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가산 눈썹바위와 마애관음좌상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29호
낙가산 눈썹바위 아래 마애관세음보살상은
보문사가 관음 도량의 성지임을 가장 잘 상징하는 성보 문화재로서,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곳입니다.
눈썹 바위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바다의 경치는 장관이며,
특히 일몰 경관이 아주 일품이어서 석모도의 일몰은 서해 최고의 낙조(落照)로 꼽히기도 합니다.
수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붉은 해와 노을을 쳐다보노라면 그야말로 무아지경 불심(佛心)의 경지에 들곤 한답니다.
보문사 극락보전의 뒤로 마애관음좌상으로 올라가는 419계단은 소원이 이루어지는 길로 그 끝에 눈썹바위가 보입니다.
낙가산 눈썹 바위
용왕단
마애불로 오르는 길이 힘들어질 즈음 용왕단에 도착하게 되는데,
서해의 탁 트인 시야가 한눈에 들어오는 용왕단에서는 각자의 소중한 발원을 써서 유리병 속에 100일간 보관을 합니다.
100일이 지난 후 용왕단에 보관된 소원지를 꺼내 스님들께서 축원을 하고 소전을 하게 됩니다.
마애관세음보살좌상은 대웅전 옆 총 419개 계단을 따라 10여 분 올라가면 낙가산 중턱 눈썹바위 아래에 모셔져 있습니다.
419개 계단을 오르다 보면 꽤 가파른 길이라 다리에 힘도 들고 허리가 뻣뻣해지기도 합니다.
이럴 때 ‘관세음보살‘을 마음속으로 외우면서 올라가노라면 어느새 관음보살님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마애관음좌상은 1928년 배선주 주지 스님이 보문사가 관음 성지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금강산 표훈사(表訓寺)의 이화응(李華應)스님과 이곳에 새긴 것으로, 크기는 높이 920cm, 너비 330cm에 달하는 거상(巨像)입니다.
크기를 척수로 환산하면 높이 32척에 너비가 11척이 되는데, 이것은 곧 관음보살의 32응신(應身)과 11면(面)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은 눈썹바위 아래의 바위 면에 새겨 있어
눈썹바위가 마치 지붕처럼 돌출되어 있어 비바람으로부터 관음부처님을 가려 주고 있는 형태입니다.
마애관음보살좌상
관음좌상의 모습을 보면,
네모진 얼굴에 커다란 보관을 쓰고 두 손을 모아 정성스레 정병(淨甁)을 받쳐 들고 연화대좌 위에 앉아 계시며,
얼굴에 비해 다소 크게 느껴지는 코, 입, 귀는 투박하기는 하지만 서민적이라 보는 사람의 마음도 푸근해지며 정감이 갑니다.
또 부처님 얼굴에 빠짐없이 있기 마련인 백호(白毫)도 이마 사이에 솟아 있으며, 가슴에는 `만(卍)'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불의(佛衣)는 양쪽 어깨를 모두 감싸도록 입는 통견(通肩)이 무릎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연화대좌 왼편에는 `조불화응선사(造佛華應禪師)'가
그 반대편에는
`화엄회상필부사왕중(華嚴會上八部四王衆)·
나무화엄회상욕색제천중(南無華嚴會上欲色諸天衆)·
화엄회상호법선신중(華嚴會上護法善神衆)' 글씨가 세 줄로 새겨져 있습니다.
눈썹바위에서 내려다 본 보문사 전경과 계단
안개로 인해 시계가 흐린 보문사 앞 바다와 섬
오늘
나는 무엇 때문에 무릎 관절이 좋지 않은데도 419계단을 스틱을 이용하며 힘들게 올랐을까?
관음보살님 전 무릎 꿇고 경배를 올리고 나의 흉허물을 참회해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도 않고 거만하게 서서 '보잘것없고 냄새나는 제가 왔습니다. 저의 흉허물을 보지 마시고
당신의 자비로 오늘 제 발걸음을 보호해 주십사'고
두 손 모아 기도를 하고 마지막에 나무 관세음보살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나도 모르는 새 '아멘'이라고 끝을 맺어
혼자 쓴웃음을 짓고 말았습니다.
그러함에도
며칠 머물고 싶은 마음 간절했으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 또한 삶이라 다시 배를 타러 포구로 나갑니다.
석모도를 떠나올 때는 해가 서산에 기울고 갈매기도 다음에 또 오라며 환송을 합니다.
'牛馬처럼 걷는 인천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화) 삼별초 항쟁비가 있는 외포리 풍경 (0) | 2013.01.28 |
---|---|
(인천) 차이나타운의 풍경 (0) | 2013.01.26 |
(강화) 해수관음 성지 석모도 보문사(普門寺) (0) | 2013.01.22 |
(인천) 아라빛나래 루미나리에와 아라뱃길의 야경 (0) | 2013.01.21 |
(인천) 섬 속의 섬 목도를 아십니까? (0) | 2013.0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