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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터키-1) 궤레메 국립공원과 카파도키아 바위 유적

세계복합유산(193)/ 터키

 

궤레메 국립공원과 카파도키아 바위 유적

(Göreme National Park and the Rock Sites of Cappadocia; 1985)

 

 

 

 

 

 

 

 

 

 

 

 

 

 

 

 

 

 

 

 

 

 

 

 

 

 

 

 

 

 

 

 

 

 

 

 

 

 

 

 

 

 

 

 

 

 

 

 

 

 

 

 

 

 

 

 

 

 

 

 

 

 

 

 

 

 

 

 

 

 

 

 

 

 

 

 

 

 

 

 

 

 

 

 

 

 

 

 

 

 

 

 

 

 

 

궤레메 국립공원과 카파도키아 바위 유적

터키의 중부 아나톨리아 네브셰히르 지방[Nevehir Province in Central Anatolia] 일명 카파도키아(Cappadocia)에

위치한다. 침식 작용으로 형성된 장관을 자랑하는 궤레메 계곡과 주변 지역에 있는 바위를 깎아 만든

성소(聖所)들은 성상 파괴 운동(聖像破壞運動) 이후 시대[post-Iconoclastic period]

비잔틴 미술의 독특한 흔적을 보여 준다.

아울러 4세기에 만들어진 전통 거주지의 흔적인 가옥과 혈거(穴居) 마을, 지하 도시 등을 볼 수 있다.

 

카파도키아의 암각(巖刻) 성소들은

멋진 자연 지형들로 이루어진 지역 안에서 독특한 예술적 성과를 이루며, 성상 파괴 운동 이후 시대

비잔틴 미술의 전무후무한 흔적을 보여 주고 있다. 거주지와 마을 수도원, 교회 등은 비잔틴 제국에 속했던

이 지방의 옛 모습을 당시(4세기~터키 침략)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궤레메 계곡의 침식(浸蝕) 고원에는 화산성 응회암 퇴적물이 바람과 물에 의해 각 부분별로 다르게 침식되어

형성된 장관이 펼쳐져 있다. 이곳의 특징적인 구조물로는 40m 높이의 기념비와 기둥, 탑, 오벨리스크(obelisk),

첩탑 모양 건물 등이 있다.

 

침식으로 만들어진 아크다(Akda; 1,325m)는 계곡의 가장 웅장한 구조물이자 주요 유물이다.

근처의 에르지야스(Erciyas) 산은 여전히 간헐적인 소규모 화산 분출을 일으키면서 지구의 진화 역사를 보여 주는

활화산의 훌륭한 사례이다. 4세기에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바위로 형성된 자연 환경 속에 동굴들을 깎아 만듦으로써

피난처와 거주지, 저장소, 종교 장소 등을 마련했다.

주변에는 작은 시골 마을들이 여기저기 들어선 농촌이 펼쳐져 있다.

이 유산의 역사적 환경과 바위를 깎아 만든 교회, 독특한 침식 지형 등은 문화적・자연적으로 진귀한 경관을 이룬다.

건축 양식은 이 지역의 석재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수세기 동안 궤레메 계곡에는 변화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이곳은 인간에 의해 광범위하게 사용되면서 변화를 겪었음에도 자연 지형들이 그 고유한 가치들을 잃지 않고

조화롭게 유지되고 있다. 지진 때문에 기둥과 원기둥이 일부 손상되기도 했지만

이는 불가항력적인 자연 현상이었다. 폐허와도 같은 카파도키아 고원의 응회암은 자연적인 침식 현상으로 인해

탑, 첨탑, 돔, 피라미드 등을 닮은 기묘한 모습으로 깎이게 되었다. 여기에 인간은 생활공간, 교회, 지하 도시 등을

추가함으로써 세계 최대 규모의 혈거(穴居) 거주 복합 단지를 형성했다.

 

이곳은 지질학적・인류학적 관점에서 재미있는 자연 암각 유적지이지만

전무후무한 기독교 성소들의 장식적인 아름다움으로 인해 더욱 훌륭한 유산이 되었다. 그러한 성소들을 통해

카파도키아는 성상 파괴 운동 이후 시대의 비잔틴 미술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장소가 되었다.

카파도키아 최초의 수도 활동의 흔적은

카이사레아(Caesarea=Kayseri)에서 성 대바실리오(Basil the Great=Saint Basil the Great; 330~379)의 지도를 따르던

조그만 은둔형 공동체들이 바위를 파서 만든 공간에 거주하기 시작한 4세기 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그들은 아랍 인의 약탈에 대항하기 위해서

카이마클리(Kaymakli)와 데린쿠유(Derinkuyu) 같은 혈거 마을이나 지하 도시로 피신해 살게 되었다.

여러 성소들에서 장식을 위한 상징물들[대부분 조각되거나 템페라 화법으로 그려진 십자가]의 수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카파도키아의 금욕적인 수도 생활[monaticism]은 성상 파괴 운동 시기(725~842)에

이미 잘 확립되어 있었다.

 

그러나 842년 이후

카파도키아에 형성된 많은 암각 교회들은 밝게 색칠된 구상화(具象畵)들로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이러한 교회들 중에서 궤레메 계곡에 남아 있는 것으로는 토칼리(Tokali) 교회, 엘 나자르(El Nazar) 교회(10세기),

바르바라(Barbara) 교회, 사클리(Sakli) 교회(11세기), 엘말리(Elmali) 교회,

카란리크(Karanlik) 교회(12세기 말과 13세기 초)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