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172)/ 오만
프란킨센스 유적(Land of Frankincense; 2000)
프란킨센스 유적은 오만의 도파르(Dhofar) 주에 위치하며, 와디 다우카(Wadi Dawkah)의 유향나무[프란킨센(Frankincense)]들과 대상(隊商)들의 쉼터였던 쉬스르[Shisr 또는 우바르(Wubar)] 오아시스 유적, 그리고 이들과 연관된 두 항구 코르 로리(Khor Rori)와 알 발리드(Al-Baleed, Al-Balid)는 여러 세기에 걸쳐 이 지역에서 번성했던 유향 교역을 생생하게 설명해 준다.
오만에 있는 이 일단의 프란킨센스 유적지는 고대 지중해와 홍해 연안 지역에서부터 메소포타미아・인도・중국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한 사치품 중의 하나였던 유향의 생산과 유통을 그대로 보여 준다. 이 고고 유적지는 신석기시대부터 후기 이슬람 시대까지 아라비아 반도 남부 지역에서 번성하였던 문명에 관한 놀라운 증거 자료이다. 쉬스르 오아시스와 코르 로리 및 알 발리드의 중계 무역항은 페르시아 만(灣) 지역에서 발달한 중세의 요새화된 촌락을 보여 주는 뛰어난 사례이다. 쉬스르는 살랄라(Salalah)에서 북쪽으로 약 180㎞ 떨어진 사막 안에 있다. 농경을 위한 수원(水源)이자 대상의 휴식처인 쉬스르 오아시스는 네지드(Nejd)에서부터 숨후람(Sumhuram) 항구에 이르는 유향 운반로 위에 있다. 이곳에는 철기시대의 요새도 자리 잡고 있었으며, 오아시스는 이슬람 시대에도 계속 사용되었다. 이 고고 유적지에서 가까운 곳에는 붕괴된 대형 석회암 돔이 있고, 그 안에는 샘이 영원히 흐르는 동굴이 있다. 석회암 블록을 이용하여 평면상 불규칙한 오각형 구조로 지은 요새의 성벽이 바위투성이의 노두(露頭) 위에 올라앉은 중앙 단지를 에워싸고 있다. 중간에 성벽이 끊긴 것으로 보아 성곽이 2개의 폐쇄된 영역으로 나뉘어졌고 중세 시대에 수차례 개축과 확장이 이루어진 제법 커다란 건물이 솟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남부 아라비아의 전통에 따라 나침반이 가리키는 기본 방위로 방향이 잡혀 있었음을 알려 준다. 숨후람/코르 로리[지리학 고서에는 ‘모샤’(Moscha)로 표기됨] 항구는 도파르(Dhofar)의 향료 교역을 장악하고자 했던 라드 얄루트(LL'ad Yalut)가 1세기 말에 건설하였다. 향료와 교환하기 위해 면직물・옥수수・기름 등을 가져온 인도 뱃사람들은 그곳에서 겨울을 나면서 고국으로 돌아가게 해줄 계절풍[몬순(monsoon)]이 불기를 기다렸다. 항구는 기원전 1세기, 2세기 동안 이 연안 지방에서 발달한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세력이 강한 샤브와(Shabwa) 주와 밀접한 관계를 맺은 덕분에 이 작고 요새화된 항구도시는 매우 부유해졌다. 그러나 바닷물과 초목 등 자연 식생에 의해 침식되면서 3세기 초반부터 와해되기 시작하였다. 코르 로리는 살랄라에서 동쪽으로 40㎞ 떨어진 지점, 달콤한 물이 나오는 곳[khor]의 동쪽 강둑 언덕 위에 있다. 요새의 유적은 바위가 동쪽과 서쪽으로 튀어나온 곳에 있다. 요새는 좀 더 넓은 방어 체계의 일부를 이루며, 그 세세한 모습이 아직까지 뚜렷하게 드러난다. 요새의 벽은 속에 돌무더기를 넣고 바깥을 다듬은 돌로 마무리하였다. 가장 요새화된 부분은 북쪽에 있고, 입구는 가파른 오르막길의 진입로 끝에 있다. 이 입구에는 문 3개가 잇달아 있는데 그 자체가 거대한 구조물이며, 좌우 양쪽에는 탑의 유적이 있다. 약간 높은 지대인 알 발리드는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공급하는 코르(khor)가 있는 해안을 따라 확장되었다. ‘알 발리드’라는 지명은 마라(Mahra) 지역의 중세 도시에 대해 역사적으로 나중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 도시는 12세기에 쇠퇴하기 시작하였으며, 13세기에 아랍의 지배자나 페르시아의 습격자에게 여러 차례 공격을 받아 부분적으로 파괴되었다. 15세기 후반에 이르러, 포르투갈과 그 밖의 여러 유럽 교역 국가들의 교역 형태가 급격하게 변함에 따라 그 도시의 운명이 갈라졌다. 대부분의 현장은 새로운 건축물을 건설하려고 돌을 빼내 쓴 결과 돌덩이로 뒤덮인 황량한 풍경이 되었다. 대모스크는 3면은 외부의 단(壇)으로 둘러싸여 있다. 내부에는 정원이 있으며, 4m에 이르는 첨탑은 원래 북동쪽 모퉁이에 있었다. 주 기도실에는 지붕을 지지하는 144개의 팔각기둥이 즐비하다. 대모스크는 때로는 부실한 건축으로 인해, 때로는 불안정한 지반 탓에 무너졌기 때문에 여러 차례 바뀌었다. 와디다우카 유향 공원 남부 아라비아의 신석기시대 주민들은 아라비아 연안 지역에서 메소포타미아 지방으로 오가는 장거리 교역에 종사하였다. 발굴 조사에 의하면 조가비와 흑요석이 교역 품목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기원전 제3천년기 후반[메소포타미아뿐만 아니라 이집트와도 교역이 번성하였다]의 유향 교역에 관한 문헌과 비문 자료 등도 있다. 유향[프란킨센스]의 원산지는 아직도 유향나무가 발견되는 도파르 지역의 세 구역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사막의 가장자리인 북쪽으로 물이 빠지는 ‘와디’(wadi; 우기에만 물이 흐르는 간헐 하천)이다. 유향나무는 와디의 바닥 쪽에서 발견된다. 이 공원의 더 높은 지역에는 극한 환경을 이겨 낼 수 있는 아카시아 및 그와 비슷한 종이 있다. 이 시기에 남부 아라비아의 또 다른 수출품은 말(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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