 한다.
쌍홍문(雙虹門 - 금산 제15경)
금산의 관문으로 원효대사가 두 굴이 쌍무지개 같다고 하여 쌍홍문이라 함.
장군암(將軍岩)
이 바위는 장군이 검을 짚고 봉을 향하여 서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장군암이라 하며, 금산의 첫 관문인
쌍홍문을 지키는 장군이라 하여 일명 수문장이라고 한다.
특히, 이 바위를 휘감고 있는 송악으로 인해 장군암이 더욱 늠름해 보인다.
일월봉(日月峰)
두 개의 바위가 층암 절벽을 이루고 있는데 가까이 보면 일자형(日字形)을 이루고 있으나 멀리서 전체를
보면 월자형(月字形)으로 보여 일월봉이라 부른다.
제석봉(帝釋峰. 금산 제19경)
이 바위에 제석천(帝釋天)이 내려와 놀다갔다 하여 제석봉이라 부른다.
불교에서 제석천은 부처를 좌우에 모시는 불법을 지키는 신(神)을 말한다.
제석봉에서 바라본 부산산장(금산산장)
안타까운 일은 금산산장의 틉틉한 막걸리를 마시지 못하고 하산을 했다는 것이다.
7월 1일은 전남 강진의 백련사와 다산초당으로 가야 하고
7월 2일부터 장마가 시작된다는데 머뭇거릴 수 없어 안타깝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제석봉에서 바라본 상사바위와 멀리 상주 은모래비치(해수욕장)가 조망된다.
흔들바위(금산 제33경)
거북이 모양을 닮아 본래의 귀암(龜巖)이라 하였으나, 큰 바위가 한 사람의 힘으로 흔들거리기 때문에 요암(搖巖)이라고도 한다.
상사바위 가는 도중에 바라 본 보리암과 대장봉, 형리암, 화엄봉 그리고 제석봉
상주해수욕장이 한눈에 보인다.
상사바위
상사바위에 얽힌 전설은
여수 돌산에 사는 한 총각이 남해에 고기잡으러 왔다가 우연히 만난 과수댁을 사모한 끝에 상사병에 걸려 죽을 처지에 있었다.
이를 안 과수댁은 상사병을 고칠수 있다는 이 바위에서 총각과 운우의 정을 나눈 뒤 백년해로 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하늘은 수시로 변한다.
저 아래 섬이 노도로, 사씨남정기와 구운몽을 지은 서포 김만중이 유배생활 하다 생을 마감한 섬이다.
노도에는 그가 직접 팠다는 생터와 초옥터, 그리고 허묘가 남아 있다.
조선 후기 정치가로서, 문신으로, 효자로서, 소설가로서, 한글애호가로서, 시인으로, 한시대를 풍미한 대문호 서포의 발자취가
그 고뇌스런 일생과 함께 서려 있는 남해의 작은 섬 노도는 유배 문학의 산실이다.
싸리꽃
단군성전
금산 정상
망대(望臺 - 금산 제1경) - 경상남도 기념물 제87호
금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705m)로서 사방의 조망이 넓고 아름다운 남해를 바라 볼 수 있는 곳이라 하여 망대라 한다.
이 망대는 봉수대로써 고려 의종(1147~1170) 때 설치되어. 조선시대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이 봉수대는 조선시대 다섯 곳의 중심 봉수로 가운데서 동래에서 서울로 연결되는 제 2봉수로에 속한 최남단의 봉수대로
창선 대망산을 통해 사천, 진주등을 거쳐 서울로 전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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