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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프랑스 -10) 퐁텐블로 궁전과 정원(Palace and Park of Fontainebleau; 1981)

세계문화유산(238)/ 프랑스

퐁텐블로 궁전과 정원(Palace and Park of Fontainebleau; 1981)

 

중세 시대인 12세기부터 왕실의 사냥터로 사용된 퐁텐블로는

일드프랑스 주[Ile-de-France] 센에마른 현[Department of Seine-et-Marne]의 방대한 숲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16세기에 이곳을 ‘신로마(New Rome)’로 만들고 싶어 했던 프랑수아 1세는 궁전을 완전히

바꾸고 확장하여 더욱 아름답게 장식했다. 거대한 정원으로 둘러싸인 이 퐁텐블로 궁전은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양식과 프랑스 예술 전통이 잘 어우러져 있다.

퐁텐블로 궁전의 건축 양식과 실내 장식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유럽의 미술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프랑수아 1세는 이 궁전을 ‘신로마’로 만들기 위해 이탈리아의 유명한 예술가들을 불러들였다.

이탈리아의 예술가들의 영향으로 프랑스는 르네상스의 미학을 도입하는 중요한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다.

16세기에 이곳을 ‘신로마’로 만들고 싶어 했던 프랑수아 1세는 궁전을 완전히 바꾸고 확장하여

더욱 아름답게 꾸며 놓았다. 그때부터 퐁텐블로 궁전은 프랑스 궁정의 가장 중요하고 고급스러운 유적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왕궁은 프랑수아 1세가 재위하는 동안 건립되었다.

1528년 프랑수아 1세는 옛 왕실 거주지를 허물고 확장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지시했다.

이후 19세기까지 그의 뒤를 이은 왕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추가 작업을 진행하여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 퐁텐블로 궁전은 불규칙하게 배치된 5개의 안뜰과 주위에 들어선 많은 부속 건물들,

아름다운 정원들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오래된 건물들은

1528년과 1540년 사이에 건축가 질 르 브레통(Gilles le Breton)이 감독하여 건립했다.

현재 궁전 동쪽 구역에 자리 잡고 있는 쿠르 오발(Cour Ovale)도 건축가 브레통이 지었으며

고대의 토대에 기반을 둔 것이다. 1533~1540년까지 로소 피오렌티노(Rosso Fiorentino)는

‘프랑수아 1세 회랑’을 프레스코 양식과 치장 벽토[stucco] 공법에 따라 작업하였다.

매너리즘 양식으로 야심찬 도상학적 계획 하에 표현된 왕정 복고에 관한 주제들은 그리스 로마의 신화와

우화에서 빌려온 것이다. 프란체스코 프리마티초(Francesco Primaticcio)는 가장 유명한 낭만주의

청동상인 ‘벨베데르의 코르틸레 청동상[Cortile of the Belvedere]’과 ‘팔라초 델라 발레(Palazzo della Valle)의 코르틸레 청동상’을 주조했다.

프리마티초(Primaticcio)는 퐁텐블로에 살레 드 발(Salle de Bal)의 프레스코,

에탕페(Etampe) 공작부인의 방, 율리시스 회랑을 만들어 기량을 뽐냈다. 프리마티초가 감독하여

장식한 방들은 지금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하지만 그의 우아하고 세련된 창작품들은 당대의 미의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많은 그림과 조각 속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이들 작품 가운데 몇몇은

니콜로 델라바테(Niccolo dell'Abate)와 프리마티초가 함께 만든 것이다.

다른 유명한 예술가들의 기념물도 퐁텐블로와 긴밀한 관련이 있다.

 

미켈란젤로의 ‘헤라클레스’는 쿠르 드 라퐁텐(Cour de la Fontaine)의 대좌에 세워졌다.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는 남쪽 문인 포르트 도레에 ‘님프 드 퐁텐블로(Nymphe de Fontainebleau)’를 세우려 했다. 세를리오(Serlio)는 궁전 일부의 도면을 그렸고, 남상주(男像柱)를 세운

투박한 돌집이 있는 ‘퐁텐 벨레오(Fontaine Belle-Eau)’ 문을 고안했다. 이탈리아 건축가와 화가, 조각가들과 접촉함으로써 프랑스 예술가들은 급격한 자기 재생을 경험했다. 질 르 브레통은 작업을 시작할 때 이탈리아

예술가들의 영향을 피하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필리베르 드 로르므(Philibert de l'Orme)와 이후

자크 안드루 에 뒤 세르소(Jacques Androu et du Cerceau)에게 퐁텐블로 궁전은 결정적인 계시를 주었다.

이탈리아 화가들에게 얻은 교훈은 투생 뒤브륄(Toussaint Dubreuilh),

앙브루아즈 뒤부아(Ambroise Dubois), 마르탱 그레미네(Martin Freminet) 등 퐁텐블로의 제2학파 같은

또 다른 세대의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 그 이유는 광대한 궁전을 확장하고 장식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17세기 중반으로 접어든 예술 센터의 생존을 위한 이상적인 조건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퐁텐블로 정원들도 수세기에 걸쳐 중요한 변화를 겪었다. 동쪽에 있는

그랑 자르댕(Grand Jardin)은 원래 십자형 수로가 있는 사각형 화단들로 이루어졌다. 나중에 그랑 자르댕은

파르테레 뒤 티브르(Parterre du Tibre)로 바뀌었고, 이후 르노트르(Le Notre)가 다시 디자인하면서 점점

보강되어 바깥에 화단을 두른 4개의 잔디밭이 있는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수세기 동안의 휴식처이자 왕실 별장인 퐁텐블로 궁전은 여러 왕조와 온갖 양식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앙리 4세와 루이 13세・루이 15세・루이 16세는 퐁텐블로 궁전을 장식하는 데 아낌없이 돈을 쏟아 부었으며, 특히 나폴레옹 1세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