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암사 봄꽃 이야기
언제 : 2025년 3월 31일 월요일
어디 :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
부처님 오신 날이 멀지 않았나 보다.
오랜만에 찾은 선암사에 서니 도로 양쪽에 아름다운 꽃 피어 있듯 연등이 줄지어 곱다.
3월 마지막 날,
간단하게 아침을 들고
지난밤 챙겨 두었던 배낭과 카메라를 챙겨 주안역에서 급행 전철을 타고 용산역에 도착
용산역 08:40 출발 순천역 11:22 도착하는 KTX에 올랐다.
부족한 잠을 자렸는데,
오랜만의 기차 여행의 설렘에 잠을 잘 수 없다.
전라선 기차를 타면 노고단을 시작으로 동으로 아스라이 뻗은 지리산 등허리가 용처럼 길게 늘어져
생동감 넘치는 기백이 보기 좋았는데
미세먼지로 뿌옇게 보여 아쉽지만, 구례에서부터 벚꽃이 피기 시작했고
스치는 야산에 활짝 웃는 진달래꽃이 고왔다.
무얼 하며 살았는가?
며칠 전까지 계절의 변화도 느끼지 못한 삭막한 삶이었는데.....

11:25
순천역 도착하여 서둘러 버스 정류장에 가니
다른 버스들은 안내판에 표시되는데, 선암사행 버스는 나타나지 않아 불안했으나,
12:10
1번 선암사행 버스로 13:15 선암사 입구에 내려 선암사로 향했다.


예전엔 입장료가 있어
선문에 들어설 때 늘 느끼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정작 입장료가 없으니 좋긴 하면서도
기분이 묘하다.
계곡물 내리는 소리 들으며 시원한 숲길 걸으니 어느새 승선교를 건넌다.
선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승선교 사이로 보는 강선루의 장관!

승선교와 강선루
승선교(昇仙橋)와 강선루(降仙樓)가 시야에 들어온다.
‘신선이 되어 오르는 다리’와 ‘신선이 내려와 노니는 누각’. 자태만큼이나 이름에도 운치가 묻어난다.

보물 제400호 승선교
큰 무지개다리는 길이 14m 높이 7m 너비 3.5m로
길게 다듬은 30여 개의 장대석을 연결하여 홍예석을 드리우고 홍예석 양쪽에 잡석을 쌓아 계곡 양쪽 기슭의 흙길에
연결시켰으며, 위쪽에는 흙을 덮어 길을 만들었다.
기단부는 자연암반을 그대로 이용하여 홍수에 쓸릴 염려가 없도록 하였으며, 홍예석 중간에는 아무기 돌을 돌출시켜
장식적인 효과와 함께 재해를 막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승선교는 숙종 24년(1698) 호암대사가 축조했으며 순조 25년(1825) 해붕스님에 의해 중수되었다.

초파일이 언제인가?
아직 한 달이 남았는데,
선암사 입구부터 절 곳곳까지 연등을 달아 봄꽃과 더불어 아름답다. 초파일 즈음이면
아직 싹을 틔우지 않은 나무들도 싹을 틔우겠지......

선암사 일주문(仙岩寺一柱門)
일주문은 절에서 속계와 법계를 구분하는 경계에 세운 첫 번째 정문으로 문(경계)을 들어서는 순간
부처를 향해 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주문은 9개의 돌계단을 앞에 두고 있으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단순한 맞배지붕집이다.
2개의 기둥을 나란히 세우고, 그 앞뒤로 보조 기둥을 세웠으나 위로부터 30cm 중간에서 보조 기둥을 잘랐다.
이는 기둥 양 옆으로 설치된 담장 때문인 듯하며, 다른 일주문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양식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 배치된 다포식 건물이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 배치되는 공간포를 앞면에 3구, 옆면에 1구씩 두어 공포로 꽉 차 있는 듯하다. 기둥 위에는
용머리를 조각하여 위엄을 더하였다.
앞면 중앙에 ‘조계산 선암사(曺鷄山 仙巖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선암사 일주문은 임진왜란(1592)과 병자호란(1636)의 전화를 입지 않은 유일한 건물로
조선시대 일주문의 양식을 잘 보전하고 있는 건축물이다.

일주문 뒤편에는 ‘고 청량산 해천사’라는
물 흐르듯 유연한 글씨로 새긴 선암사의 역사를 알려주는 명판이 하나 더 걸려있다.
청량산 해천사는 조계산 선암사의 옛 이름이다. 기록에 의하면 화재로 인해 폐허가 된 선암사를 심혈을 기울여 중창했던
상월선사가 조계산은 산이 강하고 물이 약한(山强水弱) 지세이며, 절의 위치가 불이 일어나는 아궁이 터와 같은
형세로 인해 화재가 잦다는 당시의 풍수적 믿음에 따라 화재를 예방하려는 방편으로
1761년(영조 37년) 산의 이름을 청량산으로 절의 이름을 해천사로 바꿨다.
1824년 해붕대사가 다시 조계산 선암사로 고쳐 부르게 했다고 하니
현재 일주문의 ‘조계산선암사’ 현판은 이때 만들어졌고, 뒤편에 걸린 ‘고 청량산 해천사’ 편액은 옛 이름을 기리기 위해
1916년(대정 5)년 경 풍관산인 안택희의 글씨로 제작하여 걸어둔 것이다

육조고사(六朝古寺) -만세루
만세루 '육조고사' 현판은
구운몽의 저자 서포 김만중의 부친인 김익겸(1614~1636)이 쓴 글씨.
선암사 만세루는 부석사의 안양루처럼 루 아래로 진입하는 누하 진입의 형태가 아니라 만세루 좌우를 돌아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만세루는 강당으로 학승들에게 강학을 하는 곳이다.
만세루에는 ‘육조고사(六朝古寺)’라고 쓰인 편액이 있는데 ‘고사’는 오래된 사찰이라는 의미이다.
‘육조’는 중국 선종의 창시자 달마대사를 일조로, 그 법통을 6번째로 이은 분이 혜능선사이다.
그래서 혜능선사를 육조 혜능이라고 부르는데,
‘육조고사’란 ‘혜능선사의 법통을 이어받아 선종을 널리 전파하는
유서 깊은 오래된 사찰’이라는 의미이다.


선암사 대웅전
만세루를 돌아가면 대웅전이다.
대웅전 마당은 생각보다 넓지 않고 마당 좌우로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3층 석탑이 좌우에 자리하고 있다.
마당 양쪽 3층 석탑은 보물 제395호이다.
대웅전 현판은
순조의 장인인 김조순의 글씨로
임금만이 글씨 앞에 이름을 새기는 것인데 자신의 이름을 글씨 앞에 쓴 것은
당시 김조순의 세도가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대웅전 마당에서 삼층석탑 이외에도 눈에 띄는 것이 있는데, 바로 괘불지주이다.
괘불지주는 9시, 10시, 2시, 3시 방향으로 각각 자리하고 있다. 괘불지주는 법회 시 대형 불화인 괘불을 걸어두는 곳으로,
겉모습은 당간지주와 비슷하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를 모신 전각이다.
선암사 대웅전의 특이한 점은 석가모니만 모셔져 있다.
보통 좌우로 협시보살이 함께 하기 마련인데 선암사 대웅전에는 협시보살이 없다.
대웅전 협시보살과 함께 선암사에는 없는 것이 또 있다.
바로 사천왕문이다.
보통 일주문을 지나면 사천왕문을 만나게 되는데 선암사에는 사천왕문이 없다.
그리고 또 하나, 대웅전에 어간문이 없다.
선암사는 어간문과 협시보살, 그리고 사천왕문이 없는 ‘3無’의 절이다.
그렇다면 선암사에는 왜 이 3가지가 없을까?
선암사는 조계산에 자리하고 있다.
조계산의 주봉이 장군봉인데 이 장군봉이 선암사를 지켜주고 있어 사찰을 지켜주기 위해
사천왕이 자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대웅전에 협시보살이 없는 이유는 대웅전에 자리한 석가모니불이 수행을 방해하는 악마를 항복시키는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처님처럼 깨달은 분만이 어간문을 통과할 수 있기 때문에
대웅전에 어간문을 만들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순천 선암사 선암매 - 천연기념물 제488호
선암사 선암매는 원통전. 각황전을 따라 운수암으로 오르는 담길에 50주 정도가 위치한다.
원통전 담장 뒤편의 백매화와 각황전 담길의 홍매화가 천연기념물 제488호로 지정되었다.
문헌에 전하는 기록이 없어 수령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사찰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약 600여 년 전에 천불전 앞의 와송과 함께 심어졌다고
전해오고 있어 선암사의 역사와 함께 긴 세월을 지내 왔음을 알 수 있다.



삼지닥나무 - 팔꽃나무과
낙엽활엽관목으로 높이 1~2m 내외이며, 꽃은 3~4월에 노란색으로 피고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심는다.
처음으로 본 꽃이라 관심 있게 본다.
엊그제까지 활짝 피워 아주 고운 향기를 선물했다는데 벌써 지고 있다.

흰 동백꽃이다.
동백꽃 하면 당연히 붉은 꽃이었는데, 선암사에는 처음 보는 흰 동백꽃을 보았다.
흰 동백꽃의 꽃말 = 순결, 비밀스러운 사랑, 어머니와 아이의 사랑, 굳은 약속, '손을 놓지 않는다'


선암사 뒤깐
선암사에서 어느 보물보다 유명한 것은 바로 뒤깐(화장실)이다.
선암사 뒷간은 그냥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안에 들어가 볼일을 봐야 제맛을 알 수 있다.
선암사 뒷간은 천 길 낭떠러지처럼 깊다.
선암사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으면 나무판자 하나에 의지해 깊이를 알 수 없는 '허공'에 떠 있는 셈인데,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내가 꽃이고 바람인데,
그것을 모르고 평생 꽃과 바람을 찾아 허공을 헤매는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닫는
'득도'의 기쁨을 누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에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 정호승 시인 -


선암사는 조계산 동쪽 자락에 위치한 천년고찰로
백제시대 아도화상이 개산하고, 통일신라 시대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한국불교 태고종의 총본산이다.
2018년 선암사를 비롯한 7개 사찰이 함께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한국 불교의 역사성과 승가의 삶이
전승되는 점을 인정받아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승선교를 비롯한 30여 점의 국가지정유산과 함께 3,000여 점의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선암사로 들어가는 숲길과 봄소식을 알리는 선암매, 승가의 차(茶) 문화를 담고 있는 차밭은
문화 유산 가치와 함께 자연유산의 가치를 간직하고 있다.
전혀 봄꽃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갑자기 새벽에 집 나서 전라선 기차를 타고 남도 여행길에 나섰다.
오랜만에
늘 겹입힌 일상을 벗어나니 그간 나를 가린 그늘이 사라지고 나를 보게 된다.
나이가 들 만큼 들었는데도 아직도 생각하는 것은 설다.
2025년 들어 더욱 그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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