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성공회 성당
언제 : 2009.9.28.
장소 : 강화읍 관청리
고려궁지로 가는 길 우측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용흥궁이 있고 용흥궁 뒷편의 문을 통해 나가니 넓은 공원이 새로 조성 되어 있고
높은 돌계단이 위에 솟을 대문이 보이는데 이곳이 강화 성공회 성당이다.
고종 33년(1896) 강화에서 처음으로 한국인이 세례를 받은 것을 계기로1900년 11월 15일 찰스 존 코르페(C. John Corfe : 한국명 고요한)이
이곳 강화에 한국 최초의 성당을 세우게 되었다.
외삼문격인 대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위에는 '聖公會江華聖堂(성공회강화성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문에는 태극문양을 본뜬 큰 원을 그리고 그 안에 십자가를 그려넣었다. 성공회강화성당의 편액에는 호가 菊史(국사)라는 낙관이 찍혀있다.
건물 구조는 정대문을 들어서면 홍살의 범종이 있는 종각 그리고 성당 본관이 있고 본관 뒤에는 사제관이 있다.
3문( 외삼문=일주문, 내삼문(종각으로 쓰임)=천왕문, 영광의 문 (양쪽 출입문)=중문
돌계단을 오르면
무슨 사당같은 태극 그림이 솟을 대문에 그려져 있고 안에 들어서면 언뜻 보기에 어느 절과 다름없는 범종이 홍살의 종각에 있는데
일반적으로 성당의 종은 종루의 높은 곳에 메달아 줄을 연결하여 당기어 종을 치는데 이곳은 절에서 종을 치 듯 옆에서 치게 되어 인상적이다.
범종의 건물을 지나면
본관이 버티고 있는데 마치 큰 배를 연상하게 되며 지붕에 십자가와 천주성전이란 현판만 없다면 영락없는 어느 절과 같다.
이것은
아마 토착문화의 옷을 입히어 거부감이 강한 서양 종교를 민중의 마음으로 다가갔던 고뇌의 흔적이 아닐까.
태극문양이 그려진 성공회성당 정문
성공회강화성당 정식 명칭은 ‘성베드로와 바우로 성당’이다.
범종이 있는 종각
대체로 성당의 종은 높은 종루에 종을 메달아 줄을 연결 잡아당기어 치는데
이곳의 종은 절의 범종과 같아 특이하고 인상적이었다.
성당 본관
지붕의 십자가와 천주성당이라는 현판만 없다는 어느 사찰과 다름없는 모습.
성당 내부
성당 후면
마치 큰 배를 연상하게 하는 모습
사제관
원래 주교관으로 1903년 班家(반가)의 형식으로 만들어진 18칸 한옥이었다. 그러나 1984년 성당 기와교체 공사 중에 화재로 소실되었고,
지금의 건물은 1986년 다시 지었다한다.
初代 主敎(초대 주교) 고요한 記念碑(기념비), 主敎(주교) 端公(단공) 雅德(아덕) 記念碑(기념비),
朝鮮聖公會第三世主敎趙瑪可記念碑(조선성공회제3세주교조마가기념비)와 백주년 기념비
100주년 기념비의 뒷면
알마(Alma)수녀 기념비-1896년 온수리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1906년 전염병으로 죽은 알마 수녀 기념
쌍둥이 보리수-수령 100년이 넘는 나무
( 영국 선교사가 본국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인도에 들러 가져와서 심은 나무)
해질 녘 성당과 보리수나무
가을이 성당주변에 다가서고 있는 석양 무렵의 강화 성공회 성당 풍경
강화 성공회 성당 소개
강화성당은 고요한 (Charies Jone Corfe) 초대주교가 1900년에 축성한 건물로 성베드로와 바우로 성당으로 명명되었다. 당시 건축공사는 궁궐 도편수가 주도하였고 이후 몇차례 보 수가 있었으나 처음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성당터는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로서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배의 형상을 따랐다.
성당 건물은 장방형(넓이 4칸, 길이 10칸) 중층구조로 전체적인 건축양식은 한국전통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배치와 내부구조는 서양식 바실리카 건축양식을 응용하여 조화의 아름다움과 토착정신을 드러나게 하였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1981년 경기도 지방유형문화재 111호로 처음 지정된 이래 강화군이 인 천광역시로 편입되면서 인천지방유형 문화재로 변경되었다가 2001년 1월에 국가사적 424호 로 변경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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