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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충남 여행

(충남 공주) 태화산 마곡사(麻谷寺)

고찰(千古刹) 태화산 마곡사(麻谷寺)

 

 

 

언제 : 2015년 1월 22일 목요일

어디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로 966

 

 

언제인지도 까마득하다.

지인과 얘기 나누며 굽이굽이 태화산 골짜기 따라 흐르는 개울물을 거슬러 찾았던 마곡사

구한말

백범 선생께서 일본군을 죽이고 잠시 피신하셨다가 중이 되기 위해 머리를 잘랐던 절이

바로 마곡사다.

 

대한이 지났으니 다음 절기는 입춘이라지만, 아직 구정 추위도 남았고 더욱이 산사의 겨울은 길고 깊은데

홀로

마곡사를 찾았다.

 

 

 

태화천

태화산 남쪽에 자리한 마곡사를 휘감아 돌며 흐르는 물이 맑다.

 

 

마곡사 가는 길에 태화천 건너는 징검다리가 정겨웁다.

 

 

 

태화산 마곡사 일주문

 

 

 

마곡사는

택리지를 비롯한 수많은 지리지에서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져 살기 좋은 십승지로 뽑고 있단다.

 

 

가람 배치도

 

 

 

나뭇잎 무성한 봄, 여름, 가을에는 산의 속살을 볼 수 없지만,

겨울에는 속살을 볼 수 있어 좋다.

 

 

일주문 지나 매표소에서 입장료 2,000원을 내고 한 구비 돌아 태화천 건너 마곡사 가람이 보이고,

사바의 세계와 부처님의 세계를 경계하는 다리를 건너면 해탈문을 만난다.

 

 

해탈문

해탈문과 천왕문 사이 좌측에는 영산전과 선원이 자리하고 있으나

동안거나 하안거에는 일반인 출입이 통제된다.

 

 

영산전(보물 제800호)

영산전은 세조가 '만세불망지지(萬世不忘之地)'라 극찬하고, 풍수지리가들이 천하의 대혈이라 감탄하는

군왕대(君王臺)의 맥이 흐르는 곳이란다.

 

세조가 단종을 죽이고 왕이 되자

 마곡사에 은신하고 있던 매월당 김시습은  세조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떠나 버렸다.

김시습을 만나지 못한 세조가 절을 떠날 때 '매월당이 나를 버리고 떠났으니 연(輦)을 타고 갈 수 없다.' 하여

타고 온 연을 버리고 소를 타고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세조가 타고 왔던 연이 아직 마곡사에 보관 되어 있단다.

(마곡사 홈페이지 참조)

 

영산전은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우측에는 수선사, 좌측에는 선원인 매화당이 자리하고 있으며

하안거와 동안거 기간에는 스님들이 선원에서 참선하여 일반인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어

 담 너머 영산전을 담았다.

 

 

영산전 내부와 아래 편액은 동안거 기간이라 출입할 수 없어 소개 책자에서 담았다.

 

 

영산전 편액

세조가 마곡사에 왔다가 친필 세 글자를 써서 내렸다는데, 편액에는 세조대왕어필(世組大王御筆)이라는 글이 적혀 있다는데

보지 못해 아쉽다.(마곡사 홈페이지 참조)

 

 

출입통제된 영산전과 선원

 

태화선원

 

 

 

천왕문

 

 

 

명부전

뒤로 산 위에 산신각이 보인다.

 

 

산신각에서 바라본 마곡사 전경

 

 

 

극락교(極樂橋)와 범종루

 

 

 

스님들이 점심 공양을 하러 가는 모습

 

 

 

오층석탑과 대광보전

 

 

 

오층석탑(보물 제799호)

고려 말기 원나라 라마교의 영향을 받아 세워진 탑으로 다보탑, 금탑이라고도 한다.

2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후 머리장식을 올렸다. 일층 탑신에는 자물쇠를 새겼으며, 이층 답신에는 사방을 지키는

사방불(四方佛)을 새겼다. 머리장식으로 라마탑에 보이는 풍마동(風磨銅) 장식을 두었는데,

전세계적으로 희귀한 사례이며,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대광보전(보물 제802호)

마곡사의 주불을 모신 곳으로, 현판은 표암 강세황(1712~1791) 글씨

 

 

 대광보전 비로자나불 

진리를 상징하는 마곡사 주불이며, 오른쪽 손가락 끝으로 왼쪽 손가락 끝을 덮어 누르고 있는 독특한 손 모양을 하고 있으며,

대광보전은 남향이나 불상은 동향을 보고 있다.

 

대웅보전(보물 제801호)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효종 2년(1651년)에 각순대사에 의해 중수되었으며,

중심에 석가모니불과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불을 모시고 있다.

 

부처님들이 공간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를 대표해서 삼세불(三世佛)이라고도 부른다.  

 

대웅보전 내부 4개의 싸리나무 기둥을 안고 돌면 아들을 낳는다는 재미난 전설로 기둥이 윤기가 나고 반질반질하다.

 

마곡사 대웅보전 주련 해설

 

고불미생전(古佛未生前)  응연일상원(凝然一相圓)

옛 부처님 나시기 전에  의젓한 동그라미 하나

 

 

석가유미회(釋迦猶未會)  가섭기능전(迦葉豈能傳)

석가도 알지 못한다 했으니  어찌 가섭이 전하리

 

 

본래비조백(本來非조白)  무단역무장(無短亦無長)

본래 검지도 희지도 않으니  짧지도 또한 길지도 않도다.

 

 

대향각

그대의 발길을 돌리는 곳이란 팻말이 인상적이다.

 

 

대웅보전에서 내려다 본 마곡사 전경

 

 

 

마곡사  

현판은 근대 서화가인 해강(海剛) 김규진(1868~1933)의 글씨

 

5층 탑 뒤로 보이는 건물이 심검당과 범종루

심검당(尋劍堂)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5호

심검당이란 지혜의 칼을 찾는 집이라는 뜻으로 스님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방으로 언제 지어졌는지 알 수 없으나

정조 21 (1797년)에 보수공사가를 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ㄷ'자 건물이며

현판은 송하 조윤형(1725~1799)의 글씨

 

심검당

 

 

 

고방(庫房)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5호

심검당 북쪽에 있는 2층으로 된 창고이며, 심검당과 같은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 문신인

포저 조익(1579~1655)과 그의 셋째아들 송곡 조복양(1609~1671)의 문집목판인 포저유서 및 송곡문집 판각(유형문화재 제126호) 

등이 보관되어있다.

 

 

 

왼쪽 2층 건물이 고방(庫房)이며, 뒤로 마곡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대웅보전

 

 

 

마곡사 풍경

 

 

마곡사 풍경

 

 

 불자는 아니지만, 점심 공양을 마곡사에서 했는데,

지금까지 절에서 먹은 공양으로는 가장 맛난 점심이었다. 햄처럼 보이는 것은 당근을 넓게 썰어 튀김옷을 입혀

마치 햄처럼 보인다.

 

 

 

 

좌측 응전전, 중앙 백범당

 

 

백범당(白凡堂)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신 백범 김구(1879~1949) 선생이 1896년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분노로 황해도 안악 치하포나루에서

일본군 장교를 죽이고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하다가 탈옥, 마곡사에 은거할 때 원종(圓綜)이라는 법명으로 잠시 출가하여

수도하였던 곳이다. 1898년 마곡사를 떠난 후, 해방되어 1946년 귀국해 기념 식수한 향나무가 있다.

 

 

 

 

 

 

1946년 마곡사를 방문한 백범이 마을 사람들과 찍은 사진

왼쪽에는 완장을 찬 좌익이 있고, 우측에는 넥타이를 맨 우익이 함께 하여 사상보다는 하나된 조국을

원했던 것을 볼 수 있다.

 

 

 

 

 

 

멀리 보이는 다리가 백범교이며, 우측에 승려가 되기 위해 삭발한 바위가 있다.

 

 

 

이젠 다시 떠나야 할 시간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다시 찾은 마곡사

 마곡사 구석구석을 다니며 아련한 추억이 아롱다롱 매달린 희미한 기억을 더듬는 길손의 마음 또한 착잡하였다.

인연은 오고 가는 것이라.....

 

이제 떠나면, 어느 때 어떤 인연으로 다시 마곡사를 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