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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오만 -1) 바흘라 요새(Bahla Fort; 1987)

세계문화유산(170)

바흘라 요새(Bahla Fort; 1987)

 

바흘라(Bahla) 오아시스

12~15세기에 이 지역을 지배했던 바누네한(Banu Nebhan) 족에 의해 번영하였다.

굽지 않은 흙벽돌을 이용하여 세운 벽과 탑, 돌로 쌓은 토대가 남아 있는 거대한 요새는 동종의 요새를 대표하는

뛰어난 유적으로 바누네한 족이 보유했던 강력한 힘을 증명한다.

바흘라 요새는 오만 왕국의 독특한 군사 건축물을 대표하는 놀라운 예이다.

오만 문명의 역사는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서의 시대에 이 나라는 과거 금보다 더 소중한 것으로

여겨졌던 좋은 향이 나는 유향 교역의 중심지였다. 항해의 전통으로 널리 알려진 오만의 역대 술탄들은

16~19세기에 동아프리카의 해안에서부터 인도 대륙의 뾰족한 끝부분까진 걸친 부유한 무역 제국을 지배하였다.

제벨 크다르(Jebel Akhdar) 산맥 아래에 북쪽으로는 루스타크(Rustaq) 요새, 남쪽으로는 이즈키(Izki)와 니즈와(Nizwa), 

바흘라 요새가 길게 놓여 있다. 이곳들은 모두 한때 오만 왕국의 수도였던 도시들로서

오만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하지리파(Kharijite; 이슬람교 일파의 신도)가 하룬 알라시드(Harun Al-Rashid) 칼리프의 ‘정상화’를 위한

모든 시도에 저항하고, 그들이 생각한 급진적으로 금욕적면서도 민주적인 종교적인 개념을 실천에 옮겼던 것도

바로 이곳에서였다. 오만의 수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바흘라 오아시스는 12세기 중반부터 15세기 말까지

다른 부족을 지배하였던 바누네한 족 덕분에 번영을 구가하였다.

지금은 영광스러웠던 과거가 남긴 유적만이 이 아름다운 산 위에 남아 있다.

돌 토대 위에 어도비(adobe; 찰흙을 벽돌 모양으로 뭉쳐 햇볕에 말린 재료)로 지은 이 거대한 요새의 성벽과 탑은

이슬람 이전 시대의 구조적 요소를 일부 간직하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구조물의 거의 대부분은

마지막 재건축 공사가 16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가며, 바누네한 족의 번영했던 시대에 건축되었다.

 

요새 아래 남서쪽에는 아름다운 조각 장식이 있는 미흐라브[기도처]로 유명한 ‘금요일의 모스크’가 있다.

이 모스크는 14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상의 기념물은 작은 바흘라 마을과 그 시장,

오아시스 주변의 야자 숲, 어도비 점토로 지은 성벽, 탑과 문, 지하 관개 수로에서 보여준 놀라운 기술과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것들이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을 무렵,

바흘라 기념비는 매우 위태로운 상태에 놓여 있었다.

 

당시까지 단 한 번도 복원된 적이 없었으며[그래서 유산의 진정성 수준은 매우 높았다], 어떠한 보존 조치로도

전혀 보호받지 못하는 상태였다. 이바디파가 새 모스크를 세우면서 방치한 ‘금요일의 모스크’의 테라스는

보수 작업을 거치지 않아 결국 1981~1983년에 아치가 무너지고 벽에 바른 회반죽이 떨어져 나가면서

급기야 와해되고 말았다. 그 결과 건물 내의 미흐라브 역시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오만 고고학부가 주관한 정밀 조사가 1977년 마무리되었지만 복원 작업은 1988년까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복원 작업에 필요한 모든 자금은 오만 정부가 부담하고,

사진 측량 기록은 독일 보훔에 소재지를 둔 광산 박물관에서 담당하고 있다.

2005년에 복원 작업은 거의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