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牛馬처럼 걷는 서울 여행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 한국의 도교문화 - 1

 

한국의 도교문화 - 1

 

 

언제 : 2014년 1월 29일 수요일

어디 :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은 2013년 마지막 기획특별전으로

전근대 시기 한국의 도교문화 전반을 종합적으로 살핀 전시는 국내외를 통해 이번이 처음이라 할 수 있는

"한국의 도교문화- 행복으로 가는 길"을 마련하였다기에

구정이 내일 모레인데도 일부러 시간을 내어 둘러 보며 설명을 들을 수 있어

한국 도교문화 유산에 대한 이해를 더하고, 도교문화의 현대적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낙서무늬 주전자

조선

낙수에서 나타난 신령스런 거북의 등에 있었다는 모양이다. 우는 낙서에 의해 홍범구주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이 유물은 거북의 귀갑문 등에는 별자리를 형상화한 것처럼 점무늬가 연결되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수를 나타내는 것이다.

중앙의 5를 기준으로 가로, 세로, 대각선 등 어느 쪽을 더해도 15가 되는 수로 구성되어 있다.

 

 

팔괘무늬 연적

1. 조선 18세기 초

2. 조선

팔각형의 연적이다. 면마다 원권 내에 팔괘를 넣었고, 연적 상면에는 어딘가로 떠나가는 배와 배웅하듯 나무 아래 두 사람이

서 있다. 보통 고사인물무늬의 일종이나 물고기 무늬 등이 시문된다.

 

 3. 조선

연적 삼면에는 음양과 팔괘문이 시문되었고, 몸체에는 연잎을 타고 오르는 거북이의 형상이 새겨져 있다.

바닥에 '대명선덕년재'라는 명문이 적혀 있다.

 

 

사신무늬 거울

1. 고려    2. 고려

거울에 새겨진 사신무늬는 고려시대 석관이나 벽화 무덤 등에 보이는 사신의 모습과 거의 일치하고 있어 고려시대에

일정한 사신의 문양 패턴이 정해져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십이지상

경주 용강동 출토 - 통일신라 8세기 - 국립경주박물관

땅을 지키는 열둘의 신장이다. 이들은 12방위에 맞추어서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소, 원숭이, 닭, 돼지, 개, 쥐, 양 등의

얼굴 모습을 가지며 몸은 사람으로 나타나는데, 도교의 방위개념에서 영향을 받았다. 쥐를 비롯해 소, 호랑이, 토끼, 말, 양, 용 등의

7개의 십이지상이 출토된 용강동 돌방무덤은 이중의 호석을 돌린 지름 16m의 규모이다.

 

 

 

 

 

강서대묘 청룡 모사도

고구려(모사 1930년 경)

남포시 강서구역 삼묘리에 위치하는 강서대묘의 널방에 표현된 사신도이다. 널방 돌 벽면에 직접 벽화를 그렸는데

전면에 가득 차게 사신도를 그려 넣었다. 동쪽을 상징하는 청룡은 널방 동벽에 구현된다.

 

 

강서대묘 현무 모사도

고구려 (모사 1930년 경)

 북쪽을 상징하는 현무는 널방 북벽에 구현된다. 뱀이 거북을 감은 형상으로, 거북과 뱀이 마주보면서

서쪽을 향해가는 모습이다.

 

 

강서대묘 백호 모사도

고구려(모사 1930년 경)

서쪽을 상징하는 백호는 널방 서벽에 구현된다. 남쪽의 입구를 향해 포효하며 내닫는 모습이다.

 

 

 

 

 

 

도교삼존상(노군상)

중국 북주 568년 - 도쿄예술대학 대학미술관

기단 4면의 명문에 주존이 노군임을 밝히고 있고 제작연대도 정확해 남북조 시대 도교상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뮤물이다. 주존의 자리에는 노군(태상노군:노자)이 위치하고, 그 주위에는 관복을 입고 손에는 홀을 들고

머리에는 관을 쓴 협시가 위치한다. 도교상 주존의 지물인 주미가 오른손에 들려 있고, T자형과 유사한 빙궤에 왼손을 얹고

있어 협시의 지물인 홀, 머리에 쓰고 있는 관과 함께 이 시대 도교상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도교사면상 

중국 서위 554년 - 오사카시립미술관

사다리꼴의 두꺼운 판형 석재의 네 면에 감실이 열려 있는데, 정면과 뒷면의 큰 감실에 삼존, 좌우 옆면의 작은 감실에 일존이

표현되어 있다. 큰 감실 안의 주존은 옷자락을 크게 늘어드리고 있어, 여래상에서 흔히 나타나는 상현좌를 방불케 한다.

또한 비슷한 구도의 북위의 도교 사면상과 비교할 때 감실 밖의 비천이나 역사, 보살풍의 협시 등의 선각 표현이 보다

치밀해지고 있어 시대적 추이를 읽을 수가 있다.

 

 

도교삼존상

 중국 북위 515년- 오사카시립미술관

노자로 추정되는 주존과 장신의 협시로 이루어진 도교 삼존상이다. 수염을 기르고 보관을 쓴 주존은 소매가 긴 앞여밈의 옷을

입고 허리띠를 매고 있으며, 오른손에는 주미라 불리는 위의구를 쥐고 있다. 광배에는 주존의 두부를 덮고 있는 듯이

서로 얽힌 두 마리의 용과 괴수가 표현되어 있다. 아래쪽 기단부에는, 정면에 공양자와 상의 발원자인 개씨의 이름이,

측면에는 연창4년의 기년명이 새겨져 있다. 

 

 

 

 

 

 

 

 

공자가 노자에게 예(禮)를 묻다

조선 1700년

우리나라에 전해 오는 '공자성적도'중 가장 시기가 올라가는 작품이다. 이 중 '문례노담'은 공자가 제자인 남궁경숙과 더불어

주나라에 건너가서 당시 주왕실의 도서관 사서로 있던 노담에게 예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는 고사를 그림으로 풀어준 것이다. 

 

 

도교 인물 모양 주전자

고려 12~13세기 : 국보 제167호

두 손에 선도(仙桃)를 받쳐 든 인물 모양의 주전자이다. 의복과 봉황이 장식된 관, 선도를 받쳐 든 모습에서 인물은

최고 여성신인 서왕모(西王母)일 가능성이 있으나, 서왕모의 이미지가 이미 여성적인 것으로 확립되어 있던 점을 감안할 때,

도교 의례인 재초를 집전한 도사일 가능성이 있다. 

 

 

1. 도교 인물 모양 연적 - 고려 12세기

두 손으로 정병을 든 인물을 형상화한 연적으로, 인물은 관묘이나 의복의 모습에서 불교 승려나 유교 사인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도교 의례를 집전한 도사로 추정된다.

 

2. 나무로 만든 도교 인물상

도사로 추정되는 인물을 형상화한 목조상이다. 일반적으로 도사의 기본 형태는 관복집흘이라 하여 관복을 입고

휼을 들고 있으며 어깨 부근에 향토 같은 것을 두른 것이 기본이다. 이 목상 또한 관복을 입고

무언가를 들고 있지만 지물은 파악되지 않고, 어깨에는 금으로 수놓은 망토를 입고 있어 도사상으로 보인다. 

 

 

기린 모양 향로

고려 12세기

상상 속의 동물 기린이 고개9를 뒤로 돌려 앉아 있는 모습으로 형상화한 향로이다. 기린은 중국 고대 이래 용. 봉황. 거북과 함께

시니령스런 동물로 여겨졌고, 도교에서도 등장한다. 이 향로는 고려시대에 왕실 제사나 도교 재초 등의

제의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도철 무늬 향로

고려 12~13세기

기봉과 도철이 묘사되는 등 전체적인 형태나 문양에서 중국 고대 청동기의 영향이 보인다. 송나라 예제를 받아들일 때 의기들도

수용한 결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 왕실 제사나 도교 재초등의 제의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소격서 폐지를 건의하는 글(조광조의 문집)

조선 1636년

조선 중종(재위 1506~1544) 대의 개혁 관료 정암 조광조(1482~1519)의 문집이다. 조광조는 홍문관 부제학 재직 시에

허황된 도교 제사를 국가가 지내는 데 대해 통렬히 비판하며 소격서를 폐지를 주장하여 끝내 관철하였다. 

 

 

 

 

 

별자리를 새긴 석관 뚜껑

고려 1356년

해와 달,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아 등 별자리가 새겨진 석관 뚜껑이다. 고려시대에는 이처럼 북두칠성이나 북극성 등의

천체를 새긴 예가 맣은 이유는 도교적인 성수신(星宿神)들이 우리 고유의 하늘 숭배 신앙과

자연스럽게 습합된 결과로 보인다.

 

 

건물의 안전을 비는 진단구와 동전

통일 신라 - 경주 안압지 출토

안압지 서편 임해전지로 추정되는 건물들 사이에서 출토된 진단구이다.

내부에서 개원통보 4점, 유리옥 4점, 부식된 뼈조각이 출토되었다.

 

 

톱니무늬 거울

경주 황룡사지 출토

경지 황룡사지 목탑의 심초석 아래에서 발견된 세 점 동경 중 한 점이다. 뉴에는 청동 고리가 남아 있다.

빛이 발하는 모습인 듯한 문양은 다뉴경에서 부터 보이는 전통이다.

 

 

수락암동 무덤 십이지 모사도(水落巖洞 壁畵 模寫圖)

고려

경기도 개풍군 청교면 양릉리 수락암동에 위치한 대형 벽화 무덤의 모사도이다. 상단에는 십이지 신상을 하단에는

사신도를 배치하였다. 십이지 신상은 모두 관을 쓰고 홀을 잡고 소매가 넓은 도포를 입었으며, 관 위에 십이지 동물을 그려

전형적인 수관인신상(獸冠人身像)을 하고 있다.

 

 

사신을 새긴 석관(四神文 石棺)

고려 1144년

고려 중기의 문신 허재(許載.1062~1144)의 석관이다. 고려시대에는 불교식으로 화장을 하고 남은 뼈를 수습하여

석관에 넣는 풍습이 유행하였다. 석관의 바깥면에는 죽은 이를 지키는 수호신의 의미로 사신(四神)을 새기는 일이 많았고

이 석관처럼 십이지신이나 묘지명까지 함께 새기는 일도 있었다.

 

 

 

 

무덤을 지키는 상상의 동물, 진묘수(鎭墓獸)

공주 무령왕릉 출토- 백제- 국보 제 162호

진묘수는 침입자나 악귀를 막고, 죽은 자의 영혼을 승선 시키는 의미로 놓인 것으로 해석된다. 입과 몸통에는 벽사의 의미로

불게 칠해져 있으며, 뿔과 몸통의 날개는 죽은 이를 승선(昇仙)시키려는 듯 운기문으로 표현되어 있다.

 

 

 

 

오수전(五銖錢)

공주 무령왕릉 출토

무령왕릉의 매지권 위에 꾸러미로 놓여 있었으며 그 숫자는 90여 개에 달한다. 매지권에는 이 돈으로 토지신에게서

무덤터를 산다는 내용이 있다. 무덤에 돈을 넣는 것은 한대 이래로 유행하던 풍속이다.

 

고리자루 칼

백제 - 공주 무령왕릉 출토

둥근고리를 이루는 자루 끝장식은 2마리 용이 엇갈려 감겨 있고 그 안에 용을 표현하였다. 자루의 위와 아래에는

거북등무늬와 봉황무늬, 인동무늬로 장식하였고, 자루 중심부는 금실과 은실을 교대로 빽빽하게 감았다.

 ▼

 

 

 

 

 

 

 

1. 긴 목 항아리와 그릇 받침

백제 - 부안 죽막동 출토

부안 죽막동 유적에서 출토된 항아리와 그릇 받침으로 깨진 채 유적에 뿌려져 있었다. 당시 토기를 깨

바다신에게 제사지내던 모습을 보여준다.

 

2. 황비창천을 새긴 거울

고려

"황비창천 惶丕昌天"이라는 명문과 함께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 선박과 일상, 월상, 용 등의 무늬를

새겨 놓았다. 바다의 신산을 찾아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거나, 무사항해를 기원하기 위해 제작 된 것으로 보인다.

 

 

복숭아 씨

통일신라

경주박물관 확장부지 우물 출토

 

 

 

 

 

1.2 짧은 목 항아리와 목간

통일신라 - 하남 이성산성 출토

 

5. 용왕을 쓴 목간

통일신라 - 경주박물관 확장부지 우물 출토

삼국사깅데는 용왕전이라는 관청이 보이고, 전 인용사지 유적의 우물에서 출토된 목간에도 '용왕 龍王'

이라는 글귀가 있다. 이처럼 당시에는 우물에 용왕이 살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목간은 우물에서 벌어진 제사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3. 남근 모양 목간

백제- 부여 능산리 사지 출토

남근모양의 목간으로, 네 면 가운데 두 면은 거꾸로 글을 썼다. 글의 내용은 "서라"를 세 차례 반복하며

남근의 발기를 재촉하는 주문이다.

 

4. 남근 모양 나무 제품

통일신라 - 하남 이성산성 출토

 

 

용왕을 쓴 사람 모양 목간

통일신라

정수리와 몸통 부분에 금속제 못이 꽂힌 채 출토됐고 나머지 목과 다리 부분에 못으로 찌른 흔적이 있어 사람 대신

제물로 바쳐진 목제인형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용왕(龍王)'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어,

당시 용왕을 대상으로한 제사가 행해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