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제525호 자운서원과 율곡 이이의 가족 묘
어디 :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 산5-1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 새벽 기운이 제법 서늘합니다.
9월도 하순,
들녘
황금 물결을 이는 누런 벼가 속이 차면 고개를 숙이는 놀라운 삶의 지혜를 말해 주고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한 가을 하늘이
강렬히 삶의 기운을 돋우는 날,
조선 중기의 대학자이며 경세가인 율곡 이이 선생의 유적지를 다녀왔습니다.
율곡 이이 신도비(栗谷 李珥 神道碑)
조선중기의 대학자이며 경세가이 율곡 이이(1536~1584)의 일대기를 기록한 비로
선생의 아명은 현룡. 자는 숙헌. 호는 율곡. 석담(石潭). 우재(愚齋) 본관은 덕수. 시호은 문성(文成)이다.
이 신도비는 선생이 돌아가신지 47년이 지난 인조9년(1631) 4월에 이항복이 글을 짓고 신익성이 글씨를 썼으며
전액은 김상용이 썼다.
율곡 기념관
자운문 = 외삼문
좌측 보호수 : 느티나무 수령 446년 수고 20m 둘레 5m 중앙 : 강인당 우측 보호수 : 느티나무 수령 427년 수고 20m 둘레 5m
늦은 가을이면 고운 단풍 들어 더욱 보기 좋을 듯 싶습니다.
좌측 : 입지재 중앙 : 외삼문 우측 : 수양재
수양재와 입지재는 유생들이 기숙하던 곳으로 경기도 문화 담당하는 곳에서 촬영을 나왔답니다.
강인당(講仁堂)
유생들의 강학 장소로 지금의 학교 교실 역활을 했던 곳입니다.
자운서원 묘정비(紫雲書院 廟庭碑)
조선 중기의 대학자인 율곡 이이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자운서원의 내력을 적은 비로
숙종 9년(1683)에 세워졌습니다.
비문은 송시열이 짓고, 글씨는 김수증이 예서체로 썼으며, 머리글은 김수항이 썼습니다.
내삼문
문성사(文成祠)
위패(죽은 사람을 모시는 나무 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 건물로 중앙에 율곡 이이선생
오른쪽에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선생, 왼쪽에 현석 박세채(玄石 朴世采)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있습니다.
흥선대원권의 사원 철폐령으로 헐렸다가 1968년 3월 국가의 지원을 받아 유림이 중건하였답니다.
문성사에 모셔진 율곡 이이선생 위패
문성사에서 본 자운서원의 풍경과 좌편의 고목 향나무가 사당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곡 약수터 - 자운서원 뒤 측면에 있다.
제실
자운서원을 나와 율곡의 가족묘로 가는 길에 연못가에 핀 구절초
율곡 이이의 가족묘 입구 = 여현문
율곡 선생의 가족묘
율곡의 묘소가 부모의 묘소보다 위쪽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와 관련해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자식이 현달하거나 입신양명했을 경우 부모보다 높은 자리에 묘를 쓰는 당시 풍습에 의한 것으로 보이며,
율곡의 부인 곡산노씨의 묘는 율곡의 묘보다 위쪽에 전후합장묘의 형태로 조성되어 있는데,
이이 신도비문에 의하면 "노부인은 임진왜란을 만나 서울에서 신주를 받들고 산소로 돌아와 왜적을 꾸짖다가 살해를 당하였는데
일이 나라에 알려지니 정려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앞에서 부터 - 율곡의 맏아들 묘 - 율곡의 부모 묘 - 율곡의 맏형 묘 - 율곡과 부인의 묘
이원수와 신사임당 묘
율곡이이의 아버지 이원수(1501~1561)와 어머니 신사임당(1504~1551)의 합장묘로,
큰아들 묘(바로 위)와 율곡의 묘 아래에 부모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이원수와 신사임당의 묘비
율곡 이이의 묘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정치가인 율곡 이이(1536~1584)의 묘
강릉 외가댁인 오죽헌에서 태어나 파주 율곡리에서 성장한 이이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성리학자일 뿐만 아니라.
"십만양병설" . 대동법의 실시, 사창의 설치 등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개혁을 주장한
대표적인 정치개혁가였다.
저서로 「동호문답」, 「성학집요」, 「격몽요결」등이 있으며, 대사헌을 비롯하여 대제학 호조. 병조. 이조판서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이이는 유학에 있어서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는 학자로 이황과 서경덕의 설을 절충하여 일원론적 이기이원론을 주장하였고,
기호학파를 형성하여 후세의 학계에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세상을 떠난 후 이곳 파주 자운산 선산에 묻혔는데, 묘역은 부인 곡산노씨 묘와 위아래로 조성되어 있다.
봉분 정면에 상석과 오른쪽에 묘비가 위치해 있으며, 좌우로 망주석과 문인석을 세웠다.
위 부인 곡산노씨 묘와 아래 율곡의 묘
율곡의 부인 곡산노씨의 묘는 율곡의 묘보다 위쪽에 전후합장묘의 형태로 조성되어 있는데,
이이 신도비문에 의하면 "노부인은 임진왜란을 만나 서울에서 신주를 받들고 산소로 돌아와 왜적을 꾸짖다가 살해를 당하였는데
일이 나라에 알려지니 정려를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묘비
망주석과 문인석
율곡의 묘 뒤에서 본 풍경
전경이 막힘 없이 환하여 정말 좋은 자리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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