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이이(栗谷 李珥)선생의 얼이 깃든 율곡기념관
사적 제525호
어디 :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
파주 자운산 기슭에는
율곡 이이선생의 율곡기념관과 자운서원 그리고 가족묘가 자리잡고 있는데
우리가 사용하는 오천 원 권 지폐에 계신 율곡선생과 오 만원 권 지폐의 율곡선생 어머니 사임당 신씨 흔적을 찾아
하늘 푸르른 날, 율곡 이이선생 유적지가 있는 파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율곡기념관은
율곡선생 관련 자료 전시 및 체험 공간으로 구성 되어
신사임당의 서화 유품과 큰 누나 매창과 막내 동생 이우(호는 옥산)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며
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영상으로 시청 할 수 있습니다.
율곡 이이는 13살의 나이에 진사시에 합격한 뒤 모두 9차례나 과거에 장원급제를 했고,
임진왜란을 예견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했으며,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룬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대학자입니다.
율곡 이이는 16살에 정신적 지주이자 학문적인 스승이며 자애로운 어머니인 신사임당을 잃고,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슬픔으로 3년상을 마치자 금강산으로 들어갔다가, 이후 강릉으로 돌아와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공부에 열중하면서 자신의 앞날을 설계하게 되는데,
이때 율곡이 만든 것이 ‘자경문’(自警文)'으로 스스로를 위한 인생의 지침서 같은 것입니다.
참고로 자경문은 맨 아래에 올렸습니다.
율곡의 어머니 신 사임당
무원(주자의 고향으로 주자의 학문을 의미)의 못에 적셔내어 공자의 도를 본받아 널리 베품이여!
용(율곡)은 동천(저승)으로 돌아갔건만, 구름(명성)은 먹에 뿌려 학문은 여기에 남았구나.
매화 그림으로 만든 병풍 - 신사임당
초서로 쓴 병풍 - 신사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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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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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대학자, 율곡 이이(栗谷 李珥)
조선조 16세기 대표적인 학자이자 정치가로 1536년(중종31) 강릉 오죽헌에서 태어나 파주 율곡리에서 성장하였다.
율곡은 조선 시대 대표적인 성리학자일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시회 전반에 걸쳐 개혁을 주장한 대표적인 정치개혁가였다.
대동법의 실시, 사창의 설치 등 사회정책에 대한 그의 현실적 철학은 조선 후기 실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첬다. 1624년(인조 2) 문서이란 시호가 내려졌고, 1681년(숙종 7) 문묘에 모셔졌다.
전시장 풍경
율곡의 토지 양여서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호
매화도(梅化圖) - 강원도유형문화재 제12호
이매창은 율곡의 누님으로 신사임당의 솜씨를 그대로 물려받은 훌륭한 솜씨를 자랑한다.
초충도병풍(草蟲圖屛風) - 신사임당
이 작품은 신사임당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그녀다운 것으로 조선 후기 초충도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국화 맨드라미 원추리 패랭이 민들레 꽃들 사이로 벌과 나비가 훨훨 날아다니고
커다란 수박과 가지가 주렁주렁 열려 있는 친숙하고도 어여쁜 모습들이다.
성학집요(聖學輯要)
율곡이 40세(1575. 선조 8) 되던 해 9월 편찬해 왕에게 올련 저술로 유학의 가르침을 통해 올바른 사람이 되고
나아가 가정. 사회. 국가를 편안하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간결하게 엮었다.
소현서원 - 은병정사(隱屛精舍)
황해남도 벽성군 석담리에 있는 서원이다.
이곳은 율곡선생이 43세에 은거하여 주자(朱子)를 추모하는 한편 학자를 양성하기 위하여 세운 곳이다.
1610년(광해군 2)에소현(紹賢)이라는 사액(賜額)을 받았으며, 흥선대원 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 훼손 되었다가
1950년대 이후에 복원되었다.
현재 북한의 보물급 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어 있다.
동호문답(東湖問答)
율곡이 34살(1569, 선조 2) 되던 해 9월 홍문관 교리로 동호독서당에서 사가독서(賜暇讀書)하면서 지은 것이다.
"동호문답"은 선조에게 율곡 자신의 정치관을 피력하는 성격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
율곡은 이 저술에서
왕도 정치를 회복할 수 있는 경륜과 포부를 명쾌하게 논술했다. 주인과 손님이 문답을 주고받는 형식으로 서술된
동호문답은 임금의 도리, 신하의 도리, 백성을 편안하게 해주는 방책 등 총 11항목을 논하고 있다.
격몽요결(擊蒙要訣) - 1577년 이이 . 보물 제602호
율곡이 42살 때 해주 석담에 있으면서, 처음 학문의 길에 들어선 제자들에게 학문하는 방향을 가르쳐 주기 위해
저술한 것으로, '격몽'은 '몽매하여 따르지 않는 자를 깨우치거나 징벌한다.' 는 뜻이다.
입지(立志). 혁구습(革舊習). 지신(持身). 독서(讀書) 등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격몽요결"은 율곡의 교육관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으로 유교적 교육개론서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조선시대에 초학자는 물론 사림 일반이 꼭 읽어야 할 책으로 꼽혔다.
격몽요결 서예목판
벼루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호
율곡이 어린 시절에 사용하던 벼루로 안동 고산석에 매화나무를 섬세하게 조각하여 만들었다.
간찰(簡札)
1578년 황주기생 유지에게 보낸 편지
간찰(簡札)
이이가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하고 해주 석담에 있을 때인 1578년 5월 25일 친구가 보내온 서신에 답신
토지양여서(土地讓與書) 1579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호
율곡이 외조모인 용인 이씨로부터 물려받은 토지를 이종사촌인 권처균에게 양여한다는 증서인 계약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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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의 자필 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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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과 10만양병론
율곡은 "6조계"가 받아들어지지 않자 이해 4월 양방십만론을 주장하였다. 이 글에서 율곡은 십만의 병사를 길러야
하는 이유와 병사를 양성하는 방법, 벙사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등 대비책을 실제적으로 제시하면서,
이와 같이 하지 않을 경우에는 전쟁에 지고 말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붕당의 파벌싸움에 빠진 조정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율곡의 사후 임진왜란이 일어난 후에야
그의 선견지명을 깨닫고 많은 이들이 율곡선생을 존경하였다.
율곡이 지은 연시조
율곡이 42세 되던 해에 황해도 해주 석담에서 제자들을 가르칠 때 수양산에 들어가 그 풍광을 노래한 것으로,
서곡 1수. 본문 9수로 모두 10수의 연시조로 서곡부터 제1곡은 관암(冠巖). 제2곡은 화암(花巖). 제3곡은 취병(聚屛)
제4곡은 송애(松崖). 제5곡은 은병(隱屛). 제6곡은 조협(釣峽). 제7곡은 풍암(楓巖). 제8곡은 금탄(琴灘).
제9곡은 문산(文山) 등으로 나누어 각각 그곳의 경치와 흥취를 읊었다.
율곡 이이의 자경문(自警文)
1. 입지(立志)
뜻을 크게 가지고 성인을 본받되, 조금이라도 미치지 못하면 더욱 노력해야 한다.
2. 과언(寡言)
말을 적게 하라. 마음을 안정시키려면 말을 줄여야 한다.
3. 정심(定心)
마음을 바르게 하려면 잡념과 집착을 끊고, 쉬지 않고 공부해야 한다.
4. 근독(謹獨)
언제나 경계하고 조심하면 자연히 일체의 나쁜 생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5. 독서(讀書)
해야 할 일을 모드 마친 뒤에 글을 읽는다. 글을 읽은 이유는 의리를 살펴 일을 할 때에 쓰기 위한 것이다.
6. 소제욕심(掃除慾心)
이로움을 탐하는 마음을 버리고 욕심을 버려라.
7. 진성(盡誠)
모든 일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성실해야 한다.
8. 정의지심(正義之心)
천하를 얻더라도 불의를 얻어서는 안 된다.
9. 감화(感化)
누군가 나에게 악한 일을 하더라도 스스로 돌이켜 깊이 반성하여 그 사람을 감화시켜야 한다.
10. 수면(睡眠)
마음을 항상 깨어 있게 하고 바르게 자야 한다.
11. 용공지효(用功之效)
공부는 죽은 뒤에야 끝나는 것이니 서두르지도 않고 늦추지도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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