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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경기 여행

(하남) 검단산에서 본 서울

 

사실

서울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은 남산만 한 곳은 없을 것이다.

마침

두물머리를 수직적 시각에서 볼 요량으로 검단산 정상에 섰는데, 보너스로 멀리 서울이 한눈에 조망된다.

 

남한산성에 오르면

서울을 볼 수 있지만, 높지 않아 수평적 시각이라 실감이 덜했는데,

이곳에서는

관악산에서 도봉산까지 수직적 시각으로 서울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좋다.

 

 

- 관악산 -

 

 

- 롯데 빌딩과 한강과 남산 그리고 사진 중앙 멀리 인천 계양산 -

 

 

- 북한산 - 도봉산 - 불암산 - 수락산 -

북한산 인수봉과 도봉산 선인봉이 더욱 또렷이 보인다.

 

- 북한산 - 좌로부터 노적봉 - 만경대 - 백운대 - 인수봉 - 

 

 

- 좌측 하얗게 누운 도봉산 오봉과 정면 선인봉과 자운봉- 

 

 

- 앞에 불암산과 뒤에 수락산 - 

 

 

롯데 빌다 - 한강 - 중앙 멀리 인천 계양산 - 남산- 안산- 인왕산 - 북악산 -

 

 

- 인천 계양산과 남산 그 뒤로 희미하게 강화 마니산 -

남산과 한강을 당겼더니 멀리 인천 계양산과 남산 뒤로 강화도 마니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 안산과 인왕산 -

 

 

- 관악산에서 도봉산까지 -

 

핸드폰으로 담은 서울

 

 

 

 

 

 

 

 

 

 

 

 

 

올라왔던 길은 생각보다 넓고 좋았다.

그래서

하산길은 다른 길인 유길준 선생 묘가 있는 코스를 선택해 하산한다.

 

 

 

 

 - 깔딱 고개인 듯 -

 

 

 

한참을 내려오는데 숲 사이로 서울이 보인다.

 

저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검단산 정상이다.

 

 

 

ㅎㅎ 하산길은 내가 올랐던 길에 비하면 그야말로 가파르고 험한 코스다.

하산하는데도 힘이 들어

휴식을 취하는 중년 분에게 물었다.

 

이 코스가 매우 가파르고 험한데 검단산 자주 오시냐니

400여 회 오른다며 운동삼아 이 코스로 오른다네.

 

그러면서

내가 오전에 올랐던 길이 넓은 이유는 검단산에 광산이 있었다며 그때 만든 찻길이라 그 길이 오르기 좋다네

아하!

그래서 그 길이 넓고 정상 아래 그렇게 넓은 광장이 있음을 이해했다.

 

 

 

 

 

 

 

 

- 유길준 일가 묘 -

 

유길준(兪吉濬, 1856년 11월 21일 ~ 1914년 9월 30일)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외교관, 작가이며 대한제국의 정치가·개화 사상가·계몽운동가이다.

본관은 기계(杞溪)이고 자는 성무(聖武, 盛武), 호는 구당(矩堂), 천민(天民), 구일(矩一)이다.

 

근대 한국 최초의 일본과 미국 유학생이며, 개화파의 이론가로서 수많은 저작물을 발표하여 개화사상을 정립하였다.

그는 서구의 의회 민주주의 체제와 합리주의 사상을 적극 수용해야 된다고 주장하였고,

정치적으로는 전근대적인 한국의 정치·경제·사회의 변화, 개혁을 시도하려 하였으나 실패했다.

 

1910년 8월 29일, 한일 병합 조약이 맺어지자

이 조약에 대한 반대운동을 추진하다가 체포되었고, 전 국민을 선비로 만든다는 목적으로

흥사단을 조직했다.

 

- 유길준의 묘 -

 

 

 

 

 

 

 

 

 

 

 

 

검단산을 내려와 다시 돌아본 검단산이다.

코로나 19로 찌들어진 나날에 무더위까지 기승을 부린 날  산행은 거의 일 년 만의 일이라

하산하니 두 다리가 너덜너덜했다.

 

그러나

덥다고 코로나 때문에 집에 머물렀다면 이런 아름다운 산하를 볼 수 있었겠는가!

아직 이런 나지막한 산이지만 무리 없이 오르내릴 수 있음에

감사드린다.

 

삶은 여러갈래이다.

어느 방향에 내가 서는가가 매우 중요하 듯 산행 역시 그러하다.

들곳이 여러 곳인데

어떤 곳으로 올라야 순조롭게 정상에 닿을 수 있을까? 내가 오르는 길이 힘든 길은 아닌가?

그 답은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와 봐야 알 수 있다.

삶 역시 살아봐야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