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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강원 여행

(철원) 국보 제63호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到彼岸寺 鐵造毘盧遮那佛坐像)

 

언제 : 2022년 8월 27일 토요일

어디 : 강원도 철원군 동승읍 도피동길(관우리)

 

 

2010년 10월

도피안사를 처음 방문한 후, 12년 만에 다시 도피안사를 방문했다.

 

2002년 10월 24일 

3층 석탑의 정면 상단 중앙의 기둥과 탑 사이의 금와보살(金蛙菩薩 - 개구리)이 방송에 방영되기도 해

한때는 많은 사람이 찾곤 했는데,

오늘은 내가 머문 약 1시간동안 부부로 보이는 두 팀이 찾아오는 이제는

아주 한적한 절이다. 

 

도피안사(到彼岸寺)는 철원군 동송읍 관우리에 있는 절로

신라 경문왕 5년(865) 도선국사가 높이 91cm의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을 제조,

철원읍 율리리에 소재한 안양사에 봉안하기 위하여 가다가 잠시 쉬고 있을 때 불상이 갑자기 없어져

그 부근 일대를 찾다가 현위치에 그 불상이 안좌한 자세로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암자를 짓고 이 불상을 모셨다 한다.

 

당시 철조불상이 영원한 안식처인 피안에 이르렀다 하여

절 이름이 도피안사로 명명되었으며

절 내에는 도선국사가 제조한 국보 제63호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보물 제223호로 지정된 높이 4.1m의

화강암 재료로 된 삼층석탑이 보존되어 있다.

 

- 철원 평야에 벼가 익어가고 있다.-

 

 

- 대교천 건너면 멀리 일주문이 보인다 -

 

 

일주문

화개산도피안사

 

 

 

 

 

 

 

 

 

 

 

- 사천왕문 -

 

 

- 해탈문 -

 

 

 

 

 

- 대적광전과 삼층석탑-

 

철원 도피안사 삼층석탑 

보물 제223호. 높이 410cm

 

2층 기단에 3층의 탑신으로 구성되어 있는 일반적인 형식의 석탑이나 기단부나 옥개받침 등 세부 표현에서

특이한 양식을 보여준다.

높은 방형의 지대석 위에 8 각형 기단이 놓여 있는데 하층 기단의 각 면에는 안상이 조각되었고 그위에는 갑석이 있다.

상층기단은 복련이 조각된 8각 연화대좌가 받치고 있고 8각의 면석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그위에는 앙련을 표현한 상대석을 얹은 것이 특징이다.

또한 상대석 위에 높은 3단의 굄을 두어 탑신부를 받치게 한 것은 9세기경 통일신라 말에 건립된

석탑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형식이다.

 

탑신은 기단부와는 다르게 정 4 각형으로 구성되었고 옥신과 옥개는 각기 다른 1개의 돌로 되어 있다.

각 층의 옥신석에는 양쪽에 우주가 새겨져 있고 옥개 받침은 다른 석탑과 같이 각형이 아니고 반원형이며 그 수도

1층이  4단, 2·3층은 3단으로 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상륜부는 파괴되어 현재 노반만 남아 있다.

 

전체적인 비례로 볼 때 탑신에 비하여 기단부의 폭이 좁고 긴 편이어서 다소 불안정한 느낌을 주나

불상 대좌와 같은 8각 연화대좌의 기단부와 옥개 받침에 3단·4단이 혼재하는 특이한 양식은 새로운 요소로서 시대에 따라 장식화되어가는 석탑의 한 경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 석탑은 양식적 특징으로 보아

이 절의 법당에 있는 865년경의 철조비로자나불상과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다음 백과 참조 -

 

 

 

 

- 대적광전 -

 

 

스님이 예불 중이라 기다렸다가

예불이 끝난 후 스님께 사진을 담아도 좋으냐 물은 뒤 국보 제63호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을

사진에 담았다.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국보 제63호로, 높이 91cm. 이 불상은 등 뒷면에 새겨진 명문에 의하면

865년에 신도 1,500명이 결연하여 이 상을 조성하고 철원군의 도피안사에 모셨다고 한다. 현재 광배는 없지만

불신과 대좌가 모두 철로 주조된 특이한 예이며 불상의 일부에는 호분을 칠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머리 위에는 육계(肉髻)의 표현이 뚜렷하지 않으며

약간 갸름한 형태의 얼굴에 눈·코·입 등이 조그마하게 처리되고 은근한 미소까지 띠고 있어

이상적인 부처의 얼굴이라기보다는 평범한 사람의 모습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어깨·가슴·팔·다리 등의 세부 표현에서도

통일신라 전성기 불상에 보이던 양감이나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입체감 없이 밋밋하게 처리되었다.

통견의 법의는 타원형으로 길게 늘어져 가슴이 많이 드러나 있으나 내의를 걸치지 않았으며

옷 주름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평행으로 흘러내리면서 도식적인 여러 층의 단을 이루고 있다.

 

가슴 앞의 두 손은 지권인(智拳印)을 취하고 있으며 불신에 비해 손이 유달리 작은 편이다.

대좌는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한 전형적인 8각 연화좌로서 귀꽃이 있는 하대의 복련석(覆蓮石) 위에 8각 중석을 얹고

다시 단판의 앙련석(仰蓮石)을 올려놓았다.

이 불상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859), 축서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867)과 함께

통일신라 말의 대표적인 비로자나불상 중 하나로, 새로운 양식적 요소를 보여주는 중요한 상이다.

 

또한 이 상이 1,500여 명에 달하는 일반 신도들의 발원에 의하여 조성되었다는 사실은

9세기 이후에 신라불교가 지방으로 확산되면서 대중화되는 신앙 형태의 한 양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 다음 백과 참조 -

 

 

 

 

 지나치려다가 문살무늬와 장식품들이 아름다워 담아 보았다.

 

 

 

 

- 천불전 -

 

 

- 삼성각 -

 

 

- 설법전 -

 

 

- 종각 -

 

 

- 샘물 -

 

 

- 무설전 -

 

 

 

 

 

 

 

 

 

 

 

 

 

일주문에서 건너다 본 맞은편 산 아래 철원 향교가 있다.

- 철원 향교 -

12년 만에 다시 찾은 도피안사는 정말 조그만 절이다.

그러나

큰 절의 암자보다 더 작을 수 있는 절이지만, 국보 1점과 보물 1점을 보유한 아주 귀한 절이다.

해방 이후 

이곳은 공산 치하에 있다가 6.25 이후 민통선 이북으로 민간인 출입이 금지되었다가

이제는 민간인 출입이 자유로운 곳으로,

가까이 백마고지, 철원 노동당사, 철원 역사문화공원, 소이산 전망대, 철원 향교가 있으며

특히 큰 절에서도 국보를 보유하지 못한 절이 많은데 이곳은 국보 1점과 보물 1점을 보유하고 있으니

자녀들과 함께 가족 여행지로 좋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