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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벨기에 -4) 건축가 빅토르 오르타의 저택

세계문화유산(267)/ 벨기에

건축가 빅토르 오르타의 저택

(Major Town Houses of the Architect Victor Horta(Brussels); 2000)

 

건축가 빅토르 오르타(Architect Victor Horta)가 디자인한 4채의 주요 타운하우스(Town Houses) - 타셀(Tassel) 저택, 솔베이(Solvay) 저택, 반 에트벨데(van Eetvelde) 저택, 그리고 오르타의 저택과 아틀리에(Maison & Atelier Horta)-는 19세기 말에 건축된 초기 아르누보 작품으로 가장 괄목할 만한 선구적 작품이다. 이 건축물은 개방 구조, 빛의 확산, 그리고 장식적인 곡선이 건물 구조와 아주 멋지게 통합되어 당시에는 혁명적인 건축 스타일로 일컬어진다.

19세기 말 아르누보의 출현은 건축의 발전상 중요한 단계를 보여 준다. 브뤼셀에 있는 4채의 저택(타셀 저택, 솔베이 저택, 반 에트벨데 저택, 오르타 저택)은 이 새롭고 선진적인 양식에 대한 독특한 증거이다. 이 저택들은 아르누보 건축의 뛰어난 일례이며 예술, 사상과 사회적 성격 등이 19세기에서 20세기로 멋지게 전환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 작품들이 대표하는 혁명적인 스타일 즉 개방 구조와 빛의 확산, 그리고 장식적인 곡선은 건물 구조와 아주 멋지게 통합되었다. 타셀 저택은 1893년에 브뤼셀 자유대학 교수이던 에밀 타셀(Emile Tassel)의 의뢰를 받고 건조된 것으로 아르누보 운동과 건축의 융합을 성공시킨 최초의 사례로 간주되고 있다. 타셀 저택은 빅토르 오르타가 건축에 대한 독창적 사고를 갖게 된 최초의 작품이다. 저택은 1894년에 완공되었으며, 오르타는 이후 몇 년 동안 저택 안의 가구를 디자인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이 저택은 2개의 작은 아파트로 나뉘었는데 너무 작게 나뉘어져 집의 장식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1976년 건축가 장 델헤이(Jean Delhaye)가 도로 쪽 건물 앞면과 출입문을 재건했으며, 건물은 고급 사무실로 변경되었다. 석재로 된 도로 쪽 앞문은 주변과 훌륭하게 조화를 이룬다. 출입구 위에는 획기적인 철물 구조로 되어 있는 2층 내닫이창이 있다. 도로 쪽에서 보면 건물의 현관층, 메차닌(mezzanine; 다른 층들보다 작게 두 층 사이에 지은 층), 2층과 3층, 그리고 다락이 있다. 이 층들은 중앙 계단에 의해 정원 쪽으로 돌려져 있다. 솔베이 저택은 아르망 솔베이(Armand Solvay)의 의뢰를 받아 1895~1898년까지 건설되었으며, 가구는 1903년에 완성되었다. 1956년에 이 저택은 고급 의상실이 되었다. 1980년에 소유주는 중앙 계단의 유리 천장을 교체(1980~1982)하고 내부의 냉방과 건물 앞부분을 복원(1988~1989)하는 등 이 건물의 복원을 시작했다. 오르타의 건물들 가운데 가장 복원이 잘 되어 있으며, 원래의 예술품과 기능적 순서에 따른 실용품 등 그 내부가 여전히 온전히 보존되고 있다. 반 에트벨데 저택은 외교관이자 콩고의 사무총장이던 반 에트벨데로부터 1895년에 의뢰를 받고 1897년부터 건축이 시작되었다. 이 건물은 가족과 해외의 손님들을 맞이하는 위엄 있는 분위기를 표현하도록 계획된 것이었다. 서쪽 부분은 1900년에, 동쪽 부분은 1901년에 완공되었다. 1920년 반 에트벨데 부인의 죽음으로 이 저택은 두 부분으로 나뉘게 되었다. 오르타의 저택과 아틀리에는 오르타 자신의 전문가적 식견과 가족의 요구에 따라 건축했다. 이 건물은 부유층이 거주하는 도시의 두 구역에 1898년에서 1901년에 걸쳐 건축되었다. 오르타는 부인과 이혼한 이후 잠시 동안 이 건물을 임대하였으나 이후 테라스와 겨울 정원을 추가했으며 아틀리에를 확장하는 내부 개조를 한 이후 계속 거주했다. 건물의 앞면은 석재로 만들어졌으며 섬세하게 디자인된 금속 난간이 있다. 이 건물에서 가장 멋진 부분은 중앙 계단 위에 있는 거대한 유리로 되어 있는 천장이다. 1919년 이 건물은 메이저 헨리 핀트(Major Henri Pinte)에게 팔렸으며, 1926년에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1961년에 생질 코뮌[Commune of Saint Gilles]이 오르타의 박물관을 만들기 위해 거주용 저택 부분을 구입하였다. 빅토르 오르타의 이 저택들은 건축 역사상 고전적인 전통과 모더니즘 운동을 연결하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었다. 그는 개방 공간이라는 개념을 소개하고, 장식을 생각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그 본질적인 성질에 따라 재료를 사용하는 새로움을 창조하면서 당시 시대의 건축 개념에 있어서 혁명을 주도했다. 오르타 건물들은 19세기 부르주아 계층을 위한 거주용 건축의 전통을 부활시켰으며, 거주적인 기능과 구상주의적인 기능을 아울러서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오르타는 천재적인 능력으로 건축과 장식의 일관성 있는 일체감이 표현하였으며, 각 저택을 소유한 소유주의 성격을 반영하여 완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