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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자작詩

향일암(向日庵)에서

 

 

 

 

향일암(向日庵)에서

 

처음 가는 길은

숭고하다.

 

반도에 봄이 가장 먼저 닿는

돌산도

금오산

 

수십 번은 갔다 왔을 곳을 이제야 더듬더듬

길 올라

딱 한마디 할 수 있었다.

 

아,

 

그리고는

네 탓으로만 돌리며 내 손을 놓지 않던 징한 것들이

머리에서

등줄기 따라 달리더니

내 손을 뿌리치고

절벽 아래

눈 시린 푸름 향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심연으로 사라진다.

 

향일암 오르는 길은

결코

쉽지 않지만

나처럼

사연 많은 사람은 오를 필요가 있다.

 

거기엔

죄 많은 사람은 통과할 수 없다는

좁은 바위틈

 

죄 없다면 그곳을 빠져 올라

가만히

돌아서

 

자비의 손 내미시는 부처님께

갖추면

 

올망졸망 달린 가슴 응어리

스스로

떨어져

 

내 안에

하늘과 바다와 목탁소리가

출렁인다.

 

가다가

홀로 고독해 지고 싶을 땐

동백꽃 붉은

 

금오산 이마 

바위틈

삼백육십오일 아침 해가 찾아오는

향일암에서

 

인연 있는 이에게

가슴에서 우러나는 편지라도 한 통

가만히 부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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