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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전북 여행

(전주) 전주 한옥 마을 : 풍남문과 전동 성당

- 풍남문 -

 

2022년 7월 29일 금요일

어디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44

 

 

일이 잘 풀린 것일까?

아니면 꼬인 것일까?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반도 내변산 트레킹을 목적으로 용산에서 KTX를 타고 정읍역 내리니

09:20

버스터미널까지 걷는데 제법 따갑다.

 

부안은 기차가 다니지 않기에 김제에서 버스 타고 부안 가는 것이 맞지만,

KTX가 서지 않아 정읍을 택했던 것인데,

정읍에서 부안가는 버스가 14:30  - 내소사 가는 버스는 12:30  

아무리 지방이지만,

정읍 바로 옆 부안 가는 버스가 이렇게 없다니 - 전주 가면 부안행 버스가 자주 있단다.

걸어서 갈 수 없으니

전주행 버스를 타고 가면서

 2021년 2월 4일 전주 한옥마을 전동성당이 공사 중이어서 - 지금은 공사 완료되었으리라 생각하며

한옥마을 여행으로 대체키로 했다.

 

11:00

전동성당 정류소에 내리니 햇볕은 쨍쨍

전동성당에는 고가사다리차가 마당에 서 있고 아직도 공사 중이며 출입 금지네.

 

 

풍남문(豊南門 : 보물 제308호

1층은 앞면 3칸, 옆면 3칸이고, 2층은 앞면 3칸, 옆면 1칸으로, 지붕은 겹처마를 둔 팔작지붕이다.

전주부성(全州府城)의 4대 문 가운데 남문(南門)으로,

1734년(영조 10)에 전주부성을 크게 고쳐 쌓은 전라도 관찰사 조현명(趙顯命, 1690∼1752)의 기록에 의하면,

전주부성은 고려 말에 최유경(崔有慶, 1343∼1413)이 쌓았는데, 1734년에 고쳐 쌓을 때,

남문에는 2층 문루(門樓)를 세워 명견루(明見樓)라 부르고,

동·서·북문은 단층으로 건립하고서 각각 판동문(判東門)·상서문(相西門)·중차문(中車門)이라는 편액을 걸었다고 한다.

 

1767년(영조 43)에 큰 화재가 일어나 남문과 서문이 모두 불타버렸는데,

9월에 부임한 전라도관찰사 홍낙인(洪樂仁, 1729∼1777)이 새로 건립하고는 풍남문과 패서문이라고 이름지었다.

당시 홍낙인은 한나라 고조의 향리(鄕里) 이름인 ‘풍패(豊沛)’를 따서 풍남문이라고 지었다고 풍남문 상량문(上樑文)에

기록되어 있다. 원래 풍남문 좌우에는 포루(砲樓)와 종각(鐘閣)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1978년에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1982년에 옹성(甕城)과 함께 복원하였다.

 

문루 2층의 남쪽면에는 ‘풍남문’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고,

북쪽면에는 ‘호남제일성(湖南第一城)’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풍남문’ 글씨는 1842년(헌종 8)에

전라도관찰사 서기순(徐箕淳, 1791∼1854)이 쓴 것이라고 전한다.

 

- 호남제일성 -

 

 

- 호남제일성 -

 

 

 

 

 

전동 성당

사적 제288호

전주에 세워진 가장 오래된 성당이자, 호남 전체에서 최초로 세워진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이다.

전동성당이 위치한 자리는 풍남문의 밖으로

1791년 신해박해 때 한국 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1759-1791)을 비롯하여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교수형을 당한 등 호남 지역의 많은 가톨릭 신자가 순교한 자리였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기독교 신앙이 허용되면서 개항지가 아니었던 전주시에도 선교사가 들어왔으며,

1891년에는 전주 성당 (현재의 전동성당) 주임인 보두네 신부가 현재의 위치에 있었던 민가를

사들여 임시 본당으로 삼았다.

 

본당이 처음 생겼을 때에 전주읍성 주변에 신자는 거의 없었고,

주로 산골인 대승리, 고산 되재, 천호동, 배재 등지에 신자가 밀집해 있었으나,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나는 등

여러 사건이 일어나면서 신자의 수가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기존의 성당보다 더 큰 성당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후 1908년 명동성당의 내부를 건축한 프와넬 신부의 설계로 성당이 착공되었다.

 

성당은 1914년에 비로소 외관 공사가 끝났으며, 이후로도 계속 공사가 진행되어 1931년에 완공되었고,

그 해 6월 18일 대구 대목구의 드망즈 교구장을 주례로 하여 축성식을 가졌다.

 1981년 사적 제 288호로 지정되었다.

 

 

 

 

- 2021년 1월 13일 전동 성당 -

 

 

- 2013년 8월 3일 전동 성당 -

 

 

- 2013년 8월 3일 전동 성당 -

 

 

- 2013년 8월 3일 전동 성당 -

 

 

- 2013년 8월 3일 전동 성당 -

 

 

- 2013년 8월 3일 사제관 -

 

 

- 경기전 부속 건물에서 본 전동 성당 -

 

 

 

조선왕조실록의 표지, 크기가 다른 이유

 

조선 전기에 제작된 실록은 모두 감색 비단을 이용하여 표지를 제작하였으며,

크기는 왕대 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가장 큰 크기는 중종실록이다. 현존하는 실록을 보면 동일한 크기인데

표지의 재질이 다른 것은 조선 후기에 표지만 다시 제작해 묶었기 때문이며,

내지는 조선 전기의 전주사고본 실록이다.

 

 

 

 

 

 

 

 

 

 

 

 

 

 

 

예종(睿宗, 1450년 1월 14일(음력 1월 1일) ~ 1469년 12월 31일(음력 11월 28일),

재위 1468년 ~ 1469년)은 조선의 제8대 국왕으로, 본명은 (晄), 본관은 전주는 명조(明照) 또는 평남(平南).

묘호는 예종이며 시호는 양도흠 문성 무의 인소 효대 왕(睿宗襄悼欽文聖武懿仁昭孝大王)이다. 

세조와 정희왕후의 둘째 아들이다. 1468년에 즉위했으나 1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