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牛馬처럼 걷는 인천 여행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가 있는 팔미도 여행

106년만에 공개 된 팔미도 등대 여행

 

일시 : 2009. 5.7.(목요일) 15:30~18:00

장소 : 인천 연안부두 -인천대교 - 팔미도

경비 : 22,000원(왕복 배삯)

 

팔미도 소개

면적 0.09㎢. 인천에서 남쪽으로 13.5㎞쯤 떨어져 있는 인천 중구 무의동에 있는 섬.
사주(沙洲)에 의하여 연결된 두개의 섬이 마치 여덟팔(八)자처럼 양쪽으로 뻗어 내린 꼬리와

같아 팔미도(八尾島)라 불려졌다고 한다.

 

팔미도 등대 소개

 

팔미도 등대는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이다.
1901년 일본이 우리 정부와 체결한 ‘통상장정(通商章程)’에 “한국 정부는 통상 이후 각 항을

수리하고 등대와 초표(礁標)를 설치한다”고 한 조항을 들어 등대 건설을 강권함으로써

1903년 6월1일 팔미도 꼭대기(해발 71m) 에 높이 7.9m, 지름 2m의 최초의 등대로 세워졌다. 


팔미도 등대는 6·25 당시 인천상륙작전의 불을 밝힌 역사를 지니고 있다.극심한 간만의 차 등

여러 악조건 때문에 인천상륙작전은 성공할 확률이 거의 없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었다.

영흥도를 중심으로 각종 첩보 활동을 펼쳤던 캘로 부대원들은 1950년 9월 10일 밤 발동선을

타고 들어가 팔미도 등대를 조사했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북한군은 이 등대를 전혀 쓰지 않았는데, 조사해 보니 반사경의 전선이

끊어졌을 뿐 멀쩡하였다. 그들은 동경(東京) 유엔군 총사령부에 “필요하다면 등대를 켜 놓겠다”

고 연락을 취했다. 동경에서는 “9월14일 밤 12시 정각에 등대를 밝히라”는 명령을 내렸다.

9월14일 밤,그들은 팔미도에 잠입해 등대에 불을 밝혔다. 이로써 수백 척의 함정들이 등대를

길잡이 삼아 팔미도 해역에 집결했고, 다음날 새벽에는 곧바로 장관을 이루며 상륙 작전에

돌입할 수 있었다.

서해바다를 100년간 지켜온 팔미도 등대는 문화재로 보존되어 2003년에 새로운 등대가 세워졌

다.해양수산부는 2002년 8월 등탑과 사무실이 같이 있는 연면적 187.5평 규모의 새 등대를

착공해 2003년 6월에 등대 100주년을 앞두고 완공하여 높이는 7.9m에서 23.6m로 높아졌고

광학적인 빛의 세기도 크게 강화돼 더 멀리서도 볼 수 있게 되었다.

 

현재의 팔미도 등대는 등탑 높이 26m, 전망대, 100주년 기념 상징조형물 (천년의 빛),

위성항법보정시스템(DGPS)기준국 등의 시설과 첨단 장비를 갖추고 2003년12월에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였다.

등명기 불빛은 국내기술로 개발된 프리즘렌즈 대형 회전식등명기로 50km까지 비추며, 10초에

한번씩 번쩍인다.

 

그동안 팔미도는 일반인들이 드나들지 못했으나

인천시는 2009년 1월부터 '인천방문의 해'와 세계 도시 축전 개최를 기념해 팔미도 관광을

허용했다.  

 

팔미도에는 칡, 해송, 담쟁이넝쿨, 패랭이꽃 등이 서식하고 있다. 

 


 
 

 

 

연안부두 노래비 

15:30 유람선 하모니호에 승선

 

백령도 등 연안을 운항하는 여객선

제주도와 중국을 운항하는 대형 여객선. 

인천대교
2009년 10월 완공 예정.
총 길이는 21.38㎞에 교량이 18.2㎞로 인천 송도 신도시와 인천국제공항을 연결하는 다리.

 

사장교의 경간은 800m로 완공이 되면 세계 5위의 길이, 강바닥판 상자형 거더에 주탑은 역Y형 콘크리트 구조로 높이는 238.5m이다. 공법은 서해대교에서도 쓰인 크레인이 작은 거더 블럭을 차례대로 가설하면서 케이블도 동시에 가설하는 방식이 사용되었다. 또한 다리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사장교 구간과 접속교 일부 구간에 최대 10만톤급 화물선이 10노트의 속력에서의 충돌을 보호할 수 있는 선박충돌방지공이 설치되어 있다.

 

 

중국 기예단의 불쇼 

얼굴 가면이 수시로 변하는 신기의 변검 

 

늘씬한 무희들의 춤 

선상에서 바라본 팔미도 전경 

팔미도 도착  

 

팔미도 관광코스(관광코스가 제한되어 아쉬웠다.) 

선착장 - 숙소동 - 야외문화공간 - 구등대 - 신등대

 

 

등대 건립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조형물 '천년의 빛'  

 

 

106년만의 민간인 출입으로 많은 나무들이 보존되어 있다. 

신등대(뒤)와 구등대(앞) 

 

옛 등대의 바로 뒤를 지키고 있는 새 등대는 지하 1층, 지상 4층으로 박물관을 겸한다. 현재 팔미도 등대는 위성항법정보시스템(GDPS) 등의 첨단시설을 갖추고, 기상 및 해양 관측의 업무도 수행하고 있다. 또한 국내에서 개발된 대형 등명기를 장착해 최대 50㎞ 거리에 있는 바다에까지 조명을 비추고 있다.

등대 박물관은 인천상륙작전을 펼칠 때의 상황을 모형으로 표현한 디오라마 영상관, 고대부터 발달해 온 등대의 변천 과정을 보여주는 항로표지 역사관으로 꾸며져 있다. 박물관 옥상에는 팔미도를 둘러싼 서해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자리한다.

새로운 등대에서 선착장까지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되는 트레킹 코스이다. 1세기 동안 인간의 손을 타지 않은 섬에는 자연 그대로의 식생이 보존돼 있다. 수령이 50년을 훨씬 넘은 해송과 칡, 담쟁이넝쿨,
패랭이꽃, 뱀딸기를 비롯해 100여 종의 식물이 군락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전쟁에서는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했던 연합군이 첫 번째 목표로 삼은 곳이 바로 팔미도였다. 맥아더 장군은 특공대원에게 팔미도를 탈환한 뒤 등대의 불을 밝히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날 밤 오후 10시 환하게 켜진 등불 덕분에 인천 상륙작전이 성공하게 되었으며 그것을 기념하여 세운 기념비.

우리나라 최초의 팔미도 등대 

숙소 

유람선 하모니호의 모습

팔미도 해변 

모래톱으로 연결된 두 섬은 밀물이 되면 두 개의 섬으로 된다.

바지선에 대형 조형물을 선적하여 앞에서 끌고 가는 터그보트(Tug boat)=예인선 

인천대교의 위용과 멀리 건설중인 송도 경제특구의 풍경  

 

돌아오는 선내에서는 무희들과 승객들이 어울어져 신나는 노래와 춤판이 벌어진다. 

월미도 전망대(뒤)와 인천갑문 통제소(둥근 유리건물)에 출항 대기중인 초대형 상선(사진 우측 녹색의 상선). 

 

항구는 하얀등대와 빨간 등대가 좌. 우에 배치되어 있다.

18:00 연안부두에 도착. 

 

- 여행후기 -

떠나는 것은 곧 돌아옴을 의미한다.

인천에 살면서 기상조건과 개인 사정으로 미루던 팔미도를 드디어 다녀올 수 있었으며

평일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팔미도를 관광하였다.

팔미도는

인천 연안부두에서 15:30 유람선 하모니호를 타고 약 50분 정도가 소요 되었고 팔미도까지 가는 도중에는 선상내에서 중국 기예단의 불춤과 변검 그리고 러시아 무희의 멋진 공연이 있어 지루할 틈이 없었다.
팔미도를 관광한 후 18:00 연안부두에 무사히 귀항했다.


그동안 팔미도는 일반인들이 드나들지 못했으나 인천시는 2009년 1월부터 '인천방문의 해'와 세계 도시 축전 개최를 기념해 팔미도 관광을 허용했다.

그리고

인천국제공항과 인천 송도국제도시를 연결하는 인천대교를 건설 중이다.

인천대교는 총길이 21.3km이며. 주 탑의 높이는 63빌딩(249m)보다 약 10m 낮은 238.5m. 

 역사적 인천대교의 볼거리와 인천 앞 바다의 흐린 바닷물이 아니라 맑고 청정한 푸른 바닷물을 볼 수 있어 여행의 맛은 더욱 좋았다.

푸른바다에는 중국으로 가는 대형 여객선과 수 많은 상선이 오고 가고, 하늘에는 인천국제공항으로 가는 비행기가 수시로 팔미도 상공을 지나고 있어 인상적이기도 하다.

아쉬운 점은

아직도 팔미도는 군사보호구역이라 일정구역만 다닐 수 있어 아쉬웠으나 돌아와서 연안부두 근처 밴뎅이 회무침에 식사겸 소주 한 잔 할 수 있어 그 또한 멋진 추억의 하루로 충분하다.

 

팔미도등대는 지난 100여년간의 자기 임무를 완수하고 인천시 지방문화재(제40호)로 퇴역하였다. 그 대신에 10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등대가 그 옆에 자리잡게 되어 큰형과 막내가 공존하고 있다. 물론 큰형이 훨씬 키도 작고 몸집도 작은데 반하여 작은 동생이 훨씬 우람하다. 팔미도100주년 기념행사는 우리나라 등대의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의미를 지녔다. 최초로 100주년 등대가 출현하였다는 점에서, 동시에 지난 20세기 100여년간의 영욕이 끝나고 새로운 21세기의 역사를 연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그리하여 등대를 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움직임도 가시화되었으며 기념물을 등대 곳곳에 조성하는 운동도 이를 계기로 촉발되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팔미도 등대는 높이 26미터, 전망대, 100주년 기념 상징조형물(천년의 빛), 위성항법보정시스템(DGPS) 기준국 등의 시설과 첨단장비를 갖추고 2003년 12월에 새로운 모습으로 출현하였다. 팔미도등대의 등명기는 국내기술로 개
발된 프리즘렌즈 대형 회전식등명기로 50키로미터까지 비추이며, 10초에 1번씩 백섬광을
번쩍거린다. 100여년이 지났어도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데서 등대의 장기지속성을
감지한다. 왜냐하면 세월이 변하고 인간과 문화가 변하여도 배가 들어오는 뱃길의 노선은
변할 수 없는 것이며, 등대에 의지하여 어두운 길을 찾는 사람들의 보편적 행위도 바뀐 것이
없기 때문이다. 비록 GPS등으로 등대의 효용가치가 예전 같지는 못해도 등대 스스로 GPS까지
담당하게 됨으로써 제 역할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고대 알렉산드리아는 파로스 섬과 헵타스타디온이라고 불리던

1㎞정도의 제방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이곳의 동쪽 끝에 세계의

모든 등대의 원조격인 파로스 등대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