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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프랑스 -11) 아르케스낭 왕립 제염소

세계문화유산(239)/ 프랑스

 

아르케스낭 왕립 제염소

(From the Great Saltworks of Salins-les-Bains to the Royal Saltworks of Arc-et-Senans,

the production of open-pan salt; 1982)

 

프랑슈콩테 주[Region of Franche-comte] 브장송 근처에 있는 아르케스낭 왕립 제염소

클로드 니콜라 르두(Claude-Nicolas Ledoux; 1736~1806)가 건설했다. 루이 16세 치세 하인 1775년에 시작된

이 건설 사업은 이상적인 계몽주의 사상이 발전되고 있었음을 반영하는 최초의 산업 건물의 건립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사건이었다. 르두는 합리적이고 계층적인 작업이 가능하도록 건물을 광대한 반원형 모양으로 배치하였다. 그 뒤를 이어

제염소 옆에 자신이 설계했던 ‘이상 도시[ideal city]’를 건설하여 통합할 계획이었으나 실현하지는 못했다.

살랭레뱅 대제염소는 적어도 1200년 동안 조업하였으며 1962년 가동을 멈췄다. 1780년부터 1895년까지 나무로 만든

21㎞의 파이프를 통해 살랭레뱅 염전의 소금물을 아르케스낭 왕립 제염소로 운반했다. 살랭레뱅 대제염소는 연료인

나무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방대한 쇼 숲[Chaux Forest] 근처에 건설되었다. 살랭레벵 대염전소에는 13세기에

만들어진 지하 회랑과 19세기에 만들어진 유압식 펌프가 있다. 펌프는 지금도 작동한다. 제염 건물을 보면 ‘하얀 황금’을

만들기 위해 제염 노동자들이 감수해야 했던 고된 노역을 짐작할 수 있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 살랭레뱅과 아르케스낭 제염소는 연대기적 시간의 틀 면에서 뛰어난 보편적 가치를 보여준다.

살랭레뱅의 제염 작업은 분명히 중세 시대부터 시작하여 20세기까지 행해졌으나

훨씬 일찍 선사시대부터 작업이 이뤄졌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광천은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두 제염소는 살랭레뱅과 아르케스낭에서 행해지는 독특한 소금 생산 방식으로 인해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다.

즉 지하 깊숙이 구멍을 파서 소금의 원료를 끌어올리는 기술을 사용하며, 불을 사용해 소금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만들었다. 또한 18세기에는 두 제염소 사이로 소금물을 이동시키는 21㎞의 혁신적인 송수관을 건설하기도 했다. 

아르케스낭 왕립 제염소의 빼어난 건축술 외에, 계몽주의 시대의 사상 운동에 동참했던 정신적 측면에서도 두 제염소는

큰 가치를 보여 준다. ‘모범 공장[model factory]’이라는 꿈같은 건축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정신의 영향이다. 아르케스낭 왕립 제염소는 클로드 니콜라 르두처럼 프랑슈콩테 주와 로렌 주에서 온 건축 감독관이

건립했으며, 이들은 살랭레뱅 대제염소를 현대적이고 이상주의적으로 발전시켰다. 완전성과 진정성: 살랭레뱅의 산업적·기술적 완전성에 관한 한 그것을 둘러싼 고대 도시의 영향 없이 보존되어 있다. 송수관 시설과 소금물 처리 기구[화로]는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다. 나머지 지상의 건물들은 어떠한 변형도 없이 복원되어 왔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모습이 변하면서 중세 시대에 만들어진 부분만 남아 있고, 생산 공장 단지와 마을, 주위의 영역 사이의 관계를 감독하는 체제는 완전성을 온전히 지켜 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문 하나만 우뚝 서 있을 뿐 주위 벽이 거의 대부분 무너져서 제염소들과

도시 건물 사이에 구분이 없어졌다. 또한 유적의 한가운데에 현대적 건물의 새로운 카지노가 들어서는 바람에 대제염소

유적의 완전성이 훼손되고 있다. 보존 및 관리 체계: 유적의 관리 체제는 적당하다. 공동 관리 사업국과 관리 계획 보증의 실행되면서 최근 제도화되었다. 

 

등재 기준: 기준 (ⅰ) : 아르케스낭 왕립 제염소는 작업장으로서 뛰어난 규모와 기준을 갖춘 최초의 건축 단지이다. 

아르케스낭 왕립 제염소는 왕궁이나 중요한 종교적 건물에 버금가는 수준 높은 건축물로 완성하기 위해 많은 관심과

정성을 쏟아 건축한 최초의 공장이다. 또 유례를 찾기 힘든 꿈같은 건축 가운데 하나이다. 두 제염소는 클로드 니콜라 르두가 창안한 공장을 둘러싼 이상적인 도시[Ideal City] 한복판에 있었다. 두 제염소의 이상적인 건축물은 완성되지 못했지만 그 선구적인 정신은 지금도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준 (ⅱ) : 아르케스낭 왕립 제염소는 18세기 말에 나타난 유럽 문화의 근본적 변화를 보여주는 산 증거이다. 즉 산업사회의 탄생이 그것이다. 왕립 제염소는 계몽주의 시대에 유럽을 휩쓴 모든 철학적 흐름을 완벽하게 반영할 뿐 아니라 반세기 후에 발달하게 되는 산업 건축의 도래를 예고해 주었다. 

기준 (ⅳ) : 살랭레벵 대제염소와 아르케스낭 왕립 제염소는 적어도 중세 이후 20세기까지 지하 염정(鹽井)에서 소금물을 끌어올려 소금을 추출, 생산하고 소금을 만드는 데 불을 사용함으로써 전체적으로 뛰어난 기술을 자랑한다. 오늘날의 제염소는 제염에 적합한 소금물 채취에서 제염 작업에 이르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아주 뛰어난 시설로서 연간 5만 명

가까운 관광객이 찾아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