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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경기 여행

(문산) 임진각 - 자유의 다리와 상처만 남은 녹슨 철마(鐵馬)

 

임진각 자유의 다리와 상처만 남은 녹슨 철마(鐵馬)

 

 

 

자유의 다리

원래 경의선 철교는 상ㆍ하행 2개의 교량이 있었으나 폭격으로 파괴되어 교각만 남아있던 것을

후에 전쟁 포로들을 통과시키기 위하여 서쪽 교각 위에 철교를 복구했고

그 남쪽 끝에 임시 교량을 가설한 것이 자유의 다리이다.

 

예전에는 노상리 쪽 자연 마을의 이름을 따서 독개다리라고 불렸으나

1953년에 공산군의 포로였던 12,773명의 국군과 유엔군이 자유를 찾아 귀환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명명되었다.

 

자유의 다리는

6개의 경간(徑間)으로 이루어진 목조 평교(平橋) 형식으로 길이는 83m, 폭은 4.5~7m, 높이는 8m 내외이다.

순수한 목구조는 아니고 인장력을 많이 받는 부분에 철재를 사용하여 만든 혼합 구조이다.

통나무가 4개씩 4열로 세워진 교각 위에

사각 받침목과 I자형 강(鋼)으로 만 든 철제 보를 우물 정(井) 자형으로 짰고, 그 위에 장선(長線)을 놓인 후

나무로 만든 상판을 올려서 마감하였다.

특히 구조적으로 안정을 기하기 위해 수평재와 가새가 많이 사용되었다.

 

판문점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 와 함께 6·25 전쟁의 비극을 상징하는 이 다리는

7·4 공동성명 이후 남북회담 대표 들이 지나다닌 길목이 되었다. 자유의 다리는 임시로 가설된 교량이므로

건축적으로 뛰어난 점은 없으나 ‘자유로의 귀환’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전쟁을 대표하는 근대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알 길이 없었다.

1983년 6월 30일 ~ 11월 14일까지 국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때 나는 터키 남부 지중해 연안 Mersin이란 항구에 있었다. 이유는 이란 이라크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어

중동국가 건설현장에 자재 투입이 어려워 유럽이나 구주지역에서 투입되는 자재를 터키에서

육상으로 사우디, 쿠웨이트, 바레인, 이라크 등으로 보내기 위해 

 

한달이 지날 즈음

본사에서 보내준 우리나라 신문이 도착했는데, KBS에서 "남북 이산가족 찾기"를 방영하는데

온 국민이 눈물 바닷속에서 폭발적인 인기 프로라고

 

   두 살된 딸과 아내를 두고 떠나온 나는 몰랐다.

아내가 얼마나 울었었던가를

 

 

 

 

 

 

 - 자유의 다리 - 경기도 기념물 제162호 -

 

 

 

 

 

 

 

 

 

 

 

 

 

- 사진의 앞 사람들이 서 있는 곳이 자유의 다리 - 도라산역까지 운행 중인 전철 - 

 

 

 

장단역 증기기관차가 달리던 경의선(京義線)은 서울과 평안북도 신의주 사이에 부설된 철도다.

서울을 기점으로 개성-사리원-평양-신안주를 거쳐 신의주에 이르는 우리나라 관서 지방을 관통하는 철도로서

총연장 499㎞다. 신의주에서 압록강 철교를 건너 만주로 연결되었으나,

지금은 남북 분단으로 서울∼문산 간 52.5㎞만 운행하고 있다.