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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조지아 -3) 어퍼 스바네티(Upper Svaneti; 1996)

세계문화유산(192)/ 조지아

어퍼 스바네티(Upper Svaneti; 1996)

 

 

 

 

 

 

 

 

 

 

 

 

 

 

 

 

 

 

 

 

 

 

 

 

 

 

 

 

 

 

 

 

 

 

 

 

 

 

 

 

 

 

 

 

 

 

 

 

 

 

 

 

 

 

 

 

 

 

 

 

 

 

 

 

 

 

 

 

 

 

 

 

 

 

 

 

 

 

 

 

 

 

 

 

 

 

 

 

 

 

 

 

 

 

 

어퍼 스바네티

조지아의 사메그렐로-제모 스바네티 주[Region of Samegrelo-Zemo Svateni], 메스티아 지역[Mestia district],

차자시 마을[Village of Chajashi]에 위치한다. 캅카스 지역에서 오랜 기간 고립 상태로 보존되어 온 

어퍼 스바네티는 유려한 산악 풍경을 배경으로 중세 시대의 마을과 탑형(塔形) 주택들이 들어선 곳이다.

 

차자시 마을에는 이러한 독특한 형태의 주택들이 아직도 200개 이상 있다.

독특한 형태의 건축물과 마을을 통해, 이곳이 거주지인 동시에 당시 침략자를 막기 위한 방어 기지로서

기능했음을 알 수 있다.

어퍼 스바네티는 건축 당시의 중세적 외관을 훌륭하게 간직한 탁월한 경관의 장소이다.

특히 어퍼 스바네티의 거주지 분포, 거주지의 형태, 건축 양식은 주목할 만하다.

스바네티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스트라보(strabo; 기원전 66~기원후 24)의 저작에서 처음 언급되지만

그 전에 이미 수 세대에 걸쳐 사람들이 스바네티에 거주하면서 수준 높은 문화를 이룩하였다.

 

4세기에 스바네티는 라지카(Lazika) 왕국의 속국이 되었다.

라지카 왕국이 523년 기독교국이 되었을 때 스파네티 사람들도 기독교인이 되었으나

이교도적인 신앙과 의식은 아직 남아 있었다. 8세기에는 압하스(Abkhaz) 왕국이 서부 조지아에서 정착했으며,

쿠타이시(Kutaissi)를 수도로 정했다. 후에 건설자 다비드 왕(David the Builder; 재위 1089~1125)은

통일 조지아 왕국을 이룩하고 압하스 왕국을 흡수하였다. 이로써 서부 조지아 지역은 더욱 강력해졌다.

스바네티 독립을 주장하는 강력한 움직임이 일어났을 때,

이 지역의 제후들은 대체로 조지아 왕국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였지만 이는 조지아 왕국의 정치적・

경제적 발전에 지장을 주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왕국은 이후 수 세기에 걸쳐

게오르게 2세(George II)와 그의 딸인 타마르(Tamar) 여왕의 통치 하에서

영토를 흑해와 카스피 해 사이의 지역까지 넓히면서 정치적・경제적 성장을 계속하였다.

당시는 문화적 전성기를 꽃피운 때이기도 하다. 그 중심지의 하나였던 스바네티는 금속 세공, 그림, 목각,

건축을 가르치는 학교들이 있어 유명하였다. 당시 영향력 있고 부유한 교회는 스바네티 사람들의 재능을 활용하였으며, 

어퍼 스바네티에 있는 대부분의 성당 건물들은 이 시대에 지어진 것이다.

 

스바네티는 몽골의 무자비한 침입에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점점 고립되어 갔으며,

그 결과 15~18세기에 경제와 문화는 쇠퇴하게 되었다. 결국 15세기에 스바네티 지방의 일부 지역은

다데시켈리아니(Dadeshkeliani) 가(家)의 공작부인에 의해 지배받게 되었는데 어퍼 스바네티 사람들은

인구리(Inguri) 강 상류 내륙에 자리를 잡고 메스티아(Mestia)를 수도로 정하였다.

 

이러한 독립 기간은 19세기에 러시아에 합병되면서 끝이 났다.

산악 지역인 어퍼 스바네티는 캅카스 산맥과 스바네티 산맥 사이의 인구리 강 상류 분지에 있다. 

어퍼 스바네티의 경관은 눈 덮인 산들을 배경으로 산골짜기와 고산(高山) 계곡에 둘러싸여 있으며

산비탈에 교회 탑이 수두룩한 작은 마을의 전경이 펼쳐진다. 마을의 구조에서 가장 눈에 띠는 것은 수많은 탑이다.

수도인 메스티아나 위시굴리(Ushguli)와 라탈리(Latali) 같은 주변 마을에 특히 탑이 많다.

탑들은 대개 3~5층 높이인데 벽의 두께가 위로 갈수록 얇아져서 끝이 뾰족하고 날렵해 보인다.

탑의 주택 부분은 대개 2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은 인간과 가축의 거처로 구성된 단일한 홀의 형태를 띤다.

나무칸막이로 인간과 가축의 거주를 분리하였는데 이 칸막이는 대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딸려 있는 복도는 건물의 단열을 돕도록 되어 있었다. 2층은 여름철에 사람들이 지내는 장소인 동시에 가축 사료나

연장을 파는 가게로도 쓰였다. 2층에는 탑으로 이어지는 문이 달려 있었는데 이는 입구를 방어하는 복도와도

연결되어 있었다. 이러한 탑형 주택들의 많은 부분은 이미 사라졌거나 퇴락하는 중이다.

 

그러나 박물관 유적지로 보존된 차자시 마을에는 200개가 넘는 탑과 400개가 넘는 주택이 아직까지 있다.

차자시 마을은 검은 강(Black river)과 인구리 강의 합류점에 있으며 지리적으로 방어에 유리한 곳이다.

마을은 위아래로 각각 2개의 성들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었다. 아래쪽 성에는 라시크다시(Lashkdash)라는 이름의

작은 성당이 있으며, 인근의 산 위에는 중세의 벽화가 보존되어 있는 마츠크바(Matskhvar)라는 교회가 있다.

마을의 주택들은 크기가 제각각인 돌들로 만들어졌는데 이따금 석회반죽으로 접착된 점판암이 사용되기도 했다. 

 

어퍼 스바네티의 성당들은 대개 크기가 작고,

외관에 조각 장식도 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성당의 내부는 벽화, 조각이 새겨진 문, 행렬용과 제대용 십자가,

채색된 필사본 등이 풍부하여 주목할 만하다. 성당들은 9~17세기에 지어졌으며, 그 정점은 10~12세기였다.

뛰어난 자연적 조건 및 건축물과 경관의 조화는 이 지역에 독특하고 고유한 가치를 부여했다.

이 지역의 풍부한 기념물들과 예술품들[금속 세공, 필사본 일러스트, 직물, 자수, 목각, 채색 아이콘(icon painting),

고대의 민요 및 구전 민담, 토속 건축 양식]은 조지아와 캅카스 지역 연구에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된다.

또한 스바네티의 기념비적 벽화는 조지아 및 동부 기독교 미술의 기원과

발전을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