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152)/ 레바논
비블로스(Byblos; 1984)
페니키아의 도시 중 가장 오래된 도시인 비블로스는 수많은 문명들의 유적이 발견되는 곳이다. 신석기시대 이후부터 사람들이 거주했던 이곳은 수천 년 동안 지중해 지역의 전설과 역사와 긴밀하게 관련을 맺어왔다. 비블로스는 알파벳의 기원이 되는 페니키아 문자의 역사와 전파와도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페니키아 문명의 초기 모습을 아주 잘 보여 주는 비블로스는 청동기시대부터의 지중해 세계의 도시화 과정을 보여 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페니키아 인들이 구블루(Gublu; 성경에서 그발(Gebal)로 불림)를 그들의 가장 오래된 도시라고 여긴 것은 비블로스 유적이 신석기시대 이후로 끊임없이 사람들이 거주해 왔던 곳이기 때문에 결코 틀린 말이 아니었다. 가장 오래된 인간의 거주지는 약 7,000년의 역사를 가진 어촌 마을이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그 곳에서 작은 가옥들이 수없이 많이 발견되었다. 기원전 3200년 무렵, 공간 구조가 새롭게 형성되어 언덕에는 돌 벽을 가진 가옥들이 많아졌고, 그때까지 주거지 내에 두던 토장 항아리들이 주거 지역 변두리로 옮겨졌다. 큰 공동묘지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장례 의식이 관찰된다. 기원전 2800년 무렵, 고도의 구조를 갖춘 도시 ‘그발’이 출현했다. 이 도시는 전설에 의하면 엘(El) 신이 만들었다고 하는 거대한 성벽, 대로와 작은 도로망을 갖추고 있었다. 비블로스에는 항구가 발달해 건축 및 해군 막사 건설에 꼭 필요한 자재였던 백향목, 시신을 미라로 만드는 데 쓰이는 삼목 기름을 항구를 통해 이집트로 수출했다. 또한 파라오가 풍성한 제물을 바치던 여신의 도시, 바알라트 게발(Baalat-Gebal)의 신전과 같은 큰 건축물도 건축했다. 이 도시의 흔적은 수없이 많이 남아 있지만 기원전 2150년경, 아모리 족(Amorite)의 습격을 받아 불에 타 버리는 바람에 재가 두텁게 쌓여 원래의 높이를 덮어 버렸다. 재는 어떤 곳은 50㎝ 높이까지 쌓였다. 약 200년 후, 이 도시는 재건되어 새로운 신전이 건설되었다. 기원전 1900~1600년에 레셰프(Reshef) 신에게 바친 오벨리스크 신전이 당시에 가장 유명했다. 이 무렵 이집트와 상업적 결속이 더 강해졌다. 청동기시대 중반 무렵의 9개 왕릉은 당시의 문명이 상당히 발달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아히람 왕의 묘[베이루트 국립박물관] 석관에는 페니키아인의 문자가 새겨진 비문이 있었는데, 이것이 도굴꾼에게 넘어가 글자가 널리 전파되면서 더 이상 글자가 필경사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 상업 도시였던 비블로스는 아시리아・바빌로니아・아케메네스, 또는 그리스까지 연이어 지배할 수 있었다. 로마 시대에 도시의 상업 기능은 쇠퇴하였으나 종교 기능은 탁월해져서 2세기에 유명했던 사모사타의 루키안(Lucian of Samosata)이 이끄는 순례자 무리가 이 신전들로 몰려왔고, 신전은 거듭 재건되고 장식되었다. 비블로스는 비잔틴 시대에 들어서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하였으며, 636년 이후 아랍이 점령하던 동안에도 계속 쇠퇴하였다. 이 도시가 이전의 중요성을 되찾았던 시기는 십자군 전쟁 때였다. 제노바 인들이 상업을 이끌면서 지블레(Giblet)는 번창한 수송 항구가 되었다. 하지만 성벽과 십자군이 주둔한 거대한 구조물, 세례자 요한 교회 및 그 교회의 세례소 등이 입증하는 그러한 재건축에는 아무런 미래가 없는 것이었다. 비블로스는 19세기가 되기까지 서서히 쇠퇴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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