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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벨기에 -2) 브뤼셀의 그랑플라스(La Grand-Place, Brussels; 1998)

세계문화유산(265)/ 벨기에

브뤼셀의 그랑플라스(La Grand-Place, Brussels; 1998)

 

 

브뤼셀의 그랑플라스는 브뤼셀[City of Brussels] 브뤼셀 수도 지역[Brussels-Capital Region]에 속하며,

17세기 후반부터 공공건물과 개인 건물이 조화롭게 공존하며 발전한 곳으로

정치적・상업적 중심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이곳의 건축들은 그 시대의 사회적・문화적 삶의 수준을 생생하게 반영하고 있다.

그랑플라스는 이 지역의 문화와 사회를 특징짓는  건축 및 예술 양식을 절충적이고 성공적으로 혼합한 훌륭한 본보기이다.

이곳은 공공에 개방된 공간으로 건축적 특성과 탁월한 품질을 지녔다.

이는 북유럽에서 최고의 번영을 구가하던 당시의 성공적인 상업 도시의 발전과 성과를 보여주는

매우 이례적인 사례이다.

본래 이곳은 ‘네더마르크트(Nedermarckt; ’낮은 시장‘이라는 뜻)’라고 불렸다. 이에 대해 최초의 기록은

1174년에 있었다. 오늘날 쓰이는 ‘그랑플라스’라는 이름은 18세기 중・후반기부터 사용되었다.

이곳은 저지대 로타링기아(Lotharingia)의 통치자였던 프랑스의 샤를에 의해서 977년경부터 성의 방어를 위한 지역으로 이용되었고, 요새 동쪽의 센 강 오른쪽 기슭에 있는 이전의 습지 지역에 있었다. 북쪽으로는

슈피겔베크(Spiegelbeek) 하천, 남쪽과 동쪽은 모래 제방이었으며,

주택의 일부는 이름에서 표현된 것처럼(산 6번, 언덕 10번 및 18번) 서쪽에서 동쪽으로 경사지게 배치되었다.

이 습지는 12세기에 이미 말라 버렸다. 오늘날 그랑플라스의 직사각형 외형은 계속된 확장과 변형의 결과로 수세기에 걸쳐 발전한 것이다. 1695년에 비로소 최종 모습을 갖추었지만 본래는 이곳을 가로지르는 7개의 거리가 있었다. 13세기, 14세기에 그랑플라스를 중심으로 주변에는 여러 석조 건물들이 둘러싸듯 배치되어 있었다. 이들 중에는 빵과 육류를 팔던 곳이 있었으며, 목재로 프레임으로 된 주택들도 있었는데 이 주택은 마당이나 정원 아니면 암비티(ambiti; 화재 방지 기능을 하는 통로) 등으로 구분되었다. 14세기 후반에는 거대한 클로스 홀(Cloth Hall)이 광장의 남쪽에 건설되었으며, 1396년에 시 당국은 건물을 확장하고 보강하기 위해서 많은 건축물들을 허용했다. 15세기에 광장 남쪽 방면의 주택은 시청의 동쪽 및 서쪽 부분의 건물(1401~1444), 그리고 종탑(1449)으로 대체되었다. 1405년에 새로운 브레드 홀(Bread Hall)이 북쪽에 세워졌다. 1441년에는 동쪽에 무질서하게 들어선 주택들이 철거되고 그곳에 6개의 연속된 건물이 재건되었다. 1420년경 이후 광장 주변의 주택들은 시 정부와 그랑플라스의 개선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회사와 길드에 체계적으로 양도되었다. 브레드 홀은 1512~1513년에 철거되고 ‘왕의 집[la Maison du Roi]’이라는 이름의 대형 건물로 대체되었다. 16세기에는 대부분의 건물이 르네상스 또는 바로크 양식의 새로운 파사드로 변형되었다. 1695년 8월 14일에는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프랑스 해안 마을과 항구가 네덜란드와 영국 전함에 의해 파괴된 것을 보복하기 위해 빌루아(Villeroy) 원수에게 브뤼셀을 폭격할 것을 명령했다. 당시 영국군과 네덜란드 군이 벨기에의 나뮈르(Namur)에 진주해 있었는데 프랑스는 70,000명의 프랑스 군과 슈 고원[Scheut heights]에 상당한 양의 대포를 배치할 수 있었다. 3,000개의 포탄과 1,200개의 조개탄이 브뤼셀의 도시 중심부에 떨어졌다. 8월 15일 밤에 그랑플라스에는 겨우 시청과 ‘왕의 집’, 그리고 주택 몇 채만 간신히 남았다. 브뤼셀은 엄청난 폭격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시 당국의 조치와 다른 도시들과 주의 지원 덕분에 도시는 빠르게 재건되었다. 시의 집행관이 1697년에 공포한 주요 조례에 의하면 파사드의 재건축을 위한 모든 제안은 시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광장과 파사드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었고, 결국 4년에 걸쳐 그랑플라스는 원래의 배치와 모습을 완전히 회복했다. 동시에 광장으로 통하는 여러 개의 거리를 확장・보강하는 기회가 되었고, 폐허가 되어 버린 클로스 홀은 얼마 안 되어 시청의 남쪽 부분으로 대체되었다. 그랑플라스의 남쪽 방면을 거의 차지하는 시청 건물은 직사각형 모양의 광장 주변에 있다. 광장에서 보이는 부분은 15세기부터 두 동의 ‘L’자 모양의 건물로 구성되었다. 전체 파사드는 19세기부터 동상으로 장식되어 있고, 단지의 남쪽 부분은 18세기에 건설된 고딕 양식 구조와 U자 모양의 차분하고 고전적인 건물이다. 광장 건너편의 시청 건물 역시 중요한 건물로 오늘날은 시립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왕의 집’이다. 1873년에 시 의회는 이 건물의 보존 상태가 너무 열악하므로 철거하고 재건할 것을 결정했는데 재건은 원형을 기반으로 했으며, 그 결과 아케이드형 파사드・안장 모양의 지붕, 그리고 랜턴을 중앙에 배치한 타워 형태의 3층짜리 석조 건물이 완성되었다. 그랑플라스 주변에 있는 주택들은 크기가 모두 조금씩 다르며 각각의 건물이 이름을 가지고 있다. 건물의 이름은 브라반트의 공작, 에스파냐의 왕, 작은 나팔, 백조, 맥주 양조자의 저택, 사슴, 재단사의 저택 등이다. 또한 주택 내부의 원래 모습을 보존한 정도 역시 다양하다. 어떤 경우에는 급격하게 변화되고 현대화된 반면 어떤 경우에는 18세기 초기 이후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 1층의 경우는 대다수의 주택이 상점, 레스토랑, 카페 등으로 사용하기 위해 변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