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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인천 여행

강화도 온수리 성공회 성당

강화온수리성공회성당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505-3)


언제 : 2009.9.16.

장소 : 강화도 길상면 온수리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 포천 산정호수와 명성산을 다녀오려 했는데 계획에 차질이 생겨
혼자 쉽게 다녀올 수 있는 강화도를 택하여
늘 지나치기만 했던 온수리 성공회 성당을 둘러보기로 했다.
 
성당은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길상면 소재지의 낮은 언덕에 위치하였다.
멀리서 보니
서울 태평로에 있는 성공회 본당과 비슷하게 지은 멋진 성당이 보였는데
아니 저게 오래된 성당이란 말인가?
의아심을 갖고 골목을 따라 찾아가니 생각보다 멋진 성당이 당당히 서 있는데
그 옆 조금 떨어진 곳에 한옥의 건물 한 채가 보였다.
 

 

 
소개
 
강화 온수리성공회 건물은 1906년 영국인 마가 신부가 지은 것으로, ‘성안드레 성당’으로도 불린다.
건물은 예배를 보는 본당과 종을 달아놓는 2층의 종루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을 올리고 있다.
본당의 내부는 예배공간인 신랑(身廊)과 측랑(側廊)으로 구성되어있다. 내삼문 역시 외삼문과 마찬가지로 정면과 측면이 각각 3칸과 1칸이며,
안에는 1945년 일제에 의하여 징발되어 지금은 남아있지 않은 서양식 종을 대신하여 1989년 새로 제작된 종이 걸려 있다.
그런데 이 종의 형식은 우리나라 전통의 범종양식을 띠면서 외삼문의 대문에 도안되어 있는 태극과 십자가 무늬가 시문되어 있다.
성공회 강화성당의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11칸의 장방형 2층 팔작집이며, 지붕 위 용마루 양끝에 십자가를 올린 것이 특색이다. 건물 정면에는 “천주성전(天主聖殿)”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성당의 내부구조는 입구인 앞툇칸, 회중석(會衆席), 지성소(至聖所), 소제대(小祭臺), 제대, 예복실로 배치되어 있으며, 내부에 석제 성수대(聖水臺)가 있는 소위 바실리카양식이다. 사실 바실리카양식의 기본형식은 회랑풍의 앞뜰이 있고, 건물 내부에 전실(前室), 열주(列柱)로 구성된 내당(內堂)과 내당의 양쪽에 측랑(側廊), 제단과 후진(後陣)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바실리카양식을 한옥에 적용하여 지은 것이 바로 이 건물이다.

그것은 건물의 앞쪽에 툇마루를 만들어 전실의 효과를 두고 있고, 안에는 2층으로 이어지는 고주(高柱)를 열주로 하여 내당을 만들고 그 앞쪽에는 지성소를 모셨으며, 역시 뒤에 후진의 공간을 만들어 예복실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내당을 좌우로 지나갈 수 있도록 측랑을 구성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형태는 전형적인 바실리카양식을 한국 건물에 맞춰 설계한 한옥화된 서양식 건물이라고 볼 수 있다.
예컨대 지붕 용마루의 양끝에 위치하는 취두(鷲頭)를 대신하여 십자가가 배치된 것이나, 우동마루에는 궁궐 건축에서 보이는 용두(龍頭)를 올린 것 그리고 건물 정면의 우주(隅柱)와 탱주(큖柱)를 주련(柱聯)으로 장식하고 있는 것 등은 한옥건물의 전통을 무시하지 않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특기사항 : 1997.7.14. 인천시지정 문화재자료 제15호 -> 유형문화재 제52호
 
 

 

 안드레 성당 정문 

우리나라 대문양식을 본떠 솟을삼문의 종루.
대문은 얼마 전까지도 벽체가 회벽으로 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털어내고 원형대로 창살로 고쳤다.

 속이 환하게 보이는 입구에는 문은 없고 양옆으로 창고를 만들어 이용할수 있도록 하였다.    

 정문 문루에는 종이 달려 있고 종을 칠 수 있도록 줄이 연결되어 있다.

 옛 건물로 치면 당당하고 큰 건물이었다.

 옛 명칭 : 성 안드레 성당

 

성당 안으로 들어가려면 방문 같은 亞자 미닫이문이 닫쳐 있는데 조심스럽게 열면 예배실 내부가 한눈에 들어온다.

좌우로 크게 3부분으로 나뉘어 있고 전면은 집례하는 공간으로 쓰이고 있는데 더 안쪽으로는  

 집례 준비를 위한 공간으로 구별하여 문을 닫아 놓았다.


내부가 그리 넓지도 않은데 가운데 두줄로 네모난 고주(기둥)를 두어 지붕의 무게를 분산시킨 것 같다. 
현재까지도 예배를 드리고 있다. 
    

 

 

 

 

    

 

 

 

 

 

 

 매우 아름다운 성당이었다.

푸른 잔디와 노송아래 벤치에는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전면에서 본 성당 

 

 노송 한 그루가 새 성당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서 있어 인상적이었다.

 

- 여행 후기 - 

조선 광무 10년(1906) 대한성공회 초대 주교인 영국인 조마가(Mark N. Trollope)  주교에 의해 건립되었다.
우리나라의 초기 서양기독교 교회로 동서 절충식 강당형 건물이다.
직사각형 중층 팔작지붕 홑처마집 한옥으로 건축 규모는 1층은 정면 4칸, 측면 15칸이며 2층은 정면 2칸, 측면 13칸이다.
본당의 내부 평면은 예배공간인 신랑(:Nave)과 측랑(:Aisle)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국 성공회는 포교단계부터 예배의식, 신앙 상징물 등에서 한국의 전통적인 문화를 살리려고 노력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1900년 이곳에 현재의 성공회 강화성당(인천유형문화재 111)을 건축할 당시에도 반영되었다.
대한성공회 최초의 성당이자 한식 교회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성당은 시장 중심에서 약간 벗어난 야산에 있는데 100년의 세월을 무색케 할 정도로 깨끗하며 서양 종교 건물답지 않고
그저 수수한 우리 관아 아니면 궁궐의 일부건물 같다.
건물 높이는 그리 높지 않고, 정면 옆 출입문은 항상 열려있어 드르륵 밀고 들어서면 된다.
이 건물은 새성당을 건축하면서 함께 원형 복원을 하였다 한다.

2004년 11월 28일 새 성당 축성식과 한옥성당 원형 복원 감사예배를 드렸다.
새성당은 거의 10여년을 애써서 마련하였다고 한다.
야산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3층 구조로 되어 있는데 역시 겉에서 보면 4층처럼 보인다.
대예배실이 2층 지붕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길에 강화 풍물시장을 둘러보다 벤뎅이 무침에 식사와 소주 한 잔 곁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