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180)/ 카자흐스탄
코자 아흐메드 야사위의 영묘(Mausoleum of Khoja Ahmed Yasawi; 2003)
사우스카자흐스탄 주[South Kazakhstan Oblast] 투르케스탄 시[City of Turkestan; 옛 야시(Yasi)]에 있는
코자 아흐메드 야사위의 영묘는 티무르(Timur)의 시대인 1389~1405년에 건축된 것이다.
일부 미완성으로 남은 이 건축물에 페르시아의 건축 대가들이 사용했던 실험적인 건축적·구조적 공법은
훗날 티무르 제국의 수도 사마르칸트(Samarkand)의 건설에도 적용되었다.
이 영묘는 티무르 시대의 건축물들 중 규모가 가장 크고 보존이 잘 되어 있다.
코자 아흐메드 야사위의 영묘와
그것이 세워진 터는 중앙아시아 지역 문화와 그 건축 기술 발달을 훌륭하게 보여 준다.
영묘는 티무르 시대 주요 건축 발달의 원형으로서
그 시대의 건축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참고물이 되었으며, 이슬람교 건축 발달에 크게 기여하였다.
과거에 ‘야시’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던 투르케스탄 시는 중세 초기로 그 기원이 거슬러 올라간다.
이 도시는 농경 문화와 유목 문화의 교차점이었던 시르 다리아(Syr Daria) 유역 ‘샤브가르(Shavgar)’의 교외에 있었다.
샤브가르는 거대한 수공예·교역 중심지로 발달하였으나 12세기부터 야시가 그보다 큰 중요성을 얻게 되었다.
아흐메드 야사위의 무덤으로 향했던 순례 행렬은 야시의 발달에 기여한 여러 요인들 중 하나였다.
1370년대에 중앙아시아의 새로운 지배자가 된 티무르(1336~1405)는
메소포타미아, 이란, 트란스옥시아나(Transoxiana)를 아울러 통치했다. 티무르 제국의 수도는 사마르칸트였다.
티무르는 북쪽 국경에서 도시들이 중요 전초 기지로 쓰이던 시르 다리아 같은 지역에 기념비적 공공 건축물과
모스크, 영묘, 그리고 이슬람 고등교육 시설인 마드라사(Madrasa) 등의 종교 문화적 건축물을
정책적으로 건설하였는데 아흐메드 야사위의 영묘도 그러한 건축물 가운데 하나였다.
티무르가 영묘를 건축한 것은 이슬람교를 전파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으나
거기에는 더욱 구체적인 정치적 목적들이 있었다. 12세기의 저명한 수피(Sufi) 지도자였던 코자 아흐메드 야사위의
영묘는 사우스카자흐스탄 투르케스탄 시에 있다. 영묘는 오늘날 고고학적 유적으로 개방되어 있는 옛 도시 북동쪽,
한때 요새가 있었던 지점에 세워져 있다. 남쪽에는 자연보호 지역이 있으며,
다른 방향에서는 현대 도시인 투르케스탄 시가 영묘를 둘러싸고 있다. 이 유산의 범위는 아흐메드 야사위의 영묘에
한정되며, 옛 도시의 고고학적 지역은 완충 지역에 포함된다.
영묘의 건설은 1389~1399년에 시작되어 티무르가 사망한 1405년까지 이어졌다.
미완성인 채 남은 영묘의 입구 및 일부 실내 건축은 당시의 건축 방식에 대한 물리적 흔적을 보여 준다.
16세기에는 영묘의 정문이 수리 및 재건축되었으며, 부하라(Bukhara)의 통치자였던 압둘라 칸(Abdullah Khan)은
문의 아치를 수리하도록 하였다. 그로부터 19세기까지 투르케스탄은 카자흐(Kazakh) 칸들의 거주지가 되었다.
19세기에 코칸드(Kokand) 칸이 영묘를 요새화하면서 그 주위에 진흙 벽돌로 방어벽을 설치하였다.
영묘는 티무르 시대의 최대 건축물들 중 하나이며, 그 부근에는 저명한 이들의 영묘, 작은 모스크,
중세의 목욕탕 등 다른 건축물들도 있다. 영묘의 북쪽에는 옛 요새의 벽이 재건축되어 있어서
오늘날의 도시와 영묘를 구분하고 있다. 영묘는 점토가 섞인 석고 반죽으로 접착된 구운 벽돌로 만들어져 있다.
그 기반은 원래 점토층으로 되어 있었으나 최근에 콘크리트로 재건축되었다.
남동쪽의 주요 출입구는 이완(iwan; 출입구의 아치형 공간)을 통과하여 ‘카잔디크(Kazandyk)’라는 정사각형의
거대한 홀로 이어진다. 카잔디크를 덮고 있는 원뿔형 천장은 지름 18.2m로 이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홀의 중앙에는 1399년에 만들어져 제식에 사용되었던 청동 가마솥 ‘카잔(kazan)’이 있다.
가장 중요한 공간인 코자 아흐메드 야사위의 무덤은 영묘의 북서쪽 끝 중앙 축에 있다.
공간 중앙에는 석관이 놓여 있다. 영묘에는 회의실, 식당[Ash khana], 도서관[Kitab khana], 모스크 등
기능적으로 다양한 공간들이 있다. 이 중 모스크는 기하학적 무늬와 꽃무늬들이 밝은 푸른색으로 그려진
원래 벽화들이 일부 보존되어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돔의 안쪽 둘레는 설화석고 종유석[muqarnas]으로 장식되어 있다.
외벽은 커다란 기하학적 패턴의 묘비 장식들이 새겨진 광택 나는 타일로 덮여 있는데 이는 티무르 시대
건축물들의 전형적인 특징이었다. 영묘의 벽에는 고대 아라비아 문자인 쿠파체 문자[Kufic inscriptions]가 새겨져 있고, 돔을 받치는 원통형 기둥들에는 코란의 구절들이 새겨져 있다.
티무르가 사망한 1405년에 미완성인 채로 종결된 영묘는 지금까지도 주요 출입구 표면에
겉칠이 되어 있지 않은 채로 남아 있고, 설계되었던 두 개의 첨탑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세계문화유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르메니아 -1) 아흐파트와 사나힌 수도원(Monasteries of Haghpat and Sanahin) (0) | 2022.04.09 |
---|---|
(카자흐스탄 -2) 탐갈리 고고 경관의 암면 조각 (0) | 2022.04.02 |
(우즈베키스탄 -4) 사마르칸트-문화의 교차로 (0) | 2022.03.19 |
(우즈베키스탄 -3) 샤크리스얍즈 역사 지구(Historic Centre of Shakhrisyabz (0) | 2022.03.12 |
(우즈베키스탄 -2) 부하라 역사 지구(Historic Centre of Bukhara; 1993) (0) | 2022.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