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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경기 여행

(사적 제195호) 세계문화유산 영릉(英陵)

 

세계문화유산 영릉(英陵)

사적 제195호

 

 

어디 :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

 

독재자 같던 추위가 물러나고 얼었던 산천이 녹아내리는 봄날 같은 날

경기도 여주에 있는 영릉을 찾아

세종대왕과 효종대왕을 뵙고 혼자서 정겨운 솔길을 걸으며

저를 돌아보는 값진 시간을 가졌습니다.

 

 

영릉(英陵)은 사적 제195호로

 조선의 제4대 왕인 세종(世宗)과 그 왕비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의 합장릉(合葬陵)입니다.

1446년(세종 28) 소헌왕후가 돌아가시자

경기도 광주(廣州) 대모산의 헌릉(獻陵, 태종의 능) 서쪽 언덕에 ‘동원이실(능 하나에 석실 둘)’로 조성하고,

오른쪽 석실은 세종의 수릉(생전에 미리 마련하는 왕의 능)으로 삼아 왼쪽에 소헌왕후를 먼저 안장했다가

1450년(문종 원년) 세종이 승하하여 합장하니, 조선 최초의 합장릉이며,

1469년(예종 1)에 한강의 수로를 이용해 여주 서쪽의 북성산(지금의 자리)으로 천릉(遷陵)했다고 합니다.

능 앞에 혼유석 2좌를 놓아 양위(兩位)임을 표시했을 뿐 상설제도는 단릉(單陵)과 같습니다.

 

 

입구에 서면 정면에 훈민문이 있고, 우측에는 재실과 동상, 좌측에는 세종전이 있습니다.

 

 

세종대왕상

 

 

재실(齋室)

홍살문 밖, 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세워 제관이 머물며 제례를 준비하던 집입니다.

 

 

훈민문을 들어서 웃는 소리가 좋아 돌아보니 꼬맹이 둘과 부부가 나들이를 나왔군요.

 

 

금천교(禁川橋)와 홍살문(紅箭門)

금천교는 속세와 성역의 경계역할을 하며, 홍살문은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문으로 홍전문이라고도 합니다.

 

 

참도=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진 길이며,

높은 곳은 신도로 신이 다니는 길, 낮은 곳은 어도로 임금이 다니는 길인데 소나무가 능을 향해 허리를 숙이고 있습니다.

 

 

영릉을 중앙에 모시고

좌측=수라간,  중앙 =정자각,  우측=비각,  맨우측=수복방(제기를 보관하거나 능을 지키는 사람이 거처하는 곳)

 

 

정자각(丁字閣)

제례 때 제물을 차려 제례를 드리던 집으로 위에서 보면 건물이 "T" 자 모양이라 한자의 "丁" 자와 같다 하여 정자각이라 부릅니다.

정자각 오르는 가운데 계단을 신계, 좌우측 계단은 동계인데, 영릉은 동계가 두 개라 특이합니다.

 

 

영릉비

비문에는 "조선국 세종대왕 영릉 소헌왕후 부좌" 소헌왕후가 왼편에 묻혔음을 나타냈고, 비각과 비석은 영조 21년(1745) 세움

 

 

혼유석 2좌(무덤 앞의 직사각형 2개)를 놓아 양위(두 분을 모신 것)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영릉의 전경으로 주변 소나무가 마치 능을 향해 경배를 드리는 모양입니다.

 

 

 1단은 능, 2단은 문인석, 3단은 무인석으로 3단의 계체석으로 되어 있습니다.

 

 

석상의 세밀한 조각은 예술품입니다.

 

 

영릉에서 바라본 전경의 시원스러움이 명당임을 알게 합니다.

 

 

 

 

 

영릉의 지세는

층층이 해와 달의 모습을 띠면서 봉황이 날개를 펴고 내려오는 형국이라, 최고의 명당자리라고 합니다.

또한

다른 왕릉에 비해 영릉의 소나무 숲은 보존이 잘 되어 공기도 좋고 오래 걷고 싶은 곳입니다.

 

 

세종대왕 기념관인 세종전과 발명품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세종 19년(1437)에 처음 만들어졌으며, 해시계와 별시계의 기능을 하나로 모아 낮과 밤의 시간을 측정하느 천문관측기기.

 

 

세종대왕 영릉의 英은 세종대왕이 생전에 업적이 많아 '꽃부리 영'으로 썼으며,

효종대왕 영릉의 寧은 효종이 청나라에서 8년간 인질로 계셨고, 생전에 고생을 많이하여 '편안할 영'으로 썼다고 합니다.

 

세종대왕을 뵙고 솔길을 걸어 효종대왕을 뵈러 가는 길.

부부나 연인의 산책 또는 가족 나들이 길로 강력 추천하고 싶은 솔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