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린 뒤 그믐달
어느 남정네 가슴을
저리도
돌려 파 놓았을까
그 아픔 눈(雪)이 되어
지난 밤
미치도록 내려
냉혹한 세상살이 잠 재우고
요사스런 도시를 가리우고
좌절하여
홀로 아파하는 사람의 고통도 덮어 주었으리.
교만하게
우뚝 솟은 산들도 낮아지고
겸손하게
비워진 광야도 돌아앉고
분노하던
바다마져 숨 죽였으리.
흥하고 멸하고
차고 스러지고
그대
이 새벽
가난한 내 가슴에 들어와
꽃이 되지 못하고
하얗게
하얗게
사위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