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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인천 여행

(강화) 선원사지(江華 禪源寺址)

 

강화 선원사지(江華 禪源寺址)

 

 언제: 2012년 9월 7일 금요일

어디: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지산리 692-1

사적 제259호

 

◈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仙源面) 지산리(智山里)에 있는

선원사는

고려가 1232년 강화로 도읍을 옮긴지 13년 되던 고종 32년(1245)

당시 최고 권력자 최우가 창건.

최대 국찰로 전국 각지에서 만들어진 팔만대장경이 이곳으로 옮겨져 147년동안 보관되다가

1398년(조선 태조 7년) 한양 지천사(支天寺)로 옮겨진 뒤 지금의 해인사로 갔다.

 ◈ 고려 고종 33년(1246) 5월에 왕이 친히 이절에서 제를 올렸고

충렬왕 16년(1290) 12월에는

거란병을 피하여 왕이 거동하였다가 18년(1292)에 비로소 환궁하여 왕실과 이절사이에 연락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이 사지는 약 4,840평으로 현제 문화재 보호법 44조의 규정에 의거하여

동국대 박물관 선원사지 발굴팀이 발굴작업을 하였다.

 

 

 

 

 

 

 

 

 

 

 

 

 

 

 

 

  

 

 

 

 

 

 

 

 

 

선원사는

고려시대에 침략을 받아 강화도로 도읍을 옮긴 후

고종 32년(1245)당시최고의 권력자였던 최이(최우)가 창건한 절이다.

이 절은 최이가 대몽항쟁의 정신적 지주로 삼고 불력을 통해 구국하고자 창건한 것으로

강도 피난시대의 최대의 국찰격 사찰이었다.

특히 이곳에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팔만대장경을 조각, 봉안하였다.

이때의 팔만대장경 목판은 현재 합천 해인사에 봉안되고 있는데 조선 태조 7년(1398)서울로 옮겼다가

세조2년(1456)경 옮겼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에는 순천 송광사와 함께 고려의 2대 사찰로 손꼽혔으나 조선 태조 7년 훼철되어 그 유지조차 찾지 못하던 중

1976년 동국대학교 강화 학술 조사단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그러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이종철 교수는

「강화 선원사의 위치 비정」(한국선학 3호, 2001)라는 논문을 통해

“동국대 학술조사단이 실측조사 결과 발굴한 유물로는 ‘절터’라고 주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이 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선원사지로 추정할 만한 근거는 되지 못한다”며 “『고려사』에 따르면 ‘신니동(현 지산리 신지동)에 가궐(假闕)이 있었고

이 곳에서 대불정오성도량(大佛頂五星道場)의 법회가 열렸다’고 기술돼 있어 불교관련 유물이 있다고 해서

사찰 터라고 주장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