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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경기 여행

(경기) 소설 상록수 실제 주인공 최용신 기념관

 

소설 상록수 실제 주인공 최용신 기념관

 

 

어디 :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샘골서길 64번지

 

제가 자라던

5~60년대에 우리나라 형편은 전쟁 직후라 생활이 매우 어려워 많은 사람이 배우기보다는

먹고 살기에 바빴던 때였는데,

 

'심훈의 소설 상록수'는 

젊은이들에게 

낮에는 열심히 생업에 종사하고 밤에는 야학습소를 운영하여 배움의 꿈과 희망을 심어 주었고

 4H 운동 활성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안산에 소설 상록수 주인공 최용신 선생의 기념관이 있다는 것을 어떤 기회에 알게 되어

최용신 선생의 기념관을 다녀왔습니다.

 

 

 

 

 

심훈의 문학 기념비

 

 

기념관 마당 한편 양지 녘에 최용신 선생의 묘가 있습니다.

 

 

 

 

 

 

 

 

 최용신 선생과 약혼자 김학준 교수의 묘

 

 

 

 

 

 

 

 

당시 샘강습소와 교회의 모형

 

 

수원역에서 수인선에 몸을 싣고 인천쪽으로 오십리쯤 달리면 일리(一里)라는 시골의 촌정거장에 내려

 5리쯤 걸으면 적은 언덕아래 20호가 될락말락한 가난이 흐르는 촌이 샘골(泉谷)이었답니다.

 

 

최용신 기념관과 샘골 교회 현재의 모습

 

 

옛 종탑 아래 최용신양을 기리는 글이 돌에 새겨져 있습니다.

 

 

샘골 강습소 주춧돌과 최용신 나무

 

1933년 최용신 선생이 샘골 주민들과 건립한 샘골강습소의 주춧돌 15기가 보존되어 있고

1934년 최용신 선생이 직접 심은 향나무 5그루가 남아 있습니다.

 

 

최용신 기념관은

최용신 선생의 얼과 정신이 담긴 ‘샘골강습소’가 있던

 안산시 상록구 해빛나길 56번지(본오동 879-4) 상록수 공원 내에 2007년 11월 20일 개관,

연면적 545.46㎡에 지상1층에 교육실과 사무실, 지층에 전시실, 영상실이 있습니다.

 

 

최용신(崔容信,1909.8.12~1935.1.23)

함경남도 덕원 사람으로 1928년 원산 루씨여고보를 졸업, 협성여자신학교에 재학 중 YWCA를 통해

농촌개몽활동을 시작,1931년 10월 YWCA 파견교사로 샘골에 파견, 1934년 3월 일본 고베 여자신학교 입학

각기병으로 학업 중단 귀국하여 다시 샘골에서 일하다 과로로 1935년 1월23일 사망.

 

 

 

 

 

1961년 신상옥 감독의 상록수(주연-신영균, 최은희)

 

 

1978년 임권택 감독의 상록수(주연-김희라, 한혜숙)

 

 

재경덕원유학생졸업기념사진으로 우측 두 번째 최용신 선생(1929년)

 

 

협성여자신학교 시절 가운데 최용신 선생

 

  

 

 

 

 

 

 

 

 

 

전시실 내부

 

 

중요유물로는

최용신 선생의 건국훈장, 상록수 초판본(1936년)이 있으며 국어교재, 당시의 성경 등이 전시되어 있고,

영상에세이, 생존제자의 인터뷰, 영화 상록수가 담긴 영상물 검색대가 있어 선생의 얼과 정신을 볼 수 있습니다.

 

1933년 1월 샘골 강습소 낙성식 기념사진

 

 

샘골 강습소 5회 졸업사진

 

 

최용신 선생의 약혼자 김학준 교수

 

 

최용신 선생 유언장

 

 

상록수(常綠樹, 1935. 9 .10)

 

심훈(沈薰, 본명 심대섭)이 지은 장편소설이다.

동아일보사는 창간 15주년을 맞은 장편소설 공모전을 실시하였는데, 심훈은 각지에서 활발하게 전개되는

농촌계몽운동과 최용신을 모델로 삼아 이를 저술하여

1935년 9월 10일부터 1936년 2월 15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다.

주인공은 고등농업학교 학생인 박동혁(朴東赫)과 여자신학교 학생인 채영신(蔡永信)으로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학업을 중단한 채 ‘농촌을 살리기’ 위하여 고향으로 돌아간다. 동혁은 고향은 한곡리,

영신은 기독교청년회연합회 농촌지도사로 경기도 청석골로 내려가 농촌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영신은 과로로 학원 낙성식장에서 맹장염으로 쓰러지고, 동혁은 악덕지주 농간에 의하여 구속되는 수난을 겪었다.

건강을 회복한 영신은 서울로 올라온 후 기독교청년회연합회 주선으로 요코하마 유학을 단행하고

출감한 동혁은 영신이 죽은 줄로만 알고 두 사람 몫까지 실천할 것을 다짐하기에 이르렀다.

세속적인 성공을 포기한 농촌계몽운동가의 희생적 봉사와 추악한 이기주의에 매몰된 비인간적인 대비를 통하여

참된 삶의 방향을 제시한 소설로,

 이광수(李光洙) 『흙』과 더불어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농촌계몽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