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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인천 여행

(사적 제424호) 사찰 같은 성공회 강화성당

 

사찰 같은 성공회 강화성당

 사적 제424호

 

 

어디 :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언제 : 2013년 4월 9일 화요일

 

느닷없이 강화도에 눈비 내리던 날,

 

산속의 여느 절처럼 붉은 벽에 기와지붕의 큰 건물이 언덕 위에서

강화 읍내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궁금하여

높은 돌계단 위에 솟을대문의 정문을 찾아가니

 대문에는 태극문양이 그려 있고 대문 위에는 성공회강화성당이란 한문 현판이 있으며

태극문양에도 자세히 보면 검은 십자가의 문양이 있는데

이곳이 성공회강화성당입니다.

 

 

고종 33년(1896) 강화에서 처음으로 한국인이 세례를 받은 것을 계기로 1900년 11월 15일

찰스 존 코르페(C. John Corfe : 한국명 고요한)이 이곳 강화에 한국 최초의 한옥 성당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외삼문격인 대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위에는 '聖公會江華聖堂(성공회강화성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문에는 태극문양을 본뜬 큰 원을 그리고 그 안에 십자가

그려넣었고, 성공회강화성당의 편액에는 호가 菊史(국사)라는 낙관이 찍혀있습니다.

 

 

성당 입구에는 노란 개나리가 이제 피기 시작합니다.

 

 

두 번째 문(내삼문)이며 홍살의 종각으로 절의 범종처럼 매달아 놓고 종을 치게 되어 인상적입니다.

 

 

절의 범종과 생김새는 같으나 십자가 문양이 있군요.

처음 1914년 영국에서 들여온 종이었는데 음색이 아름답고 소리가 4방 30리까지 울려퍼졌다는데

1945년 일제에 의하여 징발되어 서양식 종을 대신하여 1989년 신자들이 모금해 다시 만들어 매단 것이랍니다.

 

 

우측에서 부터 백주년 기념비와

初代 主敎(초대 주교) 고요한 記念碑(기념비), 主敎(주교) 端公(단공), 雅德(아덕) 記念碑(기념비)

 

 

남도에는 벌써 벚꽃이 지고 있다는데 강화도에는 이제 개나리가 피었습니다.

 

 

본당 건물로

 마치 큰 배를 연상하게 되며 지붕에 용두와 십자가를 세우고, 성당이라 하지 않고 천주성전이란 현판이 인상적입니다.

이것은

아마 토착문화의 옷을 입히어 거부감이 강한 서양 종교를 민중의 마음으로 다가갔던 고뇌의 흔적이 아닐까요?

 

 

성당 내부는 문이 잠가 있어 부득이 옛날 사진을 이용합니다.

 

 

전면 기둥에는 절의 주련처럼 5개의 한문 주련이 연꽃 문양 아래 있으며,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無始無終先作形聲眞主宰(무시무종선작형성진주재)
처음도 끝도 없으니 형태와 소리를 먼저 지은 분이 진실한 주재자이시다.

宣仁宣義聿照拯濟大權衡(선인선의율조증제대권형)
인을 선포하고 의를 선포하니 이에 구원을 밝히시니 큰 저울이 되었다.

三位一體天主萬有之眞原(삼위일체천주만유지진원)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니 만물의 참된 근본이되신다.

神化周流츉庶物同胞之樂(신화주류유서물동포지락)
하나님의 가르침이 두루 흐르는 것은 만물과 동포의 즐거움이다. 

福音宣播啓衆民永生之方(복음선파계중민생영지방)
복음을 널리 전파하여 백성을 깨닫게 하니 영생의 길을 가르치도다.

 

 

성당 후면에서 본 모습으로 마치 방주와 같습니다.

 

 

건축규모는 長方形(장방형) 중층 기와지붕의 한옥으로 1층은 정면 4칸, 측면 10칸이며, 2층은 정면 2칸, 측면 8칸입니다. 

 

 

사제관

원래 주교관으로 1903년 班家(반가)의 형식으로 만들어진 18칸 한옥이었으나, 1984년 성당 기와교체 공사 중 화재로 소실되었고,

지금의 건물은 1986년 다시 지었답니다.
 

 

알마(Alma)수녀 기념비

1896년 온수리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1906년 전염병으로 죽은 알마 수녀를 기념.

 

 

처음 성당에 왔을 땐 날씨가 흐렸는데 어느새 햇살이 나와 목련을 간지럽힙니다.

 

 

 

유배지인 강화에 성당이 세워진 이유는

초기 선교사들이 이곳을 영국의 이오나(iona) 섬처럼 신앙의 성지로 삼으려는 꿈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합니다.

유배지 강화도도 당시만 해도 소외와 핍박의 땅.

영국 북부 스코틀랜드 서안에 있는 이오나 섬은 6세기 콜롬바(colomba)가 수도원을 세운 성공회의 뿌리이며,

  한국인으로서는 첫 성공회 사제가 된 김희준 신부를 강화도에서 배출하였기 때문입니다.

 

 

정문인 외삼문을 내부에서 본 모습

 

 

햇살에 방긋 웃는 들꽃

 

 

강화 성공회 성당 소개  

 

 강화성당은 고요한 (Charies Jone Corfe) 초대주교가 1900년에 축성한 건물로 "성베드로와 바우로 성당"으로 명명되었다.

당시 건축공사는 궁궐 도편수가 주도하였고 이후 몇차례 보 수가 있었으나 처음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성당터는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로서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배의 형상을 따랐다.

성당 건물은 장방형(넓이 4칸, 길이 10칸) 중층구조로 전체적인 건축양식은 한국전통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배치와 내부구조는 서양식 바실리카 건축양식을 응용하여 조화의 아름다움과 토착정신을 드러나게 하였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1981년 경기도 지방유형문화재 111호로 처음 지정된 이래 강화군이 인천광역시로 편입되면서

인천지방유형 문화재로 변경되었다가 2001년 1월에 국가사적 424호 로 변경 지정되었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마치 어느 성채를 본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