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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대구+경북 여행

(김천) 사명대사가 출가한 천년 고찰 직지사

 

- 동국제일가람황악산문 -

 

언제 : 2021년 2월 27일 토요일

어디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사 산문에 들어서기 전

우람한 어깨를 가진 남자와 같은 황악산(黃嶽山 1,111m)을 보면서 저 품 안에

큰 절 하나 들어서고도 남을 터임을 알 수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아도화상께서 경북 구미 도리사를 지은 후 손을 들어 서쪽의 산 하나를 곧게 가리키며(直指)

" 저 산 아래에도 좋은 절터가 있다" 하여 이름을 직지사(直指寺)라고 칭했다고 한다.

 

참말로 긴 날을 참아오다 찾아온 직지사이다.

은퇴 후 

어떤 인연이 있어

언젠가 꽃 피고 새 우는 시절 좋은 날에 그 인연과 직지사를 찾으려고 했는데,

어머님 별세하신 직후부터

코로나 19로 딱 1년을 마스크 쓰고 살다 보니 어떤 이유로

처음 마음먹었던 대로 그 인연 기다리지 못하고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혼자 직지사를 찾아와

천 년 고찰에 내 마음을 잠시 내려놓는다.

 

 

 

 

 

 

 

- 금천교 -

 

절에 가면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주차장은 대체로 산문 밖에 있어 일반인은 그곳에 주차하고 걸어가는데, 어떤 사람은 차를 타고 들어간다.

그 짓은 부처님의 뜻이 아니리라.

이유야 있겠지만,

산문 안에는 흙길이니 천천히 가도 미안한 일인데,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것은 참 흉하다.

 

어떤 절은

스님이나 불교신자나 일반인이나 모든 사람이 똑같이 걸어서 산문에 들어서 불공을 드리고

아름다운 경치도 구경하니 좋더구먼,

누구는 차 타고 누구는 걸어가는 부질없는 걱정거리를 왜 만드는지

나만 그런 생각을 갖는 것일까?

 

 

- 비석군 -

 

 

 

 

 

 

 

 

 

젊은 부부와 어린 아들이 걸어가며 조잘대는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

다음에 자라 아름다운 기억으로 자리하렴

 

지난 2월 24일 백일이 지난

동탄에 사는 둘째 외손주가 첫나들이로 오늘 집에 온다는 기별을 대전에서 김천 가는 기차 안에서 받고

어제저녁이라도 미리 알려주었다면 오늘 여행길에 오르지 않고 외손주 희수를 기다렸을 터인데,

아내에게 짜증을 냈더니 갑자기 오늘 아침 이뤄진 일이라네.

 

둘째 외손주 희수가

세상에 나서 첫나들이로 외갓집에 온다는데,

외할아버지는 지하철 타고 고속버스 타고 택시 타고 다시 기차 타고 다시 버스 타고 김천 직지사 온 일이

우리 희수에게 미안하네

 

 

- 황악산 직지사 일주문 -

사찰에 들어서는 첫 번째 산문으로,

속세에서 흩어져 있던 마음을 하나로 모은다는 의미가 담겨 있으며,

고려 시대 세워져 천왕문, 비로전과 함께 임진왜란 당시에도 화재에 소실되지 않았으며, 

현판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서예가 송하 조윤형(1725~1799)의 작품

 

직지사 일주문에는 "황악산직지사" 편액이 전면에 있고, 후면에는 "자하문"의 편액이 있다.

 

 

 

 - 대양문 -

 

 

 

 

대왕 문 앞 오른쪽 언덕에 서 있는 소나무

곱게 자라도 고달픈 삶인데 어쩌자고 저 모양으로 굽어져 한 삶을 살아갈꼬

삶이 고행임을 저 소나무가 보여주네

 

 

- 금강문 -

금강문 뒤로 천왕문이 90도 정도 틀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절마다 다 같지는 않지만, 직지사는 또 다르네

일주문을 지나 대양 문 금강문을 지나면서 조금씩 틀어지더니 천왕문에 와서는 갑자기 90도로 꺾이어

천왕문이 세워졌네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던 대웅전 가는 길이네

 

 

- 천왕문 -

불교에서 사천왕은 네 방향인 동. 서. 남. 북을 분담하여 불법을 지키는 호법 선신이다.

직지사 사천왕은 목조가 아닌 나무 뼈대에 흙을 붙여 제작한 소조상(塑造像)으로, 

조선 현종 6년(1665년) 제작되었다.

 

 

 

 

 

- 만세루 -

직지사에는 세 개의 누각이 있다.

대웅전 앞 만세루와 비로전 앞 황악루 그리고 비로전 앞의 안양루이다.

 

 

- 만세루에 준비된 공양미 -

 

 

 

 

- 대웅전과 동서삼층석탑 -

 

만세루 밑을 지나 계단을 올라서면

 대웅전 앞 좌우에는 보물 제606호 대웅전 앞 동서 삼층석탑이 서 있고,

그 중앙에 대웅전(보물 제1576호)이 모셔져 있으며,

대웅전을 가운데 두고 절마당 왼쪽에는 육화당, 오른쪽에는 심검당이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 앞 두 기의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말기(9세기)의 석탑으로,

비로전 앞에 있는 탑과 함께 경북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 도 천사터에 쓰러져 있던 것을 1974년에 직지사로

옮겨왔다.

탑의 전체 높이는 5.3m이며, 1976년에 상륜부를 복원하였다.

 

 

- 육화당 -

 

 

- 심검당 -

 

 

 

- 직지사 대웅전 삼존불탱화 : 보물 제670호 -

 

 

 

- 대웅전에서 본 절마당 동서 삼층석탑과 만세루 -

 

 

 

 

대웅전의 옆모습과 앞마당의 풍경

 

 

 

직지사는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사명대사의 출가 본사다.

경남 밀양 태생이었던 사명대사는 13세 때 직지사 앞 유촌마을로 이사를 하게 된다.

그곳에 머물던 황희 정승의 현손 황여헌 선생 문하에서 공부하기 위해서 이사했지만 15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이듬해 아버지마저 잃게 되자 바로 직지사로 출가해서 신묵대사의 제자가 되었다.

 

18세에 봉은사에서 치러진 승과에서 장원으로 합격하고 30세에 직지사 주지가 되었다.

32세에는 스승인 서산대사의 뒤를 이어 봉은사 주지로 천거되었으나 곧바로 묘향산 보현사로 스승을 따라갔다가

금강산 유점사에 머물 때 임진왜란이 발발하게 된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사명대사는 서산의 사발통문을 접하자마자 바로 의승병을 조직해

승병장으로서 명승을 떨치게 된다.

 

 

- 범종각에서 본 대웅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