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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인천 여행

(강화) 평화 전망대

강화 평화 전망대

 

 

누구에게나 무작정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우울할 때, 나를 찾고 싶을 때…….

 

개연성을 전혀 찾을 수 없는 수많은 이유와 상황들이 떠나고 싶은 욕구로 귀결된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다. 그만큼 떠남에는 모든 것을 치유해 주는 능력이 있기 때문일까. 사실 치유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떠났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일탈의 감흥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기 마련이므로. 머리로 따지지 말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나서보는 여행.

훌쩍 떠나는 여행이 좋은 것은 바로 그 일탈 때문이다.

 

2월의 마지막 날, 강화 평화 전망대를 다녀왔다.

포근한 날씨여서 시야는 좋지않아 바로 앞에 보이는 북한땅을 희미하게 바라보게 되니

기분도 착잡하다.

 

가장 가까운 거리가 약 1.8km.

맑은 날은

북한 주민들의 움직임도 관망된다는데......

 

지구상 어디라도 갈 수 있는데

아직도

우리땅이면서도 아무나 갈 수 없는 북녘의 하늘은 잔뜩 흐려 있다.

 

 

 

 

 

 

 

망배단 

 

3층 전망대에서 안내원의 설명을 듣다.

사진 상단 왼쪽은 북한땅의 예성강과 북한의 곡창지대인 연안평야. 가운데 빨간깃발이 평화 전망대.

사진 중앙 상단은 개성 그리고 우측의 강은 임진강과 한강의 합류점. 하단 중앙 깃발은 김포 애기봉.

멀리 개성 송악산이 관망된다.(직선거리 약 20km)

불과 1.8km의 북한 해창포

몽고군의 침략으로 고려 23대 고종이 개성에서 해창포로 와 배를 타고 강화도로 피난한 곳.

그 이후 39년 강화도의 고려시대가 되었다.

 

 

 2층 전망대

2층 전시관

구멍난 녹슬은 철모

전시관의 북한 화폐

 

1층 통일 염원소

 

북한 술

 

 

 

 

 

 

 

동막 해수욕장 전경

 

평화 전망대 관람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강화도의 유일한 해수욕장인 동막 해수욕장을 들렀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모래밭을 걸어보지도 못하고 돌아왔다.

 

초지대교 건너 왼쪽 황산도

 

 

 

아내가 거금 35,000원 주고 북한 들쭉술을 사 내게 선물했다.

 

-여행후기- 

 

아내와 모처럼 시간을 맞춰 강화도 여행을 했다.

휴일의 강화도는 전국에서 몰려든 차량으로 오후시간의 도로는 거의 마비가 되어 즐거웠던 하루가

후회로 돌아서기도 한다.

 

이번 여행에서

강화도가 고려 23대 고종이 전망대 맞은 편 해창포에서 처음 강화로 피신한 것이 39년의 강화시대가

열리게 된 것과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로 흐르는 강의 이름이 조강이라고 불리운다는 것

그리고

조강과 예성강이 만나는 곳에는 큰 모래밭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곳을 청주뻘이라고 불린단다.

그러나

서해에 이르는 장대한 강을 한강이라 불리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언젠가 좋은 날

아이들과 다시 찾아 볼 만한 가치가 있어 다음을 기약하면서

한민족의 평화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