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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충남 여행

(충남 부여) 사적 제301호 정림사지와 오층석탑(국보 제9호)

 

사적 제301호 부여 정림사지와 국보 제9호 오층석탑

 

 

어디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254

 

백제 성왕은 538년 봄에 공주에서 지금의 부여인 사비성으로 도읍을 옮겼습니다.

사적 제301호인 정림사지는 백제말 123년의 도읍기를 통틀어 남아있는 유일한 백제유적으로 백제사비도성 건설과 함께

세워져 왕실의 흥망성쇠를 함께 한 중심 사찰로

국보 제9호인 백제시대 오층석탑과 보물 제108호 고려시대 석불좌상이 남아 있습니다.

 

 

 

 

 

정림사지는 백제 시대의 전형적인 1탑 1금당식 가람이나 백제시대 절 이름은 알 수 없습니다.

1028년에 만든 기와에 "定林寺" 라는 명문이 있어 고려 시대의 절 이름이 정림사인 것으로 밝혀졌으며

남북 직선상에 중문, 탑, 금당, 강당을 배치하고 주위를 회랑으로 둘러친 형태이며,

중문 남쪽에는 2개의 사각형 연못과 남문터가 있었습니다.

 

 

 

 

 

백제시대의 정림사는

중문, 탑, 금당, 강당이 남북 일직선상에 위치하고 동서회랑과 동편건물지, 서편건물지,북편건물지

 중문 남쪽에는 2개의 사각형 연못과 남문터가 있었습니다. 규모는 동서 약 62m, 남북 약 120m로 발굴조사를 통해 민무늬토기편이

출토된 청동기시대 문화층과 정림사 창건 이전의 백제시대 문화층, 고려시대 문화층 등이 확인되어 정림사지가 창건이전에도

공방시설을 조성한 공간으로 활용되어 왔으며, 고려시대에도 사찰로서 명맥을 유지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부여 정림사지 5층석탑(扶餘 定林寺址 五層石塔)

 

 국보 제9호로

국보 제11호인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2기만 남아있는 백제 시대 석탑으로 매우 귀중한 자료입니다.

정림사 오층석탑의 1층 몸체돌에는 신라와의 연합군으로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한 기념탑’이라는

뜻의 글귀를 이 탑에 남겨놓아, 한때는 ‘평제탑’이라고 잘못 불리어지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습니다. 

 

 

 

 

 

 

 

 

 

 

 

정림사지 석탑 1층에 새겨져 있는 글은 660년 당 소정방이 백제를 평정한 공적을 기념하여 새긴 것으로,

남쪽부터 서, 북, 동면으로 돌아가며 네 면에 새겼답니다.

 

 

정림사지 오층석탑 각자 탁본 

 

 

정림사지 석불좌상(定林寺址 石佛坐像) 

 

보물 제108호로 고려시대 만들어진 불상입니다. 블에타고 심하게 마모 되어 대좌와 불상이 형체만 남았으며

좁아진 어깨와 가슴으로 올라간 두 손의 표현으로 보아 진리를 나타내는 비로자나불상으로 짐작됩니다.

 

 

 

 

 

정림사 연못

 

 

 

 

 

정림사지 박물관

 

 

 

 

 

 

 

 

 

 

 

의자왕의 바둑판과 바둑알

 

 

 

 

 

 

 

 

 

 

 

 

 

 

정림사

 

 

 

 

 

1910년 정림사지 석탑

 

 

1915년의 정림사지 전경

 

 

2010년 정림사지 설경

 

 

우리나라에는 많은 탑이 있으며, 특히 경주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아름답고 세밀한 탑입니다.

그러나

백제의 정림사 오층석탑은 세밀하거나 아름답지는 않지만, 어떤 힘이 느껴지는 장엄함과 현존하는

우리나라 탑 중에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가장 오래 된 탑이라 더욱 가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