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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인천 여행

(사적 제139호) 가을 추수가 끝난 북한이 조망되는 문수산과 문수산성

가을 추수가 끝난 북한이 조망되는 문수산과 문수산성

사적 제139

 

 

언제 : 2013년 10월 16일 수요일

어디 :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오랜만에 지인들과 함께 가까운 둘레길을 걷기로 약속되어 집을 나서다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는 문자가 있어

작년 이맘때

문수산 중턱에 있던 문수사란 절과 문수산 정상의 장대지 보수공사로 정상석을 담지 못했기에

 김포 문수산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문수산성 남문 희우루(喜雨樓) 

 

김포와 강화도 사이를 흐르는 염하강에서 합동 고기잡이를 하고 있는데 건너 편이 강화도

 ▼

 

 

 

 

좌측 우뚝 솟은 산이 인천 계양산이며 그 줄기를 따라 雨村은 자주 걷습니다.

우측의 건물군은 청라 신도시

  

 

강화읍내와 진달래군락지로 유명한 고려산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조강이라고 불리어 서해를 향해 흐르다 강화도와 김포 사이의 한 가닥 물줄기를 염하강이라 하고

조강은 다시 북한의 예성강을 만나 서강이라는 이름으로 서해로 흐릅니다.

 

문수산성

 

 

 

 

 새로 보수를 한 문수산성과 우촌의 배낭

 

 

아문(홍예문) 亞門(虹霓門) 

옛 지도를 보면 문수산에는 총 7개의 성문 즉, 문루 3개와 아문 4개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아문은 암문이라고도 하며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설치하여 적의 눈을 피해 사람과 가축이 통과하고

양식 등을 나르던 곳으로, 현재 4개의 아문 가운데에서 서쪽과 북쪽의 아문은 잔존하지 않으며

남쪽과 동쪽의 아문만 남아있습니다.

 

문수산 중턱에 자리한 문수사 비로전과 요사채

 

문수사 (文殊寺)

 종파 : 한국불교태고종

소개 :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성동리 문수산에 있는 절.

신라 혜공왕 때 창건하였으며, 그뒤 퇴락한 것을 1613년(광해군 6) 도욱(道旭)이 중건하였고,

1809년(순조 9) 광선(光善)이 중건하였으며, 1936년 남성(南星)이 중수하였다.

1971년 대웅전이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이듬해 벽응(碧應)이 비로전과 요사를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된 비로전이 있으며,

문화재로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1호인 문수사풍담대사부도 및 비(文殊寺楓潭大師浮屠 및 碑), 석탑 등이 있다.

 

 

문수사 풍담대사 부도및 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1호)

풍담대사는 조선 선조 25년(1592)에 태어나 현종 6년(1665)에 세상을 떠난 조선 시대의 승려로, 풍당대사의 부도는

팔각원당형으로 사각형의 지대석 위에 팔각형의 기단부를 놓았고, 하대석은 상하 2단으로 되었으며

하단에는 안상이, 상단에는 연꽃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조선 현종 9년(1668)에 건립되었답니다.

 

 

 

 

 

문수산 정상의 군 시설

 

 

지금부터는 북한지역을 조망합니다.

  

임진강과 한강이 어우러져 조강이라고 이름되어 흐르며, 좌측의 붉은 땅은 북한 지역, 우측은 남한지역입니다.

 

 

임진강과 한강이 어우러지는 곳을 Zoom하여 보니 길게 나온 지역은 북한지역입니다.

 

 

위 사진의 북한지역에서 남한지역으로 튀어 나온 곳을 Zoom

 

 

문수산 건너 추수가 끝난 북한지역

 

 

남한에서 육안으로 보이는 북한 마을자연스럽지 못하고 규격화 된 느낌

 

 

추수가 끝난 북한 들과 마을들

이곳은 육안으로 확인이 어려운 지역이라 자연스럽게 마을이 형성 되었습니다.

 

 

송악산과 마을들

 

 

 

 

 

 

 

 

 문수산 정상에서 돌아본 남한지역의 풍경

  

 

북한산과 은평구 그리고 한강

 

 

좌측 고양시와 한강 그리고 김포 한강신도시

 

 

좌측 우뚝 솟은 인천 계양산과 김포들녘

 

 

염하강을 두고 김포와 강화도 멀리 중앙은 영종도

 

 

강화대교와 혈구산 그리고 진달래꽃으로 유명한 고려산과 강화읍내

 

 

 한강에서 염하강으로 나눠지는 곳으로 강화 끝부분이며, 강 따라 북한이 멀리 조망됩니다.

 

 ▲

문수산성 정상부의 암문

 

 ▲

문수산성 정상부의 성곽

 

 

문수산 정상석(376m)

 

 ▲

김포 문수산성 장대지(金浦 文殊山城 將臺址) 사적 제139호 지정일: 1964.8.29.

 

 해발 376m의 문수산에 있는 문수산성은 갑곶진과 더불어 강화 입구를 지키기 위해 숙종 20년(1694) 돌로 쌓은 산성으로

고종 3년(1866)에 치른 병인양요의 전쟁터이기도 하였다. 이곳은 문수산 동쪽의 가장 높은 지대로

조선 시대 장수가 주변 정세를 파악하여 지휘하던 장대지가 있었던 곳이다.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옛 지도를 보면 문수산성에 남문 희우루, 북문 공해루, 서문 등 문루 3개와 비밀 통로인 아문 4개가

있었음이 확인된다. 이 가운데 해안 쪽의 성벽과 서문루는 전쟁 때 사라졌는데, 지도에는 공해루의 위쪽으로

성내의 시설물들이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어 당시에 병영터였으믈 알 수 있다.

 

문수산성 북문 공해루(拱海樓)

 

날은 좋았는데 먼 곳은 해무와 사진 기술의 부족으로 좋은 영상을 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항상 정성을 담으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