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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프랑스 12) 낭시의 스태니슬라스 광장, 캐리에르와 알리앙스 광장

세계문화유산(240)/ 프랑스

 

낭시의 스태니슬라스 광장, 캐리에르와 알리앙스 광장

(Place Stanislas, Place de la Carrière and

Place d'Alliance in Nancy; 1983)

 

낭시는 로렌 주[Lorraine Region] 뫼르트에모젤 현[Department of Meurthe-et-Moselle]에 위치하며,

왕국 없는 왕 스태니슬라스 레스친스키(Stanislas Leszczynski; 나중에 로렌 공작이 됨)의 임시 거주지였다.

이곳은 계몽 군주가 대중의 요구에 부응하여 지은 근대 도시의 가장 오래되고 전형적인 사례이다. 낭시는 1752~1756년

사이에 건축가 에마뉘엘 에레(Emmanuel Here)가 지휘한 건축 전문가들에 의해 건설하였다. 이 도시 계획 프로젝트는

왕권 강화와 함께 도시의 기능성에도 역점을 둔 수도였다.

낭시의 3개의 광장은 독특한 예술적 업적을 대표하는 위대한 천재의 작품이다.

낭시는 계몽군주가 대중의 요구에 민감하게 부응한 현대적 수도의 전형적인 예이다. 1752년과 1756년 사이에 건축가

에레의 건축 전문가팀이 자치권의 강화와 도시의 기능성을 보여 주기 위해 성공적으로 건설한 수도였다. 이것은 또한 건축 역사상 중요한 단계를 보여 주는 탁월한 예이다. 17세기 말에 낭시를 점령한 프랑스는 신도시와 소통할 수 있도록 벽에 문을 냈다. 그 문을 루이 14세를 기려 ‘왕의 문’이라고 불렀다. 폴란드의 왕위에서 쫓겨난 프랑스 왕 루이 15세의 장인인 불운한 스태니슬라스 레스친스키는 권력을 포기한 대가로 로렌의 종신 공작이 되었다. 스태니슬라스는 로렌에서 1737~1766년까지 평화롭게 ‘군림'했다. 구도시와 신도시 사이의 연결부가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것은 바로 스태니슬라스 치세 동안이었다. 스태니슬라스는 자신의 수도를 이루는 두 도시를 하나로 만들고 싶어 했다. 1588년 샤를 3세가 만든 신도시는 구도시와 이중 축선 주위에 이음매를 두어 연결했다. 동서로 나뉜 구도시는 신도시의 북쪽 경계를 이루는 생트 카트린 문[Portes Sainte-Catherine]과 스태니슬라스 광장과 접한다. 그리고 남서쪽의 신도시는 공작의 궁전이 있는 광장과 루이 15세에 봉헌된 루아얄 광장[Place Royale; 오늘날의 스태니슬라스 광장]이 있는 새로운 도시 풍의 공간 사이에 연결 지점을 두고 있다. 낭시의 도시화로 인해 생겨난 광장들은 스태니슬라스의 후원으로 창조된 가장 아름다운 작품들이다. 건축가 에레의 지휘 하에 철제품 제작자 장 라무르(Jean Lamour)와 조각가 퀴발(Cuibal), 시플리(Cyffle) 등으로 구성된 유능한 전문 팀이 1752년과 1756년 사이에 행한 건설 사업은 기념비적 완벽성을 추구한 매우 통일적인 프로젝트였다. 1752년 3월 공식 정초식을 거행할 때 광장에 최초로 건물의 주춧돌이 놓였으며, 왕의 광장의 준공식은 1755년 11월 엄숙하게 거행되었다. 왕의 승리를 기념하는 개선문, 조각상, 분수 등 군주를 찬양하기 위해 고안된 각종 고급스러운 건축물 외에도 시청, 재판소, 팔레 데 페르메(Palais des Fermes), 행정부서, 의대, 식물원, 도서관, 대학, 극장, 공공 정원, 많은 카페와 당구장이 있다. 낭시 사업은 대중에게 이 모든 시설들을 마음껏 둘러볼 수 있게 하기 위해 광장 3개를 개발했다. 낭시의 세 광장은 독특한 예술적 성취로서 창조적인 천재의 대작이라 일컬을 만하다. 처음에는 퀴발과 시플리가 만든 로마 장군 형상을 한 루이 15세의 청동 조각상이 광장 한가운데 서 있었다. 주위에 알레고리적인 형상들이 줄지어 있던 이 동상은 프랑스 혁명 때 사라졌다. 1851년 스태니슬라스 치세에 새로운 동상이 원래 자리에 세워졌다. 16세기에 성벽을 현대화할 필요성이 대두되자 도시를 동쪽으로 확장하게 되었다. 그 결과 새로운 광장, 누베 데 라 카리에르 광장[Place Neuve de la Carriere]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카리에르 광장 북쪽에는 반원형 원기둥이 있는 뒤 구베르뇌르 궁전[Palais du Gouverneur; 이전의 드 랭탕당스(de l'Intendance) 궁전]이 있고, 남쪽에는 개선문이 가로막고 있다. 남쪽 끝에는 보프랑(Boffrand)이 만든 보브 크라옹 저택[Beauvau-Craon Mansion] 건너편에 에레가 그것을 본떠 만든 증권 거래소가 있다. 이 두 건물에서 몇몇 로카이유 장식이 있는 두 줄의 집들이 두 개의 집까지 광장 양쪽을 따라 늘어서 있다. 알리앙스 광장[달리앙스 광장]은 원래 생 스태니슬라스 광장으로 불렸다. ‘알리앙스’라는 이름은 1756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프랑스 사이에 체결된 동맹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 광장은 시플리가 만든 바로크식 분수가 특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