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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프랑스 -6) 아를의 로마시대 기념물

세계문화유산(234)/ 프랑스

아를의 로마시대 기념물(Arles, Roman and Romanesque Monuments; 1981)

 

아를(Arles)은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주[Region of Provence-Alpes-Cote-d’Azur]

부슈뒤론 현[Department of Bouches-du-Rhone]에 위치하며, 고대 도시가 중세 유럽 문명에

적응한 좋은 본보기이다.

 

아를에는 로마 시대의 인상적인 기념물들이 있다.

그 중 가장 오래된 로마 시대의 원형 극장과 지하 회랑[cryptoporticus]은 기원전 1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를은 콘스탄티누스 1세가 만든 목욕탕과 알리스캉(Alyscamps) 공동묘지에서 보듯이 4세기에 두 번째 황금시대를 맞았다. 11세기와 12세기에 아를은 다시 한 번 지중해에서 가장 매력적인 명소로 명성을 얻었다. 도시 성벽 안에 세운 생 트로핌 대성당은 프로방스 지방의 중요 로마네스크 양식의 기념물로

회랑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탈리아의 베로나처럼 아를은 고전적인 도시에 중세 유럽 문명을 적용한 대표적인 예라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마을은 기원전 7세기에 포카이아인들[Phoceans]이 아렐라테(Arelate)라는 이름으로 건설되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치하에서는 경쟁 도시인 마르세유가 쇠퇴하면서 아를이 번창했다. 아를에는 기원전 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가장 오래된 아레나 극장, 원형 경기장, 지하 회랑 등 인상적인 로마시대 기념물이 남아 있다. 4세기 동안 아를은 정치적・종교적으로 수도가 되었다. 이 두 번째 황금시대의 증거물로 콘스탄티누스 1세의 목욕탕과 알리스캉 공동묘지의 뛰어난 대리석 석관을 들 수 있다. 하지만 480년 아를은 야만인들에게 점령당했다. 이후 아를은 점점 쇠퇴했다. 아를은 9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독립 왕국을 창건하면서 수도의 지위를 되찾았다. 이어서 로마 제국의 속령으로 지위가 격상되었고, 프로방스 지역을 점령하면서 중세시대 동안 지중해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도시가 되었다. 여러 나라에서 찾아온 여행자들이 기념물들을 보며 찬탄했다. 로마 극장은 기원전 1세기 말에 세워졌다. 카베아(cavea; 반원형 계단식 관람석)는 33열에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무대 뒤에 있는 웅장한 높은 벽은 원주와 조각상으로 장식되어 있다. 원주 2개와 수많은 조각상은 아를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5세기부터 로마 극장에 주택과 교회가 들어섰다가 1834년 철거되었다. 그때 값비싼 대리석으로 바닥을 포장한 반원형 귀빈석 부분과 막을 올리고 내리는 데 쓰는 기계가 있던 부분, 좌석 일부, 중세 시대에 롤랑의 탑[Tower of Roland]에 보전되어 있던 외벽 일부를 복원했다. 기원후 90년에 세워진 원형 경기장은 관객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매우 큰 경기장이다. 이곳에서는 5세기 말까지 검투사들의 대결이나 맹수와 사람의 싸움 등을 오락거리로 제공했다. 중세시대에 원형 경기장은 벽체 안에 예배당 2개와 주택 212채를 지어 요새로 사용했다. 이 건물들은 1825년에 철거되었다. 지하 회랑의 지하 통로는 로마 광장[포룸]의 토대로 사용했다. 포룸은 로마 도시의 정치적・상업적・종교적 중심이 되었다. 기원전 30년 언덕 옆에 세웠으며 지하 회랑을 짓기 위해 엄청난 양의 흙을 채워 땅을 고르는 작업을 했다. U자 모양의 지하 회랑은 원통형의 아치 천장으로 덮인 이중 복도 3개로 이루어져 있다. 지하 회랑은 오른쪽 귀퉁이에서 둘로 갈라지며 삼중심 아치들을 떠받치는 거대한 원주들로 구분되어 있다. 로마 제국이 멸망할 무렵 상점들이 바깥쪽에 들어섰다. 로마시대에 아를은 뒤에 알리스캉으로 알려진 아우렐리아 가도를 따라 조성된 묘지를 비롯한 여러 묘지에 둘러싸였다. 이곳은 기독교 순교자 성 제네스트와 아를의 첫 번째 주교가 안장되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1040년 생 오노라(Saint-Honorat) 소수도원이 된 뒤 에스파냐의 산티아고로 가는 성지순례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순례지가 되었다. 오늘날 수많은 석관이 나란히 늘어선 작은 길을 따라가면 그 끝에 생 오노라 성당이 나온다. 이곳은 반 고흐와 고갱의 그림에도 나온다. 생 오노라 교회는 12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다시 세워졌다. 교회 꼭대기에는 로마 원형 경기장의 건축술에 영향을 받은 팔각형 채광창이 빛을 발하고 있다. 생 트로핌 대성당과 그 회랑은 고대 예술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로마네스크 양식을 훌륭하게 구현했다. 론 강변에 있는 콘스탄티누스 1세의 목욕탕은 4세기에 부속 건물 몇 동을 포함한 복합 단지로 세워졌다. 오늘날에도 한증막・욕조는 물론 속이 빈 벽돌[tubuli]을 통해 벽돌마루 밑 온돌[hypocausts]과 벽 사이로 뜨거운 공기를 순환시키는 환기 장치를 볼 수 있다. 벽돌과 작게 만든 석회 블록을 한 줄씩 번갈아 쌓아올린 벽은 반원형 애프스(apse) 주위에 세워졌다. 높은 아치형 창문 3개로 빛이 들어오는 애프스는 거대한 사각형 아치 천장으로 덮여 있다. 남쪽에는 온탕, 냉탕, 체육관[palaestra]이 배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