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牛馬처럼 걷는 충남 여행

(충남 부여) 백제 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를 찾아간 국립부여박물관

 

백제 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를 찾아간 국립부여박물관

 

 

어디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8-2 (금성로 5)

 

궁남지에서 아름다운 연꽃에 취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백제 말기 사비의 역사와 문화유물을 더 알아보기 위해 국립부여박물관을 찾았습니다.

특히

국보 제287호 "백제 금동대향로"와 국보 제293호 관음보살상을 볼 수 있어

아주 행복했습니다.

 

 

국립부여박물관 전경

 

 

작품명 : 무지개 1

부여의 나지막하고 풍요로운 산하에 드리워진 언약의 무지개. 무지개를 타고 놀며 소망의 꿈을 키우는

천진한 동심을 표현한 작품으로 박물관 통로에 전시된 작품입니다. 

 

 

박물관 내부

 

 

 

 

 

 

 

 

뚜껑달린 굽다리 항아리 - 마한 

 

 

민고리자루칼 - 마한 

 

 

새모양토기

마한의 새모양토기는 동물의 머리와 꼬리를 형상화한 것으로 어깨 부분에 한쪽은 뾰족하게, 반대쪽은 귀때처럼 뚫려있다.

마한인들은 새를 일반적으로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믿었기 때문에 간절한 염원을 기원하며

의식을 거행할 때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부소산성 출토유물

 

 

세갈래 갈고리 

 

 

부여 동나성 출토유물 - 백제 

 

 

 부여 구아리 출토유물 -백제

 

 

토관(土管) 

 

 

호자(虎子) : 남자의 요강 - 백제

 호자는 중국 남조 문물의 영향을 받은 호랑이 모양의 남성용 요강이다. 호랑이 앞다리를 세우고 상체를 들어

얼굴을 왼쪽으로 돌린 상태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모양으로 손으로 들고 다닐 수 있도록 등 부분에 손잡이가 달려있다. 중국의

고대 기록에 황제가 행차할 때 시중을 드는 하인이 호자를 들고 뒤따랐다는 내용이 전해온다.

 

 

등잔과 그릇다리 - 백제 

 

 

허리띠 꾸미개 - 부여 능안골 고분군 - 백제

 

 

사람새김 기와편 - 부여 능산리사지 

 

 

 

 

 

금동꾸미개

 

 

원모양 금동 꾸미개

 

 

 

 

 

 금동 투조 꾸미개 - 부여 능산리 절터 공방지 출토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百濟昌王銘石造舍利龕) - 국보 제288호

 

 

백제금동대향로 - 국보 제287호

 

백제의 멸망과 함께 땅속에 묻혔다가 1993년 능산리사지 발굴조사를 통해 세상에 그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게 된

이 향로는 높이 61.8cm, 무게 11.85kg의 대작으로서 한 마리 용이 머리를 들어 입으로 향로 몸체의 하부를

물고 있는 받침과 양감 있는 사실적인 연잎으로 표현된 향로 몸통 그리고 박산 형태의 중첩된

산악으로 묘사된 뚜껑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향로는 당시 왕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능산리 사지에서 출토된 점으로 미루어 왕실 의례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보물 제196호 높이 8.5cm '정지원'이 새겨진 삼존불과 관음보살

 

 백제의 금동불

백제의 금동불은 현재25cm이하의 작은 불상들이 전해진다. 이러한 불상들은 슬여들이 가지고 다니며 불법을 전하는데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6세기에는 중앙에 부처가 있고 좌우에 협시보살을 둔 '일광삼존불' 양식이

유행하여 부소산 출토 '정지원'명 삼존불과 같은 예가 제작되었다.

 

 

 

 

 

금동관음보살입상(金銅觀音菩薩立像) 국보 제293호

 

 

 

 

 

 

 

 

 

 

 

사택지적당탑비(砂宅智積堂塔碑) - 백제

 

 

 

 

 

 

 

 

 박물관석조여애입상(博物館石造如來立像) - 충남 지정문화재자료 106호

1933년 부여군 부여읍 금성산의 전천왕사터 부근에서 발견된 불상으로 고려시대 불상으로 추정된다.

 

 

동사리석탑(東寺里石塔) - 충남 지정문화재자료 121호

부여 세도면 동사리에 있던 석탑으로 고려시대에 유행한 석탑 양식이다.

 

 

 당유인원기공비(唐劉仁願紀功碑) - 보물 제21호

 

당나라 장수 유인원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로 원래는 부소산에 있었다. 몸돌 앞. 뒷면에 글을 새겼으나

심하게 마모되어 알아보기 힘들다.

비문에는

유인원이 당나라 고종에 의해 발탁된 이후의 활동상은 남아 있으나, 소정방과 함께 백제를 멸망시키고

백제 부흥운동을 평정한 그 이후의 행적은 비문이 지워져 알 수 없다. 비록 당나라 장수의 공적비이기는 하지만

비문에 의자왕과 태자 및 신하 700여명이 당나라로 압송된 사실과 부흥운동의 주요 내용. 폐허가 된 도성의 모습 드이

기록되어 있어 당시의 상황을 아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다음은 낙화암과 부소산성을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