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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서울 여행

(서울) 대한민국 역사박물관-1

대한민국 역사박물관-1

 

 

언제 : 2013년 1월 10일 목요일

어디 :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대로 198 

 

매스컴의 요란함도 없이

뜬금없이

2012년 12월 26일 서울 광화문 한복판 옛 문화관광부 청사를 개축하여 개관한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을 오늘 찾았습니다.

 

박물관은

1층에는 기획전시실 두 곳이 있고 3층에서 5층까지는 상설전시실이 있는데

상설전시실은

제1 전시실은 '대한민국의 태동'(1876년~1945년)

제2 전시실은 '대한민국의 기초확립'(1945년~1960년)

제3 전시실은 '대한민국의 성장과 발전'(1961년~1987년)

제4 전시실은 '대한민국의 선진화, 세계로의 도약'(1988년 이후)

총 4개의 전시실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1876년~1945년)

 

'대한민국의 태동' 에서는 강화도조약 체결을 통해 조선이 세계에 문호를 개방한 1876년부터

대한제국, 일제 강점기, 1945년 독립에 이르는 시기의 대한민국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데니태극기: 1880년경

 

1886년부터 1890년까지 조선의 외교고문을 지낸 미국인 데니(Owen N. Denny)에게

고종이 하사한 것으로 알려진 태극기

 

김구 서명문 태극기 : 1941년 등록문화재 제388호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가 1941년에 중국에서 미국으로 가던 벨기에 출신

미우스 오그 신부에게 준 태극기

 

한국 광복군 서명문 태극기 : 1945년 등록문화재 제389호

 

한국 광복군 제 3지대 2지구대에서 활동한 문웅영(일명 문수열)이

1945년 2월경 광복군 동료 이정수로부터 선물받은 태극기

 

 

 

 

국가안위노심초사

 

안중근 의사가 1919년 3월 옥중에서 쓴 행서 글씨.

 

오른쪽 위에 "증안강검찰관"이라 쓰여 있듯이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 있을 때 자신의 취조를 담당했던 여순검찰청 야스오카 세이시로 검찰관에게 써준 것으로  

야스오카는 사망하기 직전 이 유묵을 큰딸 우에노에게 물려주었고,

그 뒤 동경 국제한국연구원의 최서면 원장을 통하여 1976년 2월 11일 안중근의사숭모회에 기증되었다. 

 

선지에 모두 여덟 글자를 한 줄에 썼는데, 내용은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라는 뜻이다.

 

말미에 "경술년 3월 여순 감옥에서 대한국인 안중근(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이라 낙관하고

왼쪽 손바닥으로 장인을 찍었다.

 

독립 선언문

민족대표 33인

손병희 길선주 이필주 백용성 김완규 김병조 김창준 권동진 권병덕 나용환 나인협

양전백 양한묵 유여대 이갑성 이명룡 이승훈 이종훈 이종일 임예환 박준승 박희도

박동완 신홍식 신석구 오세창 오화영 정춘수 최성모  최린  한용운 홍병기 홍기조

 

이봉창 의사 한인 애국단 입단 선서문(1932년) 

 

윤봉길 의사 한인 애국단 입단 선서문(1932년)

 

 

아~

통한의 38선

한 민족 한 국가, 부모와 자식과 형제들이 사는 곳을 멋대로 선을 그어

북조선은 소련이 통치하고

남조선은 미국이 통치하여 결국 분단국으로 만들어 오가지도 못하는 서러운 나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1945년~1960년)

 

'대한민국의 기초확립' 에서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의미와 6.25 전쟁의 참혹한 실상

그리고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전후 근대 국가의 토대를 구축해 가는 과정을 다루고

시민의 힘으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려 민주화 운동의 토대가 된 4.19혁명의 의미를 되살펴 본다.

 

 

 

 

 

 

 

 

 

1950년 북한이 남침을 위해 선제공격 계획을 표시한 작전지도

 

 

 

어렸을 적 많이 보았던 미국의 원조물 밀가루 포대

 

자유부인 영화 포스터와 소설

 

좁은 책걸상과 검정교복 그리고 졸업장 통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

어머니 어머니 우리 어머니

국민학교 1학년 국어책에서 배웠는데.

 

 

앞가슴에 손수건을 달고

어머니 따라 국민학교 입학한 때가 눈에 선한데

벌써

환갑이 지나버렸습니다.

위에 책걸상과 방학 책 그리고 밑에 복잡한 교실 풍경은 바로 우리가 생활했던 그대로입니다.

 

 

오전, 오후반으로 나눠 학교에 다녔고, 보통 60명 이상이 한 반이었는데......

 

6.25 직후의 영화 '성벽을 뚫고' 와 가요 '단장의 미아리 고개'

 

자석식 체신부 1호 전화기

 

 

 

 

 

 

1960년 4월 19일

 

 

 

정변(政變)이란,

반란이나 혁명, 쿠데타 등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생긴 정치상의 큰 변동

 

 국립중앙박물관이나 다른 공공문화시설은 주로 외진 곳이나 교통이 불편한 곳인 데 비해

한민국 역사박물관은 대한민국 서울 광화문 한복판 옛 문화관광부 청사를 개축한 파격적인 대우임에도

역사를 돌아보면 눈물이 핑도는 아픔과 환희가 없고

땀 묻은 자료도 없고, 내용도 교과서처럼 나열식이며 알차지 못한 

이런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을 왜 이렇게 서둘러 개관을 했는지 답답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그럴까?

행여,

치적일까?

 

역사박물관으로 오시는 길 안내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의 설명을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