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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경기 여행

(경기 파주) 율곡 이이(栗谷 李珥)가 말년에 머물렀던 화석정(花石亭)

 

율곡 이이(栗谷 李珥)가 말년에 머물렀던 화석정(花石亭)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1호

 

 

어디 :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산 100-1

 

화석정(花石亭)은 임진강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자리한 정자로,

 정자 앞에 서면 화석정 앞으로 활처럼 휘어진 임진강이 시원스럽게 내려다보이고, 정자 양쪽에 있는 두 그루의 느티나무는

수령 500년이 넘은 고목으로 마치 화석정을 호위하고 있는 듯 서 있습니다.

 

화석정은 원래 고려 말의 유학자인 길재(吉再)가 조선이 개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향리에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었는데 후에 폐허가 된 곳에 

 세종 25년(1443년) 율곡 선생의 5대 조부 이명신이 건립했으며, 화석정이 유명한 것은 율곡 선생으로 인함입니다.

 이 화석정이 있는 율곡리 일대는 율곡 선생의 선친들이 대대로 살던 마을로,

이이 선생의 호인 율곡도 이 마을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율곡 선생은 평소

 제자들과 함께 화석정 기둥과 서까래 등에 들기름을 반질반질하게 먹여 두었다고 하는데,
훗날 임진왜란(선조 25년, 1592년)이 일어나 선조가 의주로 파천할 때(4월 29일 밤) 억수같은 폭우 속에서 강을 건널 때

 이항복이 화석정에 불을 질러 무사히 배가 강을 건넜다고 전합니다.

 

건물의 정면 중앙에는 박정희 전대통령이 쓴 '花石亭' 현판이 걸려 있으며,

내부 뒷면에는 율곡선생이 8세때 화석정에서 지었다는 <八歲賦詩> 가 걸려있습니다

 

율곡이 8세에 화석정에서 지은 화석정 8세 詩 현판

 

林亭秋己晩 騷客意無窮 (임정추이만 소객의무궁)

숲속 정자의 가을은 깊어 드니, 시인의 생각은 끝이 없고나
遠水連天碧 霜楓向日紅 (원수연천벽 상풍향일홍)

먼 물은 푸른 하늘에 닿아 있고, 서리 맞은 단풍은 해를 향해 붉구나
山吐孤輪月 江含萬里風 (산토고륜월 강함만리풍)
산은 외로운 둥근 달을 토해내고, 강은 만리를 불어온 바람을 머금었네
塞鴻何處去 聲斷暮雲中 (새홍하처거 성단모운중)
변방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지, 울음 소리 저녁 구름 속으로 사라지누나

 

 

율곡의 8세 때 지은 詩碑

 

 

화석정 건너편에서

 8" 자주포가 사격하니 천지가 진동하며 뿌옇게 먼지가 일어납니다.

 

 

雨村은 40년 전에 강원도 화천에서 8" 견인포 포반장을 했었답니다.

 

 

화석정에서 좌편 풍경은 임진강물이 휘돌아 가고, 멀리 북한 개성 송악산이 조망됩니다.

 

카메라를 Zoom 하여 송악산을 봅니다.

 

 

 

 

화석정 전면 풍경

 

우측 풍경 - 멀리 전진교가 조망됩니다.

 

 

 

화석정 좌 우에는 수령 560년 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보호수로 지정 되었습니다.

 

 

 

 

옛날 화석정은 숲 울창하고

그 아래 임진강에는 밤낮으로 배들이 오가며, 밤에는 고기 잡는 등불이 강을 밝혔다는데


오늘은

560년 나이 든 느티나무 두 그루만이

처연히 화석정을 에워 지키며 임진강에는 무심한 철조망이 가로막아,

오가던 배들의 발길을 묶었구나.
 

징하던 불볕더위 끝물에

 찾은 화석정에 나그네 홀로 앉아 임진강을 바라보며 옛 영화를 그리는데

느닷없이

천지를 진동하는 수십 발의 8" 대포 소리에 놀란 나그네

외로움은 온데간데없구나.

 

 천지가 진동하는 8인치 포의 울림에

雨村은 40여 년전 팔팔했던 날을 잠시 추억하다 포 소리에 놀라 정신을 차립니다. 

 

 

 

 

학창시절 장군이 되고 싶었는데, 어떤 이유로 포기하고

논산 훈련소에서 일반하사로 착출되어 여산 제2하사관학교와 광주 포병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 후

강원도 화천에서 3년 동안 하사로 청춘을 불태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