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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우즈베키스탄 -2) 부하라 역사 지구(Historic Centre of Bukhara; 1993)

세계문화유산(177)/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역사 지구(Historic Centre of Bukhara; 1993)

 

우즈베키스탄의 실크로드에 자리하고 있는 부하라(Bukhara)는

2,00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중앙아시아 중세 도시 가운데 도시 구조가 많은 부분 고스란히 남아 있는

가장 완벽한 예이다. 특히 흥미로운 기념물들에는 10세기 이슬람 건축의 걸작으로 유명한

이스마일 사마니(Ismail Samani)의 묘(墓)와 수많은 17세기의 이슬람 마드라사(madrasa; 이슬람 고등교육 기관)가 있다.

 

실크 로드에 자리하고 있는 부하라는 약 25세기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중앙아시아 중세 도시 가운데 도시 구조의 많은 부분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가장 완벽한 예이다. 특히 흥미로운 기념물들에는 10세기 이슬람 건축의 걸작으로 유명한 이스마일 사마니의 묘와 수많은 17세기의 이슬람 마드라사가 있다.

사실상 노천 박물관인 이 도시의 역사 지구는 도시의 긴 역사와 하나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근래의 고고학 발굴로 부하라 유적에 있는 정착지는

일찍이 기원전 제2천년기(기원전 2000~기원전 1001)에 쿠샨(Kushan) 제국의 일부였음을 밝혀냈다.

4세기에 그 정착지는 에프탈 제국[Ephtalite state]으로 편입되었다. 아랍에 정복당하기 전에 부하라는

풍부한 오아시스와 고대 교역로의 교차로에 위치하여 중앙아시아에서 번영을 누리던 가장 큰 도시들 가운데 하나였다.

 

이 도시는 709년에는 바그다드 칼리프 조(Caliphate of Baghdad)의 주요 문화 중심지가 되었고,

892년에는 독립 사만 왕국[Samanid Kingdom]의 수도였다.

경제적으로 크게 발전을 이룬 시기는 1220년 칭기즈 칸이 이끈 몽골 족이 이 도시를 약탈함으로써 끝이 났다. 

부하라는 티무르 제국의 일부가 되면서 서서히 회복되었다.

15세기 말의 내부 분쟁으로 부하라는 셰이바니(Sheibani) 칸이 이끈 우즈베크 유목민 부족에게 점령당하였고,

부하라한국[Bukhara Khanate]의 수도가 되었다.

 

불안정하고 단명했던 왕조들의 긴 시기는 소연방으로 흡수되었던 1920년에 끝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부하라는 주요 상업과 문화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공고히 하였다. 근대 부하라의

도시 경관은 이 도시가 거쳐 온 역사를 모두 보여 준다. 가장 초기의 기념물들에는 마고키(Magoki) 모스크,

차슈마 아유브(Chasma Ayub)의 성지[Shrine]를 따라 있는 10세기의 이스마일 사마니의 묘,

장식 벽돌로 된 11세기의 포이칼리안(Poi-Kalyan) 미나레트(minaret; 첨탑)가 있다.

티무르 제국 시대를 대표하는 것은 울루그베크(Ulugbek) 마드라사 뿐이다.

 

가장 유명한 건축물들은 셰이바니 왕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포이칼리안 건물군,

리아비하우즈(Lyabi-Khauz), 코슈(Kosh) 및 가우쿠숀(Gaukushon) 마드라사가 있다. 그보다 조금 후에는

주요 교차로에 타키 사라폰(Taki Sarafon; 환전상들의 무덤), 타키틸팍푸루샨(Taki-Tilpak-Furushan; 모자 장수들의 무덤), 팀바자잔(Tim-Bazzazan), 그리고 팀아브둘라칸(Tim-Abdullah-Khan)과 같은 마드라사들이 생겨났다.

 

17세기 초기에 세워진 훌륭한 건축물들 중에는

새로 지은 훌륭한 모스크 마고키 쿠른스(Magoki Kurns; 1637)와 당당한 아브둘라칸 마드라사가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부하라를 가장 중요한 유적지로 볼 수 있는 이유는 개개의 건축물이 아니라

샤이반 왕조[Sheibanid dynasty] 때부터 시작한 도시 계획과 건축물의 전체적인 수준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