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오릉(西五陵)의 설경(雪景)과 장희빈의 묘
사적 제198호
언제 : 2015년 12월 3일 목요일
어디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34-32
지하철 6호선 구산역을 나와 서오릉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펑펑 함박눈이 내린다.
마음속으로 그래 계속 내리라며 눈 속을 거닐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눈이 내리니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네요'라며 버스를 기다리던 중년 여인이 내게 말을 건네,
나도 '눈이 정말 얌전하게 내린다'고 대꾸하고 그녀의 상큼한 미소를 보곤
더 멋진 말로 응대하지 못함을 후회했다.
서오릉은 고등학생 때 소풍을 갔으니 대략 50여 년 만에 다시 찾는다.
서오릉에 도착하기 전에 눈은 그치고 햇볕인 나 빠르게 눈이 녹아버린다.
사적 제198호 서오릉
조선 왕실의 왕릉군으로 구리 동구릉 다음으로 규모가 큰 5기의 능과 2기의 원, 1기의 묘가 있다.
5기의 능(陵)
경릉 : 제7대 세조의 맏아들(성종의 아버지)과 소혜왕후 한씨를 모신 동원이강릉이다.
창릉 : 제8대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 한씨를 모신 동원이강릉
익릉 : 제19대 숙종의 원비 인정왕후 김씨를 모신 단릉
명릉 : 제19대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 민씨를 모신 쌍릉과 둘째 계비 인원왕후 김씨의 단릉
홍릉 : 제21대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 서씨의 쌍릉형 단릉
2기의 원(園)
순창원 : 제13대 명종의 아들 순회세자와 공희빈 윤씨의 원
수정원 : 제21대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 이씨의 원
1기의 묘
대빈묘 : 제19대 숙종의 후궁이자 경종의 모후인 희빈 장씨의 묘
서오릉 입구에 들어서면 먼저 수경원이다.
▽
수경원(綏慶園)
조선 제21대 임금인 영조(1694~1776)의 후궁 영빈 이씨(1696~1764)의 묘이다. 영빈은 어려서 궁녀가 되어
귀인을 거쳐 영조 6년(1730)에 영빈으로 책봉되었다.
영조 11년(1735)에 사도세자를 낳았고, 영조 40년(1764)에 69세로 세상을 떠났다.
수경원은 원래 연세대학교 안에 있었으나 1970년 9월 8일에 이곳으로 옮겨졌다.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 이씨
수경원을 나와 울창한 장송들이 늘어선 익릉에 도착한다.
익릉(翼陵)
조선 제19대 임금인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 김씨(1661~1680)의 단릉이다. 인경왕후 김씨는 김만기의 딸로
11세에 세자빈이 되었다가 숙종이 즉위하면서 14세에 왕비로 책봉되었으며 20세에 세상을 떠났다.
익릉은 현종의 능인 승릉(구리 동구릉 소재)의 양식을 따라 능상에 병풍석을 두지 않았다.
정자각은 맞배지붕이며 익실이 있다. 숙종의 명릉과 비교하여 석물의 규모가 크고, 경사지에 단을 이루어 지형에 맞춰
향로(香路)와 어로(御路)를 조성한 점이 독특하다.
▽
문화재청 자료
조선국 인경왕후 익릉
익릉에서 본 전면 풍경
이따금 눈발이 보이긴 하나 햇살에 눈은 금방 녹아버린다.
눈이 녹아 질퍽거리는 서오릉 길
순창원(順昌園)
조선 제13대 임금인 명종(1534~1567)의 맏아들 순희세자(1551~1563)와 공희빈 윤씨(1550~1592)의 합장묘이다.
순희세자는 7세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13세에 세상을 떠나 명종의 뒤를 잇지 못했다. 공희빈은 윤옥의 딸로 선조 25년(1592)에
43세로 세상을 떠났다. 임진왜란으로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여 순창원에는 현재 빈 재궁(梓宮)만 안장되어 있다.
재궁 : 왕, 왕대비, 왕비, 왕세자 등의 시신을 넣던 관
▽
눈 내리는 솔길을 걷겠다며 한껏 부풀었던 기대는 순식간에 녹아버리는 눈을 보며 아쉬움이 크다.
순창원을 나와 곧 경릉으로 발길을 옮긴다.
경릉(敬陵)
조선 제7대 임금인 세조의 맏아들이며 덕종으로 추존된 의경세자(1439~1457)와 왕비 소혜왕후 한씨(1437~1504)의 능이다.
덕종은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나 20세에 세상을 떠 그 아우인 예종이 임금이 되었다. 예종의 뒤를 이어 덕종의 아들인
성종이 임금이 되자
아버지를 덕종으로 추존하고 어머니도 인수대비로 존호를 올렸다.
능침의 배치는 정자각에서 볼 때 왕은 왼쪽, 왕비는 오른쪽에 모시는 것이 원칙이나, 여기는 반대로 되어있다.
덕종의 능침 석물은 원(園)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대왕대비로 세상을 떠난 소혜왕후의 능침은 능(陵) 형식으로
석물을 모두 갖추고 있다.
추존왕 덕종의 아버지 세조는 계유정난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하고 조카 단종을 유배 보낸 후 사약을 내렸다.
따라서 늘 이에 대한 마음의 짐이 있었으며,
사람들은 이러한 세조의 업보로 인해 그의 아들들이 단명하였다는 이야기를 주고 받곤 하였다.
의경세자의 죽음에 관해서도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
세조가 영월에 귀양 보낸 단종에게 사약을 내리기로 마음먹고 잠이 든 날 밤,
그의 꿈에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가 나타났다. 그녀는 분노한 얼굴로 나타나 세조를 꾸짖었다.
“너는 흉악하고 표독스럽게도 내 아들의 왕위를 빼앗고,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벽지로 내쫓더니 이제는 목숨까지 끊으려고 하는구나! 무슨 원한으로 이러는 것이냐?
네가 나의 아들을 죽이니, 나 역시 네 자식을 살려두지 않겠다.”
꿈에서 깬 세조는 다시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고 있는데, 동궁의 내시가 급히 달려와 세자가 위독하다는 말을 전한다.
세조는 급히 동궁으로 달려갔지만, 의경세자는 이미 세상을 뜬 후였다고 한다.
현덕왕후의 저주 때문에 세자가 숨을 거두었다고 생각하고 분노한 세조는 단종 복위 사건을 빌미로 현덕왕후를 폐위한 뒤
능을 파헤쳐 바닷가에 장사지냈다고 한다.
덕종의 묘
소혜왕후의 묘
소혜왕후보다 인수대비로 잘 알려진
인수대비는 성종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된 연산군 10년(1504) 연산군이 자기 어머니를 죽인 것에 항의하며 이마로 들이받아
68세로 죽어 경릉에 묻혔다.
조선국 덕종대왕경릉 - 소혜왕후부우강
대빈묘(大嬪墓)
조선 제19대 임금인 숙종의 후궁을 거쳐 왕비가 되었다가 폐위된 희빈 장씨(1659~1701)의 묘이다.
처음 궁녀로 입궁하였다가 숙종 12년(1686)에 숙종의 후궁이 되었고 숙종 14년(1688)에 소의의 품계에서 숙종의 첫 왕자
윤(뒷날 경종)을 낳았다. 숙종은 장씨를 희빈으로 올리고 인현왕후를 폐위한 다음 왕비로 책봉했다.
이후 숙종은 이를 후회하여 인현왕후를 다시 복위시키고 장씨를 희빈으로 강등 시켰다.
희빈 장씨는 숙종 27년(1701)에 인현왕후를 무고한 죄로 사약을 받아 43세로 세상을 떠났다.
아들 경종이 임금이 되면서 옥산부대빈으로 추존되고 묘의 이름을 대빈묘라 하였다.
대빈묘는 원래 경기도 광주에 있었으나 1969년 6월에 이곳으로 옮겨졌다.
장희빈
본명이 장옥정, 중인 출신이며 집안이 매우 큰 부자였다.
역관이었던 큰아버지 장현이 중국과의 무역업으로 큰돈을 벌어 집안은 당대 조선 최고의 갑부였다.
이런 집안 출신이기에 옥정은 비록 중인 계층이라도 어릴 때부터 금지옥엽으로 귀하게 자랐으며,
글공부 또한 사대부 집안 여자들 못지않게 했다.
하지만 그녀의 편안한 삶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0대로 접어들 무렵 집안이 풍비박산 났는데, 남인 세력의 돈줄 역할을 하던 큰아버지가 ‘경신환국’으로 몰락했기 때문이다.
경신환국
숙종은 14세 어린 나이에 임금 자리에 올랐는데, 조정은 남인이 주도하였고, 나이가 어려 조정을 이끌 경륜이 없던 왕은
나랏일 대부분을 남인에게 의존했는데, 숙종이 정치를 할 나이임에도 남인이 맘대로 나랏일을 요리하자
이에 불만을 가진 숙종은 1680년,
남인을 대거 내쫓고 서인으로 조정을 구성하는 일대 모험을 감행했는데, 경신년에 정치 국면이 바뀌었다고 해서
경신환국이라고 한다.
아무튼 이 일로 남인의 경제적 후원자였던 장현은 함경도 땅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으며,
장씨 집안도 몰락하자
옥정의 어머니는 옥정이 궁녀가 되면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 같아, 연줄을 대어 궁에 들여보냈다.
(숙종과 인현왕후 능인 명릉에서 이어짐)
멋진 설경과 눈 속을 걷겠다는 기대는 무너졌지만,
약 50여 년 만에 다시 찾아온 서오릉은 어떤 기억도 되살아나지 않는다.
그러나
기억을 더듬으며 이따금 흩날리는 눈발에 한적한 서오릉 둘레길을 혼자 걸었다는 것이 더욱 좋을 일이다.
후편에
산을 넘어 홍릉과 창릉 그리고 숙종과 인현왕후가 계신 명릉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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